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분별
[14] 내 손에 쥐어줘요
그런데도 신앙의 내용 중에서거의 1퍼센트 안팎에 해당하는 어떤 지식을 붙잡았다는 이유로
나머지 대부분의 영역과 내용을 스스로가 거부하는 올무에 빠질 수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우리 요구의 정당성을 꼬치꼬치 따지기도 합니다.
"하나님, 생각해보십시오. 저에게 돈을 주신다고 밑지는 것이 뭐가 있습니까?
다른 사람이 볼 때도 예수를 믿었더니 잘 살게 됐다고 하면 하나님께 영광이요, 저도 행복하고,
십일조를 더 많이 낼 테니 하나님 일에 이익이요, 누이 좋고 매부 좋고 하나님 좋고 신자 좋은 일을
왜 마다하십니까?"
이것이 기껏 예수 믿어서 뭘 좀 알게 됐다는 사람의 논리입니다.
그러나 아닙니다. 신앙은 그런 정도가 아닙니다. 우리가 모르는 부분이 태반입니다.
물론 미루어 짐작하는 바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만
하나님이 하시는 일에는 우리가 모르는 것이 너무나 많습니다.
전도서 식으로 말하자면,
우리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알지 못하게 하시려는 이유는, 경외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만일 우리가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함께 설계하고 의논한다면,
아마도 우리는 사흘 안으로 정신병원에 들어가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에 대해 우리가 무엇이든지 알고 무엇이든지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망상인 동시에 감당치 못할 일임을 알야 합니다.
우리가 어른이 되고나서 가장 부러워하는 시기가 언제입니까? 중고등학생 시절일까요?
그런데 아이들은 부모님들의 무엇을 부러워하죠?
쓰고 싶을 때 언제나 돈 쓸 수 있는 것이 부러워서 얼른 어른이 됐으면 합니다.
어른이 되면 사실 기쁠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어렸을 때가 좋은 것입니다.
어른이 된 인간은 늘 어린 시절을 회고하며 감상에 잠깁니다.
하나님과 동업자 되어서 영원 전부터 생각하고 매일 깨어서 졸지도 자지도 않고 성도를 지키려면,
졸려오니까 매일 블랙으로 커피를 마셔야 합니다.
늘 부르짖는 모든 기도에 응답해야 하고 자비로워야 하며 한없이 인내해야 되고...
왜 우리는 맡기면 되는 일을 일일이 다 좇아다니며 하려고 합니까?
그것은 우리가 감당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그런데도 자꾸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것은 우리의 신앙이 능력의 발휘 쪽으로 가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집을 지을 때, 자기 손으로 짓겠습니까, 아니면 어디 시공업체에 맡겨서 집을 짓겠습니까?
자기 손으로 집을 짓겠다는 이유 중의 하나는 부실공사가 되지 않도록 하겠다는 것인데,
그것 외에 무엇 때문에 자기가 시멘트를 섞고 철근을 세우며 망치질을 하겠습니까?
그렇게 안합니다. 제일 잘하는 사람 불러다 시킵니다.
하나님 안에서 산다는 것은 이 모든 비유에서 나타난 것과 같이,
모든 면에서 최고의 지위와 특권을 누리는 행복한 운명이 됐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 권한을 행사하는 법에 대해서 어수룩합니다.
끊임없이 내 손에 망치와 톱, 리어카를 쥐게 해 달라고 아우성을 치고 있습니다.
봉사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안심하기 위해서입니다.
이것처럼 불행한 신앙은 없습니다.
주님을 사랑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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