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 1. 진정한 기쁨
"나를 보내신 이가 나와 함께 하시도다
내가 항상 그의 기뻐하시는 일을 행하므로 나를 혼자 두지 아니하셨느니라"(요 8:29)
기쁨은 언제나 그분과 함께 하는 것임을 아셔야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분리되어 있다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며
하나님 안으로 들어가기 때문에 당연한 기쁨을 얻는 것입니다.
또한 요한복음 4장에 예수님게서 이렇게 표현하셨습니다.
수가 동네에 들어가셔서 사마리아 여인과 만나 대화를 나누신 후에 제자들이 음식을 마련해 온 장면입니다.
"그 사이에 제자들이 청하여 가로되 랍비여 잡수소서
가라사대 내게는 너희가 알지 못하는 먹을 양식이 있느니라" (요 4:31-32)
이것을 양식이라고 표현했다는 것은 얼마나 놀라운 것입니까?
이것이 그분의 삶의 연장적 요소요, 존재의 에너지요, 동력입니다.
이것 없이는 존재하지 못합니다.
이것을 하기 위해서 존재한다는 것만으로는 설명이 부족합니다.
이것으로 삽니다. 이것을 위해서 사는 것이 아니라 이것 때문에 산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자란 이런 사람이어야 됩니다.
신자의 존재는 바로 이런 영역과 이런 본질과 이런 원리로 만들어지고 움직여지고
그것으로 힘을 얻는 자이어야 됩니다.
신자의 존재라는 것은 일단 "살고 보자" 라는 것이라면 틀린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이것을 아주 대표적으로 진술하는 성경이 하박국서입니다.
하박국서가 재미있는 것은 그 주제가 신앙 문제에 있어서 근본적인 문제를 다루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1. 진정한 기쁨
"여호와여 내가 부르짖어도 주께서 듣지 아니하시니 어느 때까지리이까
내가 강포를 인하여 외쳐도 주께서 구원치 아니하시나이다
어찌하여 나로 간악을 보게 하시며 패역을 목도하게 하시나이까
대저 겁탈과 강포가 내 앞에 있고 변론과 분쟁이 일어났나이다
이러므로 율범이 해이하고 공의가 아주 시행되지 못하오니
이는 악인이 의인을 에워쌌으므로 공의가 굽게 행함이니이다"(합 1:2-4)
하박국 선지자의 질문은 이것입니다.
"왜 하나님께서는 선하시고 의로우신데 세상 돌아가는 것을 이대로 방치하십니까?
왜 악인들이 설치는 것을 놔두며 의로운 자들이 악인들에 의해서 고난 당하는 것을 놔두십니까?"
오늘날도 그렇지 않습니까?
그래서 오늘날 많은 신자가 되고 나가면 의인으로 살아 가지고는 도무지 안 되니까
악인으로 살기로 결심합니다.
주일날만 신자가 되고 나가면 의인으로 살아 가지고는 도무지 안 되니까
악인으로 살기로 결심을 해서 이젠 그것이 만연된 풍토입니다.
신자답게 사는 모습을 거의 찾을 수 없게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신자의 삶을 요구하면 언제나 너무도 떳떳이 이렇게 대답합니다. "그래 가지고 어떻게 살아요?"
언제부터인가 요 따위로 대답하는 것에 겁을 안 냅니다.
정말 그래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신자란 그렇게 대답해서는 안 됩니다.
그랬더니 하나님께서 이렇게 대답하십니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여러 나라를 보고 또 보고 놀라고 또 놀랄지어다
너희의 생전에 내가 한 가지 일을 행할 것이라
누가 너희에게 말할지라도 너희가 믿지 아니하리라
보라 내가 사납고 성급한 백성
곧 땅이 넓은 곳으로 다니며 자기의 소유가 아닌 거처들을 점령하는 갈대아 사람을 일으켰나니
그들은 두렵고 무서우며 당당함과 위엄이 자기들에게서 나오며
그들의 군마는 표범보다 빠르고 저녁 이리보다 사나우며
그들의 마병은 먼 곳에서부터 빨리 달려오는 마병이라
마치 먹이를 움키려 하는 독수리의 날음과 같으니라
그들은 다 강포를 행하러 오는데 앞을 향하여 나아가며 사람을 사로잡아 모으기를 모래 같이 많이 할 것이요 왕들을 멸시하며 방백을 조소하며 모든 견고한 성들을 비웃고 흉벽을 쌓아 그것을 점령할 것이라
그들은 자기들의 힘을 자기들의 신으로 삼는 자들이라
이에 바람 같이 급히 몰아 지나치게 행하여 범죄하리라 (합1:5-11)
뭐라고 질문을 했습니까?
하나님 어떻게 이대로 놔두십니까?
왜 악인들이 더 성하는 것은 놔두시고 선한 자들이 어려운 일을 당하는 데도 내버려두십니까?
하나님은 대답은 이것입니다.
아직도 멀었다. 더 할 것이다. 악은 기승을 부릴 것이요, 죄는 더 심해질 것이요,
악인들이 더 득죄하고 더 나서서 선한 사람들을 괴롭히고, 세상은 더 엉망진창으로 굴러가리라.
그래서 하박국 선지자가 처음에 질문하다가 놀라서 12절 이하에 이런 반문을 합니다.
"하나님! 하나님께서는 이런 분이 아니시지 않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의로우시고 선하시고 죄를 놔두시지 않는 분이지 않습니까? 그런데 왜 이렇습니까?"
다음에 답이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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