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주말- 별별다방으로 오세요!]
자식 인생 대신 살아줄 수는 없더라는 깨달음이
서녘 하늘 황혼처럼 부모의 노년을 아름답게 물들여간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러나 그 깨달음은 대개 너무 아프게, 거칠게 찾아옵니다.
성숙과 이해의 과정이 아닌 단절과 거부라는 형태로…. 홍여사
"각자 인생이야. 당신은 이제 나한테나 신경 쓰면 돼."
남편은 자주 이렇게 말합니다.
다 큰 자식이 어떤 인생을 살아가든 너무 연연하지 말라고요.
물론 맞는 말입니다. 그렇게 말해주는 남편이라도 있어서 고맙고요.
그런데 그 말을 들을 때마다 가슴속에 찬바람이 휭 지나가는 건 어쩔 수 없네요.
십몇 년 전 일입니다.
결혼을 앞둔 딸아이가 뜻밖의 말을 하더군요.
자기네 부부는 아이를 가지지 않기로 합의를 했다고요.
그때만 해도 비혼이니 딩크니 하는 말을 흔히 듣지 못할 때라 저는 딸의 말을 얼른 알아듣지도 못했습니다.
너 혹시 몸에 무슨 문제가 있느냐고 물었고,
그게 아니면 예비 사위가 말 못할 사정이 있는 건가 싶어 가슴이 두근거렸죠.
그러나 딸의 대답은 한가롭고도 태연하더군요. 확신이 없어서 그런 큰일을 벌일 수가 없다고요.
세상 누가 확신을 갖고 자식을 낳느냐고 말하려는데, 남편이 일단 저를 말리더군요.
그 대신 딸에게 "어떤 확신을 말하느냐"고 묻는 겁니다.
딸의 대답은 차분한 듯 중구난방이었습니다.
아이를 키우기엔 세상이 너무 끔찍하다.
아이 하나 키우는 데 너무 많은 돈이 드는 세상이다.
잘 키울 자신도 없다.
자식이 나중에 원망할 것 같다.
그리고 인생의 의미가 꼭 자식에게 있는 것은 아니라 생각한다.
우리 둘만으로도 충분하다.
그때만 해도 저는 아직 '엄마'였습니다.
딸이 하는 말에 귀를 기울이기보다는 무슨 말로 이 철없는 생각을 고쳐줄까 생각했죠.
네가 아이를 낳아보면 이 끔찍한 세상에 희망과 온정이 보일 거다.
그리고 너희 부부, 대한민국 평균 소득을 훨씬 웃도는 맞벌이 부부다.
자신이 없다는 건 네가 모범생이고 겸손해서다.
사랑으로 키우면 아이는 절대 원망 안 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하나 더. 지금은 젊으니까 둘만 있어도 충분하지, 결국엔 자식으로 연결되는 게 부부다.
네 아빠랑 내가 아무 말 없이도 통하고, 서로 측은해하며 사는 이유는 가운데 자식들이 있어서다.
딸의 대답은 간단했습니다.
그러나 세월과 밀당하기에 저는 지나치게 상상력이 풍부한 사람이더군요.
말하는 투를 보니 내가 괜한 걱정을 한 게 맞는 모양이더군요.
"어머님은 그런 거 안 물으셔."
그쯤에서 가슴이 답답해져 왔습니다.
"너희, 맘대로 살 자유는 있지만, 시부모님께 죄송한 줄은 알아야 한다.
"아, 지겨워 정말.
"그게 나를 위해서야?"
"말은 나를 위한다면서 엄마가 마음 편할 궁리만 하잖아. 너무 이기적이야."
"뭐? 이기적? 입은 비뚤어져도 말은 바로 하자. 너 이기적이라서 애 안 낳는 거잖아.
"맞아. 나 이기적이야.
그 순간 입을 다물었습니다. 그 이상 듣게 될 말이 두려워서요.
그날 이후 여태껏 저는 딸에게 더는 이래라저래라 간섭(?)하지 않았습니다.
그러고 보니 딸의 말은 절반은 맞고 절반은 틀린 말이네요.
저는 이제 더는 딸의 인생 선택에 연연하지는 않습니다.
다시 젊은 날로 돌아간다면 나는 아이에게 젖을 물리며 차라리 내 어머니를 생각하겠습니다.
※실화를 바탕으로 재구성한 사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