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깥 세상]

[일본]'2·8독립선언'현장, 도쿄 기독교청년회관

colorprom 2019. 2. 7. 13:49


'2·8독립선언' 현장인 도쿄 기독교청년회관, 관동대지진 때 붕괴

지금은 세탁소 영업


조선일보
                             
             
입력 2019.02.07 03:07

[3·1운동 100, 임시정부 100] [2] 100년전 그 자리, 찾아가 보니

도쿄 미나토구(港區) 아자부주반(麻布十番)의 주일본 대한민국 대사관에서 10분만 걸으면 미타1초메(三田1丁目) 10번지 11호에 다다른다. 흰색 외벽이 눈길을 끄는 4층짜리 작은 맨션. 작은 골목을 사이에 두고 36층짜리 타워맨션이 우뚝 서 있다. 북쪽을 바라보면 도쿄타워가 보인다. 100년 전 2·8독립선언 거사 전야, 조선청년독립단이 찾았을 '이토(伊藤)인쇄소'의 흔적은 찾을 수 없었다.

'이토인쇄소'는 2·8독립선언에서 빼놓을 수 없는 역사적 장소다. 조선청년독립단이 1919년 2월 7일, 일제 외무성과 해외 각국 대사관에 보낼 '민족대회 소집 청원서' 1000여 장을 인쇄한 곳이다. 주인 이토 류타로는 태평양전쟁 전 세상을 떠났다. 1980년대 당시 '이토인쇄소'를 기억하던 인근 이웃들은 "그의 처(妻)가 사업을 이었지만, 전쟁 후 인쇄소 사정이 나빠지자 이사했다"고 전했다.

현재 일본 도쿄 재일본한국YMCA 사옥 앞에 세워진 2·8 독립선언기념비.
현재 일본 도쿄 재일본한국YMCA 사옥 앞에 세워진 2·8 독립선언기념비. /최은경 특파원

이곳에서 인쇄한 '민족대회 소집 청원서'는 독립선언문에 비해 덜 알려져 있다. 일본 정부를 상대로 '조선민족대회 개최를 허가해 달라'고 당당히 요구하는 내용이다. 조선이 일제의 강제 병합 이래 10년간 생존과 발전을 위협받고 있다는 비판도 담겼다. 청원자는 '조선청년독립단 대표'라는 설명과 함께 최팔용 등 2·8선언서에 이름을 올린 11명이다. '내란죄'에 따른 중형을 각오한 행동이다.

'민족대회 소집 청원서'의 토대를 만든 건 춘원 이광수다. 당시 스물일곱이었다. 그는 훗날 펴낸 '나의 고백'(1948)에서 "나는 내가 기초한 독립선언서와 일본 의회에 보내는 글과 그것을 인쇄할 돈 300원을 최팔용에게 주었다"고 적었다. 조선청년독립단 대표 중 한 명인 백관수와 세이소쿠영어학원 학생 김희술은 도쓰카초(戶塚町)로 불리던 동네에서 자취했다. 백관수의 집은 '작전 본부'와도 같았다. 국문·일문판 '독립선언서'와 '독립선언서 부(附)결의문'은 김희술의 자취방에서 인쇄했다고 전해진다. 조선기독교청년연맹에서 빌려온 등사기로 600장씩이다.

2·8독립선언 현장인 조선기독교청년연합(재일본 한국 YMCA의 전신)의 기독교청년회관도 사라졌다. 도쿄 지요다(千代田)구 니시간다(西神田)에 있던 2층짜리 건물은 1923년 관동대지진으로 완전히 무너졌다. 이 자리엔 5층짜리 빌딩이 들어섰다. 1층엔 세탁소가 영업 중이다.

2·8선언 이튿날 도쿄 아사히신문은 '조선학생 대검거, 60여 명 니시간다서(署)에…강제 연행 도중 수 명 부상'이라는 짧은 기사로 전했다. 다즈케 가즈히사 2·8독립선언 기념자료실 실장은 "식민지 청년들이 종주국 수도에서 독립선언을 하는 건 세계사적으로 유례가 없는 용감한 일"이라고 했다.

이날을 기억하는 건 지금 재일본 한국 YMCA 건물 앞에 서 있는 2·8독립선언 기념비, 이 건물에 자리 잡은 2·8독립선언 기념자료실뿐이다. 재일본 한국 YM CA는 1929년 옛 자리에서 600m 떨어진 지요다구 사루가쿠2초메(猿樂2丁目)에 새로 자리를 잡았다. 오는 8일에는 2·8 독립선언 1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한 행사를 연다. 피우진 국가보훈처장, 이수훈 주일대사와 애국지사 유가족 등 250여명이 참석한다.

2·8독립선언 현장에 기념비를 세우는 일은 숙제로 남아 있다. 다즈케 기념자료실장은 "조선기독교청년회관이 있던 곳은 사유지라 한·일 관계가 돈독해지면 그때 소유주와 함께 실마리를 찾아볼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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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민지 청년들, 침략국 수도에서 독립선언… 세계사에 전무후무"윤소영·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학술연구부장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9/02/07/2019020700275.html


    

도쿄서 11년째 '조선의 독립선언' 알리는 일본인


조선일보
                             
             
입력 2019.01.29 03:01

2·8 독립선언 기념 자료실 지켜온 다즈케 가즈히사 실장
"역사를 공부하고 기억하는 게 한·일 소통의 열쇠라고 생각"

일본 우익의 성지, 도쿄 지요다구 야스쿠니(靖國) 신사에서 20분 정도 걷다 보면 진보초 헌책방 거리 뒤편 골목에 위치한 재(在)일본 한국YMCA 사무실 건물이 나온다. 이 건물 꼭대기 10층에 '2·8 독립선언 기념자료실'이 있다. 열 평 남짓한 이곳이 도쿄 내 유일한 2·8 독립선언 기념 공간이다. 1919년 2월 8일, 재일 조선인 유학생 600여 명이 도쿄 한복판의 조선기독교청년회관(현 재일본 한국YMCA 전신)에서 독립선언문을 낭독한 일은 3·1 만세 운동의 기폭제가 됐다.

일본 도쿄에 있는‘2·8독립선언 기념 자료실’을 11년간 지켜온 다즈케 가즈히사 실장이 2·8 독립선언 설명 자료를 소개하고 있다.
일본 도쿄에 있는‘2·8독립선언 기념 자료실’을 11년간 지켜온 다즈케 가즈히사 실장이 2·8 독립선언 설명 자료를 소개하고 있다. /최은경 특파원
2008년부터 11년간 2·8 독립선언 기념자료실을 지켜온 건 일본인 다즈케 가즈히사(田附和久·52) 실장이다. 운영 실무, 자료 관리는 물론 이곳을 찾는 매년 1000명가량의 한·일 방문객들에게 2·8 독립선언과 그 의미를 설명하는 일을 하고 있다. "2·8 독립선언 기념자료실은 사실 야스쿠니 신사에서 몇 ㎞ 떨어지지 않았는데 여러모로 대조적인 공간이에요. 존재 이유, 자료실 규모, 방문객 수 모두 그렇죠. 작더라도 도쿄에 2·8 독립선언을 기억하는 공간을 지켜나간다는 게 중요한 것 아닐까요." 지난 24일 다즈케씨가 말했다.

다즈케씨는 1986년 도쿄외국어대 한국어학과(조선어학과)에 입학하면서 한국과 처음 인연을 맺었다. 그때만 해도 한국어를 배우려는 일본인이 거의 없어, 대학 합격 커트라인이 낮을 것 같아 선택한 전공이었다. 하지만 이내 한국 전통 문화와 역사에 빠져들었다. 연세대 교환학생도 다녀왔다. 한국에서 사물놀이, 특히 장구에 빠진 그는 귀국 후 '장구 강습'이 있던 재일본 한국YMCA 사무실의 문을 두드렸다. 이후 재일교포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는 봉사자로, 얼마 후엔 재일본 한국YMCA의 정식 직원이 됐다. 그사이 히토쓰바시 대학원에서 한국 독립운동사를 공부하며 석사 학위도 땄다. 2006년 2·8 독립선언 기념자료실 개관이 결정되자, 직원들의 추천으로 자료실장을 맡아 준비 실무를 도맡았다.

다즈케씨는 "2·8 독립선언이 전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찾기 힘든, 식민지 종주국의 수도 한가운데에서 발생한 독립운동이라는 점을 보여주고 싶었다"면서 "김마리아 등 여성 운동가들의 활약이나 후세 다쓰지 변호사 등 조선인 유학생을 도왔던 일본인들의 이야기도 알리는 자료실을 만들려 했다"고 했다.

올해는 특별히 2·8 독립선언 100주년을 맞아 다양한 기념사업을 진행 중이다. 2017년부터 총 8차례에 걸쳐 개최한 2·8 독립선언 세미나 연구 결과를 정리해 책으로도 출판할 예정이다. 2월 8일엔 재일본 한국YMCA 사무실 2층에 새로운 2·8 독립선언 기념자료실을 연다. 한국과 일본의 젊은 사람들이 더 쉽게 찾아오고, 이곳에서 역사를 공부하는 모임도 열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다즈케씨는 작은 기념관을 계속 지키는 이유에 대해 "역사를 공부하고 기억하는 게 결국 한·일 양국 소통의 열쇠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 그는 "일본의 학교에선 과거 식민지 조선에 대한 가해 역사는 거의 가르치지 않는다"면서 "이런 역사 지식의 불균형 때문에 일본인은 계속 한국인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한국인들에게는 도쿄에서도 조선 독립을 위해 힘쓴 조선인들이 있었다는 자랑스러운 역사를, 일본에는 우리가 되풀이해선 안 될 역사를 기억하고 알리는 장소로 남아있을 겁니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9/01/29/2019012900232.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