[바깥 세상]

[영국]나폴레옹의 후손이 런던에 둥지를 튼 이유 (손진석 특파원, 조선일보)

colorprom 2019. 11. 25. 15:12



[글로컬 라이프] 나폴레옹의 후손이 런던에 둥지를 튼 이유


조선일보
                         
             
입력 2019.11.25 03:12

손진석 파리 특파원
손진석 파리 특파원


에펠탑이 내려다보이는 파리 트로카데로광장의 카페에서 백만장자 프랑스 젊은이와 마주앉았다.
올해 32세로 투자 회사를 경영하는 샤를-앙리 퓌오라는 사나이다.
퓌오는 프랑스 국적자이고 아내도 프랑스인이다. 하지만 부부가 사는 자택은 런던에 있다.
퓌오는 런던과 파리에 모두 사무실을 두고 유로스타(고속철도)를 타고 수시로 두 도시를 오가는 삶을 산다.
그는 "1년을 쪼개보면 5개월은 런던, 3개월은 파리, 나머지 4개월은 출장이나 휴가로 세계 각지에 머무른다"고 했다.

퓌오는 파리에서 태어나 고등학교까지 마친 뒤 9년간 미국 생활을 했다.
뉴욕 컬럼비아대에서 학사를 마치고 같은 학교에서 MBA(경영학 석사)를 땄다.
월가의 금융회사에 취업해 고액 연봉을 받았다.
그리고 유럽으로 돌아올 때 파리 대신 런던을 택해 창업을 했다.
"미국은 자유로운 곳이고 유럽은 보호받는다는 느낌을 주는 곳인데요.
런던은 유럽과 미국의 장점을 모두 갖고 있어 제가 가장 편안함을 느낄 수 있는 도시죠."

런던에는 퓌오처럼 학력·소득 수준이 높은 프랑스인이 꽤 많이 살고 있다.
공식 집계는 어렵지만 교외를 포함한 런던(Greater London)에만 25만~30만명의 프랑스인이 거주한다는 게 정설이다.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는 런던 시장 시절 "런던프랑스의 6번째 도시"라고 여러 차례 이야기했다.
런던에 대한 자부심에 프랑스에 대한 은근한 조롱을 담은 표현이다.

프랑스의 국가적 영웅 나폴레옹의 후손마저도 런던으로 거주지를 옮겼다.
현재 나폴레옹 가문의 대표는
나폴레옹 황제의 동생 제롬의 5대손인 장-크리스토프 나폴레옹(33·사진)이 맡고 있다.
태어나 쭉 프랑스에서 자란 장-크리스토프는 미국 하버드대에서 MBA를 받은 다음
파리로 돌아오지 않고 런던의 사모펀드에서 일하고 있다.

장-크리스토프 나폴레옹
프랑스의 고급 인재들이 런던에 사는 이유는 간단하다.
일처리가 느리고 규제가 많은 프랑스에서 답답함을 느끼기 때문이다.
퓌오는 "조국을 사랑하지만 정체된 사회 분위기는 매력을 반감시킨다"고 했다.

명문 그랑제콜을 졸업하고 프랑스 중앙부처에서 일하던 엘리트가 사표를 던지고
영국의 민간 부문으로 이직하는 사례는 숱하게 많다.
프랑스식 관료주의를 못 견디기 때문이다.

'런던의 프랑스인'은 친(親)시장파가 많다.
특히 금융에서 입신양명하고 싶은 프랑스 젊은이들이 런던을 동경한다.
기자는 올여름 유럽 최대 자산운용사인 아문디로랑 기예 런던법인장을 만난 적 있다.
프랑스 사람인 기예씨는 "금융에서 파리가 런던을 따라잡으려면 갈 길이 멀다"고 했다.

그러나 세상사가 한 방향으로만 흐르지는 않는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대선 후보 시절
"런던이 프랑스의 6번째 도시라는 말이 안 나오게 하겠다"고 다짐한 것이 서서히 성과를 내고 있다.
노동개혁을 비롯해 갖가지 투자 활성화 조치파리에 돈과 사람이 유입되는 중이다.
요즘은 브렉시트(영국의 EU 탈퇴)를 앞두고 런던의 글로벌 기업들이 하나둘 파리로 넘어오고 있다.
올해 런던 집값이 하락하는 반면, 파리 집값은 급등하고 있어 대조를 이룬다.

런던에 몰려가 살고 있는 프랑스인들과 이들을 다시 파리로 데려오겠다며 팔을 걷어붙인 마크롱
연인처럼 서로 밀고 당기기를 하는 듯하다.
런던파리를 비교하며 퓌오와 한참 대화를 나누다 보니 묻고 싶어졌다.
과연 서울은 한국의 꿈 많은 청춘들이 계속 살고 싶어하는 도시인가.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9/11/24/2019112401613.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