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깥 세상]

[폴란드]매년 8월 14일, 아우슈비츠 앞마당은 작은 성당이 된다

colorprom 2019. 10. 30. 15:06


매년 814, 아우슈비츠 앞마당은 작은 성당이 된다


조선일보
                         
    
입력 2019.10.30 03:01

[동유럽 가톨릭 성지를 가다] [] 폴란드 오시비엥침

유대인에게 피신처 제공했다가 수용소로 끌려갔던 콜베 신부
한 수감자 대신 "내가 죽겠다"
목숨을 내놓은 사제의 뜻 기려 해마다 수용소 11동 앞에서 미사

폴란드 옛 수도 크라쿠프에서 서쪽으로 약 60㎞ 떨어진 오시비엥침
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가 홀로코스트 학살을 자행했던 아우슈비츠 절멸 수용소로 악명 높다.
유대인·폴란드인·집시 등 150만명이 그곳에서 목숨을 잃었다.
지난달 말 한국천주교 주교회의 순례단이 이 비극의 땅을 찾았다.

수용소를 도는 내내 시간이 더디게 흘렀다.
수북이 쌓인 아기 신발과 주인을 잃은 머리카락 다발, 아비규환이 분명했을 가스실,
어둡게 입을 벌린 시체 소각장을 지나며 "어서 이곳을 떠나고 싶다"는 생각에 사로잡혔다.

그러나 28개 건물 중 한 곳만은 예외였다.
막시밀리아노 마리아 콜베(1894~1941) 신부가 선종(善終)한 수용소 11동(棟)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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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이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문구가 걸린 아우슈비츠 수용소 정문.
왼쪽 위는 콜베 신부. 아래는 그가 갇혔던 아사감방.
벽 일부를 헐어 관람객이 비좁은 내부를 볼 수 있게 했다.
콜베 신부는 이 감방에서 함께 갇힌 이들과 기도하고 찬송가를 불렀다. /김태훈 기자
폴란드 사람인 콜베 신부는 유대인에게 피신처를 제공했다가 발각돼 1941년 5월28일 아우슈비츠에 끌려갔다. 수용소에서도 금지 규정을 어기고 몰래 고해성사와 상담으로 수감자들의 마음을 위로했다.
두 달 뒤인 7월 말, 수감자 한 명이 건초더미에 몸을 숨겨 탈출했다.
당시 수용소는 한 사람이 탈출하면 10명을 아사(餓死) 감방에 보내는 벌칙 규정을 두고 있었다.
간수들은 죽어야 할 사람을 무작위로 골랐다.
그들 중 폴란드군 중사 출신 프란치셰크 가요브니체크가 울부짖었다.
"저는 아내와 자식이 있습니다. 죽기 싫어요!"
그때 한 사람이 앞으로 나섰다. "내가 대신 죽겠습니다." 콜베 신부였다.

현장에 있었던 이들의 증언에 따르면 수용소 지휘관이 "너는 누구냐?"라고 물었을 때,
콜베 신부는 "가톨릭 사제입니다"라고 대답했다.
인간으로서 하나뿐인 목숨은 가요브니체크에게 줬다.

하지만 죽기 전에 사제로서 할 일이 남아 있었다.
나머지 9명과 함께하며 그들의 영혼이 안식할 수 있게 도와야 했다.
콜베 신부는 7월 29일 그들과 함께 11동 지하 아사 감방에 갇혔다.
빛 한 줄기 들어오지 않는 감방에서 수감자들과 함께 기도하고 찬송가를 불렀다.
지옥 같은 감방이 거룩한 교회로 탈바꿈하는 것을 지켜본 간수들은 말을 잃었다.

고통과 원망 속에서 굶어 죽을 수밖에 없었던 이들이 콜베 신부의 인도로 신의 품 안에서 생을 마감했다.

현재 아사 감방은 벽 일부를 헐어 내부를 볼 수 있게 돼 있다.
순례단을 안내한 수용소 박물관 직원은
"수감자들이 얼마나 어둡고 비좁은 공간에서 죽어갔는지 관람객이 알 수 있게 하려고 허문 것"이라고
설명했다.

콜베 신부는 폐결핵 후유증으로 몹시 야위었는데도 2주 뒤 감방을 비울 때까지 살아서 버텼다.
그사이 6명이 사망했다.
생존자 3명과 함께 아사 감방에서 끌려 나온 콜베 신부는 자신의 사명을 모두 끝냈다는 듯 팔을 내밀었다.
나치가 그의 팔에 독극물 페놀을 주사했다. 8월 14일이었다.
숨진 콜베 신부는 이튿날 성모 승천 대축일에 한 줌 재가 되었다.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1979년 6월 7일 그가 최후를 맞은 11동 18호실 감방을 찾아 기도했다.
1982년 10월 10일 로마 성 베드로 광장에서 콜베 신부의 시성(諡聖) 미사를 집전했다.
그날 교황은 82세 노인이 되어 참석한 가요브니체크를 끌어안고 뺨에 입맞췄다.

해마다 8월 14일이 돌아오면 아우슈비츠 수용소 11동 앞마당은 작은 성당이 된다.
콜베 신부가 속했던 프란치스코회, 크라쿠프 대주교와 교인 등이
그의 수인(囚人)번호 '16670'이 적힌 깃발을 들고 미사를 드린다.
참석자들은 콜베 신부의 희생을 기리며 그가 생전에 좋아했던 성경 구절을 읊는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친구들을 위하여 목숨을 내놓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9/10/30/2019103000085.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