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1107 목
혼인잔치의 비유
마태복음 22장 1-14절
본문 역시도 예수님이 “혼인 잔치의 비유”를 들어서,
마지막까지 마음을 돌이키지 않고 예수님을 배척한 유대인들이
하나님나라의 잔치에 참여할 수 없는 자들임을 말씀합니다.
유대인들이 잔치를 진행하는 과정은 두 단계로 이루어집니다.
첫 단계는 초청할 사람들에 대한 초대입니다.
이것은 잔치가 언제 있을 것임을 알리는 단계입니다.
두 번째 단계는 잔치를 배설한 다음에 이루어지는 두 번째 초청입니다.
이제 잔치준비가 다 되었으니, 와서 참여하라는 두 번째 초청에 응하였을 때,
혼인잔치에 참여하게 되는 것입니다.
“천국은 마치 자기 아들을 위하여 혼인 잔치를 베푼 어떤 임금과 같으니
그 종들을 보내어 그 청한 사람들을 혼인 잔치에 오라 하였더니 오기를 싫어하거늘”(2절)
하나님이 그 종들을 보내어 신앙심이 깊은 유대교 지도자들을 혼인잔치에 오라 초청하였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혼인잔치에 오기를 싫어합니다.
“오기를 싫어했다”는 것은 “의도적으로 혼인 잔치에 참석하는것을 거부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심으로 하나님나라 혼인잔치가 배설되었건만,
유대종교지도자들은 하나님나라 잔치에 관심도 갖지않을 뿐만 아니라,
혼인잔치의 주인공인 신랑되신 예수님을 죽이는데 앞장서고 있음을 보고 있습니다.
임금되신 하나님께서 천국의 혼인잔치를 완벽하게 준비하고, 정중하게 초대받은 큰 은혜를 받았다면,
황송한 마음으로 감격하여 초청에 응해야 하건만,
“저희가 돌아보지도 않고, 하나는 자기 밭으로, 하나는 자기 사업하러 가고,
그 남은 자들은 종들을 잡아 모욕하고 죽였다고”(5-6절)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두 번의 정중한 초청에도 불구하고 끝내 거부한 사람들을 임금은 엄위함으로 다스립니다.
하나님의 성품은 한없는 사랑의 하나님이시지만,
하나님의 구원의 초청을 거부한 이들에게는 냉혹한 심판이 있음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아직 우리에게 하나님의 은혜의 시간이 남아있을 때,
마음을 돌이켜, 예수님을 나의 주인으로 섬기는 삶을 살아야할 것입니다.
“이에 종들에게 이르되 혼인 잔치는 예비되었으나 청한 사람들은 합당치 아니하니
네거리 길에 가서 사람을 만나는 대로 혼인 잔치에 청하여 오라” (8-9절)
초청한 자들이 거부하자, 임금은 종들을 시켜, 사거리에 나가서 악한 자나 선한 자나
만나는 대로 모두 혼인잔치에 청하고 데려오라 명령합니다.
혼인잔치에 손님들이 가득합니다. 그런데 그 혼인잔치에 합당하지 않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혼인잔치에 맞는 예복을 입지 않는 자들입니다.
길거리에서 초청을 받아서 바로 왔는데, 어떻게 옷을 바꾸어 입을 수 있습니까?
그 당시 유대사회에서는 잔치에 초청된 사람들에게는 주인이 예복을 한 벌씩 주는 관습이 있기에
임금 앞에서 혼인예식에 맞는 예복을 갖추어 입고, 예의를 갖출 수 있었습니다.
주목할 것은 하나님나라 잔치에 입은 아름다운 예복은 하나님이 주신 예복입니다.
가난한 사람들은 더 이상 자신의 누더기를 부끄러워할 필요가 없으며,
부자들 또한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소유를 뽐내거나 자랑할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무조건적 은혜로 하나님의 자녀로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세상의 옷, 자기의의 옷을 벗고, 예수님이 친히 예비해주신 의의 옷을 입어야합니다.
하나님나라에 참여한 사람들은 혼인잔치에 합당한 예복을 입는 것과 같이,
하나님나라의 잔치에 참여한 자들답게 품격있는 예복을 입어야 합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지금까지의 세상의 세속적인 삶의 습관을 버리고, 예수님의 성품으로 변화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하나님이 택하사 거룩하고 사랑받는 자처럼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참음을 옷입고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 같이 너희도 그리하고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라 이는 온전하게 매는 띠니라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
너희는 평강을 위하여 한 몸으로 부르심을 받았나니
너희는 또한 감사하는 자가 되라” (골3:12:15).
영광스런 주님의 신부로 살아갈때, 그 그 품격은 명품백이나 명품의류가 아닙니다.
긍휼, 자비, 온유, 겸손, 오래참음, 감사, 용서 그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는 삶임을 기억하십시요.
오늘 하루도 주의 신부된 품격있는 삶 살게 하소서!
기도하며 예수님과 눈빛 마주하며 기쁜 하루 보낼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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