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2019.10.28 03:10
터키 '건국의 아버지' 케말 파샤, 세속화·근대화로 '유럽 되기' 추진
에르도안, '아랍의 봄' 때 중동의 롤 모델… 이젠 노골적 패권 야심
미·EU·러시아 등과도 갈등… 新오토만주의, 범터키주의에 공들여
터키의 광폭 행보가 심상치 않다. 국제사회의 만류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국경 넘어 시리아 쿠르드족을 가차 없이 공격하는 모습은 더 이상 낯설지 않다. 강대국을 상대로 대립과 갈등도 마다하지 않는다. 러시아 전투기를 격추하는가 하면 오랜 동맹 미국과는 첨예하게 각을 세우고 있다. 나토 회원국들과도 티격태격한다. 상궤를 벗어난 행태다. 왜 이럴까? 에르도안 대통령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걸까?
터키 현대사를 살피면 어렴풋이 답이 보인다. 1차 대전 패배 후 광대한 영토 아라비아와 레반트(지금의 이라크·시리아·요르단 및 이스라엘·팔레스타인)를 열강에 넘겨줬다. 굴욕이었다. 터키 민족주의자들이 일어났다. 젊은 지도자 케말 파샤의 영도 아래 술탄을 폐위하고 공화국을 세웠다.
케말은 고민했다. 어떻게 하면 새로운 터키로 거듭나 유럽에 당한 수모를 극복할 수 있을지 성찰했다. 결론은 둘로 수렴했다. 하나는 이슬람을 극복하는 것, 다른 하나는 서구 근대화의 발전 경로를 수용하는 것이었다. 세속화와 근대화를 통해 중세 이슬람 제국을 현대 공화국으로 바꾸는 혁명적 프로젝트였다. 중동을 떠나 서방을 지향하는 터키 노선은 냉전과 함께 절정에 이르렀다. 목표는 선명했다. '유럽 되기'였다.
냉전이 끝난 후 터키의 전략적 가치는 하락했다. 유럽은 터키보다 소련에서 떨어져 나온 동유럽에 더 관심을 가졌다. 터키의 유럽 가입은 지지부진했고, 국민의 자존심은 상처를 입었다. 이런 가운데 9·11 테러가 터졌다. 세계 각처에서 이슬람 경계 심리는 최고조에 달했다. 터키의 유럽 프로젝트에 짙은 구름이 끼었다.
터키 현대사를 살피면 어렴풋이 답이 보인다. 1차 대전 패배 후 광대한 영토 아라비아와 레반트(지금의 이라크·시리아·요르단 및 이스라엘·팔레스타인)를 열강에 넘겨줬다. 굴욕이었다. 터키 민족주의자들이 일어났다. 젊은 지도자 케말 파샤의 영도 아래 술탄을 폐위하고 공화국을 세웠다.
케말은 고민했다. 어떻게 하면 새로운 터키로 거듭나 유럽에 당한 수모를 극복할 수 있을지 성찰했다. 결론은 둘로 수렴했다. 하나는 이슬람을 극복하는 것, 다른 하나는 서구 근대화의 발전 경로를 수용하는 것이었다. 세속화와 근대화를 통해 중세 이슬람 제국을 현대 공화국으로 바꾸는 혁명적 프로젝트였다. 중동을 떠나 서방을 지향하는 터키 노선은 냉전과 함께 절정에 이르렀다. 목표는 선명했다. '유럽 되기'였다.
냉전이 끝난 후 터키의 전략적 가치는 하락했다. 유럽은 터키보다 소련에서 떨어져 나온 동유럽에 더 관심을 가졌다. 터키의 유럽 가입은 지지부진했고, 국민의 자존심은 상처를 입었다. 이런 가운데 9·11 테러가 터졌다. 세계 각처에서 이슬람 경계 심리는 최고조에 달했다. 터키의 유럽 프로젝트에 짙은 구름이 끼었다.
이때 치고 나온 인물이 에르도안이다. 그는 정의개발당(AKP)을 만들어 중앙 정치에 나섰다. 대중이 원하는 정곡을 찔렀다. 이슬람 복원, 그리고 옛 터키 자존심 회복이었다. 노력했지만 여전히 터키를 경원하는 서방에 실망한 대중은 에르도안을 지지했다. 운도 따랐다. 유례없는 경제성장 여건이 수반되었다. 국민의 삶은 나아졌고, 유럽 가입 없이도 잘살 수 있다고 믿기 시작했다. 터키의 국가 이미지는 크게 바뀌었다. 더 이상 서구 지향 국가가 아닌 독자적 지역 강국으로 거듭난다.
2011년 아랍의 봄이 중동을 강타했을 때 아랍의 대중은 에르도안을 연호했다. 독재자를 축출한 아랍 공화국이 모델로 삼을 만한 나라는 터키밖에 없었다. 중세 같은 사우디 왕정이나 음습한 이란의 신정주의 공화정은 답이 아니었다. 경제가 탄탄하고, 선거도 정착되어 있는 데다 이슬람과 세속이 공존하는 터키가 답이었다. 평화 선도 국가를 자임하며 내세운 다우토을루 외교장관의 새로운 터키 대외 전략도 주효했다. 민주주의, 이슬람, 경제 발전을 하나로 묶어낸 터키 소프트 파워는 최고조에 달했다. 미국의 미래 전망 기관 '스트랫포'의 조지 프리드먼은 2050년경에는 터키가 세계의 주역으로 올라설 것이라 예언하기도 했다.
찬사가 과했을까? 점차 터키는 변해갔다. 패권의 야심을 드러냈다. 중동에 공을 들이기 시작했다. 여기저기서 존재감을 드러내고 때론 매우 공격적인 모습을 나타냈다. 이슬람 과격 정치 단체인 무슬림형제단 네트워크 지원설도 들려온다. 이는 백 년 전 터키 제국의 서사와 맞물린다. 이슬람을 배경으로 하는 신오토만주의(Neo-Ottomanism)라 할 만한 지정학적 코드다. 아직 초보 단계이지만 범터키주의(Pan Turkism)에도 공을 들이고 있다. 아제르바이잔·우즈베키스탄·투르크메니스탄 등을 아우르며 터키 언어권 공동체의 리더 역할을 하려 한다. 이제 터키 확장 정책의 주력 방향은 서쪽(유럽)이 아니라 남쪽(중동)과 동쪽(중앙아시아)이다.
2023년은 오토만제국 해체를 확정했던 로잔조약 100주년이다. 터키의 목표는 뚜렷해 보인다. 옛 영화(榮華) 회복이다. 에르도안은 제국 해체 100년을 맞아 새로운 터키를 선언하며 제국 회복에 나설지 모른다. 옛 영토를 되찾자는 것은 아니겠지만 이슬람의 주도국, 터키 민족의 주도국이라는 중첩 리더십을 구체적으로 내세우며 나설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정치 리더십이 빠르게 권위주의화했다는 점이다. 에르도안이 권력욕을 드러내면서 문제가 불거졌다. 점차 공포정치 징후가 드러나고 있다. 의원내각제를 폐지하고 무리하게 대통령제로 바꾸는 과정에서 술탄이라는 비아냥도 듣기 시작했다. 전통적 터키 외교의 강점이 점차 사라지고, 폭력적이고 배타적인 대외 정책의 징후가 나타나고 있다.
에르도안이 오해하는 것이 하나 있다. 터키의 힘은 세력 과시나 강경한 태도에 있지 않았다. 진정한 힘의 근원은 이슬람권에서 가장 앞섰다고 칭송받아 온 정치 제도와 세속주의였다. 군부의 전횡과 혼란 같은 부침이 있었지만 방향만큼은 중동 어떤 나라보다 전향적이었다. 그 힘으로 터키는 부상했던 것이다. 중동 정치의 바람직한 미래상이라 칭송받았던 에르도안은 이제 보이지 않는다.
이번 쿠르드 공격 역시 비판을 피할 수 없다. 최근 이스탄불을 비롯, 4대 도시 지방선거에서 에르도안 측이 패배하자 쿠르드 공격을 통해 대중의 지지를 결집했다는 설도 퍼지고 있다. 사실이라면 대외 정책을 국내 정치에 이용한 셈이다. 과거 지중해 문명의 중심이었던 광대한 오토만제국이 절정에 올랐을 때의 힘은 개방성과 포용성에 있었다. 강압과 독단의 정치는 오래가지 못한다.
2011년 아랍의 봄이 중동을 강타했을 때 아랍의 대중은 에르도안을 연호했다. 독재자를 축출한 아랍 공화국이 모델로 삼을 만한 나라는 터키밖에 없었다. 중세 같은 사우디 왕정이나 음습한 이란의 신정주의 공화정은 답이 아니었다. 경제가 탄탄하고, 선거도 정착되어 있는 데다 이슬람과 세속이 공존하는 터키가 답이었다. 평화 선도 국가를 자임하며 내세운 다우토을루 외교장관의 새로운 터키 대외 전략도 주효했다. 민주주의, 이슬람, 경제 발전을 하나로 묶어낸 터키 소프트 파워는 최고조에 달했다. 미국의 미래 전망 기관 '스트랫포'의 조지 프리드먼은 2050년경에는 터키가 세계의 주역으로 올라설 것이라 예언하기도 했다.
찬사가 과했을까? 점차 터키는 변해갔다. 패권의 야심을 드러냈다. 중동에 공을 들이기 시작했다. 여기저기서 존재감을 드러내고 때론 매우 공격적인 모습을 나타냈다. 이슬람 과격 정치 단체인 무슬림형제단 네트워크 지원설도 들려온다. 이는 백 년 전 터키 제국의 서사와 맞물린다. 이슬람을 배경으로 하는 신오토만주의(Neo-Ottomanism)라 할 만한 지정학적 코드다. 아직 초보 단계이지만 범터키주의(Pan Turkism)에도 공을 들이고 있다. 아제르바이잔·우즈베키스탄·투르크메니스탄 등을 아우르며 터키 언어권 공동체의 리더 역할을 하려 한다. 이제 터키 확장 정책의 주력 방향은 서쪽(유럽)이 아니라 남쪽(중동)과 동쪽(중앙아시아)이다.
2023년은 오토만제국 해체를 확정했던 로잔조약 100주년이다. 터키의 목표는 뚜렷해 보인다. 옛 영화(榮華) 회복이다. 에르도안은 제국 해체 100년을 맞아 새로운 터키를 선언하며 제국 회복에 나설지 모른다. 옛 영토를 되찾자는 것은 아니겠지만 이슬람의 주도국, 터키 민족의 주도국이라는 중첩 리더십을 구체적으로 내세우며 나설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정치 리더십이 빠르게 권위주의화했다는 점이다. 에르도안이 권력욕을 드러내면서 문제가 불거졌다. 점차 공포정치 징후가 드러나고 있다. 의원내각제를 폐지하고 무리하게 대통령제로 바꾸는 과정에서 술탄이라는 비아냥도 듣기 시작했다. 전통적 터키 외교의 강점이 점차 사라지고, 폭력적이고 배타적인 대외 정책의 징후가 나타나고 있다.
에르도안이 오해하는 것이 하나 있다. 터키의 힘은 세력 과시나 강경한 태도에 있지 않았다. 진정한 힘의 근원은 이슬람권에서 가장 앞섰다고 칭송받아 온 정치 제도와 세속주의였다. 군부의 전횡과 혼란 같은 부침이 있었지만 방향만큼은 중동 어떤 나라보다 전향적이었다. 그 힘으로 터키는 부상했던 것이다. 중동 정치의 바람직한 미래상이라 칭송받았던 에르도안은 이제 보이지 않는다.
이번 쿠르드 공격 역시 비판을 피할 수 없다. 최근 이스탄불을 비롯, 4대 도시 지방선거에서 에르도안 측이 패배하자 쿠르드 공격을 통해 대중의 지지를 결집했다는 설도 퍼지고 있다. 사실이라면 대외 정책을 국내 정치에 이용한 셈이다. 과거 지중해 문명의 중심이었던 광대한 오토만제국이 절정에 올랐을 때의 힘은 개방성과 포용성에 있었다. 강압과 독단의 정치는 오래가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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