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1030 수
맹인 두 사람을 고치신 예수님
마태복음 20장 29-34절
본문은 예루살렘으로 향하는 길 위에서, 예수님이 맹인을 치유하신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마태복음에는 눈먼 사람이 두 사람이라고 기록되어있고,
마가복음과 누가복음에서는 한 사람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마태복음에서 등장 인물들을 둘로 짝지우는 것은 마태복음 안에서만 볼 수 있는 특별한 현상입니다.
예수님이 예루살렘을 오르는 길에서, 앞을 보지 못한 사람을 치유하신 것은
영적으로 감겨진 제자들의 눈이 밝히 떠져서, 참된 예수의 제자로 성장케하기 위함입니다.
마태복음 9장에서 예수님이 맹인을 고치신후,
아무에게도 그 사실을 말하지 말라는 '메시야 비밀'에 관한 말씀이 주어졌는데,
본문에서는 '메시야 비밀'에 관한 말씀이 나오지 않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때가 되어, 메시야로 오신 예수님을 드러내기 위함입니다.
예수님의 일행이 여리고에 머물렀다가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던 길은,
유월절을 앞둔 시점이었기 때문에 많은 순례객들이 있었습니다.
수많은 순례객들이 예수님의 모습을 보고 그 뒤를 따랐습니다.
수많은 순례 행결 가운데, 길가에 앉아있는 맹인 두 사람이 앉아있었습니다.
맹인 두 사람이 예수님이 지나가신다함을 듣고 소리질러 외칩니다.
“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다윗의 자손이여”.
수 많은 순례객들이 모여있는 소란한 상황속에서 맹인 두 사람은 절박하게 예수님의 도우심을 간구합니다.
이때 무리가 그 소리를 듣고 두 맹인을 꾸짖고 제지합니다.
무리들의 꾸짖음과 제지에도 불구하고 여리고의 두 맹인은 더욱 소리지르며
예수님의 구원의 손길을 간절히 간구했습니다.
맹인들은 비록 육신의 눈은 보이지 않았지만, 영적인 눈은 열려져서,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정확히 믿고 있었던 사람들입니다.
맹인들이 예수님을 향해 소리쳤던 “주님, 다윗의 자손이여”라는 말은,
예수님을다윗의 자손으로 오신 메시야, 구원자임을 명확하게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이는 아무 육체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고전1:27-28).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라는 표현은 맹인들이 구걸할 때 쓰던 표현입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구원하시는 유일한 동기는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입니다.
하나님의 본성은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는 무조건적인 사랑에 있음을 기억해야합니다.
“여인이 어찌 그 젖 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
여인이 어찌 그 젖 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
내가 너를 내 손바닥에 새겼고 너의 성벽이 항상 내 앞에 있나니”(사49장 15-16절)
불쌍히 여겨달라고 소리치는 맹인들을 예수님은 불쌍히 여기사 그들의 눈을 만지시어 보게 해주셨습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고, 항상 우리의 얼굴을 당신의 심장에 두고계심을 믿고,
모든 상황속에서, 예수님의 사랑을 믿고 기도하는 자가 되어야 할것입니다.
그리하여,
내 평생의 소원, 나의 눈이 밝아져, 진리되신 예수님을 밝히 보고,
진리의 예수님을 더 사랑하고 순종하며 살아가는 복된 인생의 여정되길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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