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영중 고려대 노어노문학과 교수 강연
“삶에 대한 강렬한 희망만이 삶을 견뎌낼 힘”
글 명지예 기자 2019-05-24
한국은 이미 고령화 사회에 접어든지 오래다.
다가오는 2025년에는 고령인구가 1천만 명에 달할 것이라는 예측이 나온다.
전 세계 어느 나라보다 빠르게 대한민국은 고령화를 넘어 초고령화 사회로 달려가는 중이다.
하지만 고령의 삶은 녹록치만은 않다.
질병과 고독 같은 문제들은 노인의 행복을 방해한다.
15일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은 ‘연령대별 삶의 만족 영향요인 분석과 정책과제’ 보고서를 통해
한국인의 삶의 만족도는 중장년기부터 계속해서 떨어진다고 밝혔다.
조선뉴스프레스 ‘마음건강 길’은 23일 <마음 디톡스, 인생 후반전 준비하기> 콘퍼런스를 통해
주변 상황과 무관하게 행복하게 사는 방법을 모색했다.
연사로 나선 석영중 고려대학교 노어노문학과 교수는 ‘도스토옙스키, 제 2의 생’이라는 주제로 강연했다.
석 교수는 “일생이 고통으로 가득 찼던 도스토옙스키는 오직 삶에 대한 강렬한 희망으로 고통을 견뎌냈다"고
말했다.
석 교수는 러시아 대문호 도스토옙스키가 시베리아 유형지에서 복역했던 9년 동안
치열한 자기 성찰과 생에 대한 희망으로 새로운 인간으로 다시 태어났다고 설명했다.
잘 알려지지 않은 도스토옙스키의 단편 소설 <농부 마레이>를 소개하며
그가 어떻게 삶을 새롭게 볼 수 있었는지 전했다.
다음은 석영중 교수의 강연 요약이다.
러시아 대문호 도스토옙스키는 한 사람의 인생이라고 하기에 너무도 고통스러운 삶을 살았습니다.
그는 반정부 조직에 참여했다는 죄목으로 체포되어 시베리아 유형지에서 9년간 복역했습니다.
이 지옥 같은 시간을 그는 치열한 자기 성찰과 생에 대한 강렬한 희망으로 견뎌내고
새로운 인간으로 다시 태어났습니다.
이렇게 다시 태어남의 시간이 없었더라면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대문호 역시 없었을 것입니다.
‘다시 태어남’은 <죽음의 집의 기록>에서 <카라마조프가의 형제>에 이르기까지
도스토옙스키의 대작 전체, 그의 일생 전체, 그리고 독자, 이 세 부분을 연결하는 가장 강력한 화두입니다.
고통은 절대적이면서도 상대적입니다. 그리고 보편적이면서도 개인적이죠.
각자 겪는 고통을 비교한다는 것은 의미가 없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보편의 고통을 생각할 때
타인의 고통에 연민을 느낄 수 있고, 그 과정에서 나의 고통이 경감되기도 합니다.
고통은 ‘비극적인 인간’에 기여하는 원인이지만 동시에 고통을 겪으며 인간은 한편으로 성장합니다.
도스토옙스키는 삶이 비극적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살아갈 가치가 있다고 계속 강조합니다.
인간이 고통으로 계속 찢기고 유한한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선택에 따라 언제든 다시 태어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반복되는 ‘다시 태어남’만이 인간을 인간답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사실 그가 유배지에서 처음부터 희망을 품었던 것은 아닙니다.
그는 수많은 죄수들과 감옥에 갇혀 살면서 매일 노역을 해야만 했습니다.
그를 가장 힘들게 했던 것은 더러운 환경도, 배고픔도, 노역도 아닌 ‘강제적인 공동생활’이었습니다.
죄수들 사이에는 증오가 가득했고 도스토옙스키 또한 그들을 증오했죠.
그는 이곳을 “죽은 집"이라고 설명합니다.
“지옥이란 더 이상아무도 사랑할 수 없는 고통"이라고 말하면서 말이죠.
이랬던 그가 감옥에서 갱생의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치열한 시각 훈련을 통한 자기 내면 응시 덕분이었습니다.
그는 이러한 깨달음이 있기까지 세 단계를 거쳤습니다.
첫째로 자신에 대한 엄격한 평가입니다.
그는 “고독 속에서 과거를 깊이 음미해보고 용서 없이 엄격하게 스스로를 평가했다.
심지어 어떤 때는 이러한 고독을 나에게 보내준 운명에 감사했다"고 말합니다.
그 때 그는 자신도 자신이 그렇게 증오하던 “그 지옥의 일부"임을 깨닫습니다.
두 번째는 견뎌냄입니다. 그는 결국 9년 동안의 유배 생활을 참아냈습니다.
희망이나 목적이 있어서 견디는 것이 아닙니다. 이 견뎌냄 자체가 희망, 아주 뿌리 깊은 희망입니다.
마지막은 사랑입니다. 그에게 사랑은 관념이 아닌 실천의 문제입니다.
다시 태어나 새로운 눈으로 생을 바라보고 생의 기쁨을 만끽한다는 것은 곧 인간을 사랑한다는 뜻입니다.
이 깨달음은 그의 단편 소설 <농부 마레이>에 잘 드러나 있습니다.
소설의 내용은 간단합니다.
주인공은 도스토옙스키 자신을 투영한 29살 정치범입니다.
주인공은 유배지에서 다른 죄수들을 증오하며 비참한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그가 침상에 앉아 깜빡 조는데, 9살 때 있었던 일이 문득 떠오릅니다.
그는 어릴 때 마을 숲에서 놀다가 늑대의 환영을 보고 두려움에 사로잡혔습니다.
그 때 마을 어귀에서 만난 농부 마레이가 그를 토닥거리며 안심시켜주었습니다.
주인공은 그 일을 떠올린 이후 눈을 뜨고 주변을 둘러보는데,
갑자기 증오스러웠던 죄수들을 전혀 다른 시선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그들이 또 다른 ‘마레이’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죠.
바로 ‘개안(開眼)’의 순간입니다.
성찰, 인내, 사랑으로 이루어지는 갱생의 테마를 통해 대문호가 인류에게 전달하는 것은 결국 희망입니다.
그는 죽기 1년 전 쯤 이런 말을 합니다.
“그 모든 상실에도 불구하고 나는 삶을 사랑한다. 열렬히 사랑한다.
삶을 위해서 삶을 사랑한다. 진정으로 나는 지금도 내 삶을 다시 시작할 준비가 되어 있다."
즉, 삶을 다시 시작한다는 것은 때가 없습니다.
그리고 그는 모든 상실에도 ‘불구하고’ 삶을 사랑한다고 말했지만,
저는 모든 상실 ‘덕분에’로 바꿔 말할 수 있다고 봅니다.
인간은 ‘불구하고’를 ‘덕분에’라고 바꿀수 있는 능력 덕분에 위대하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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