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2018.09.19 03:13
올 5월 일본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만든 영화 '어느 가족'이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받았다.
"'우나기' 이후 21년 만의 쾌거"라고 일본 열도가 들썩였다.
그런데 평소 자국 문화예술·스포츠인이 국제무대에서 큰 상을 받을 때마다 뜨거운 찬사를 보내던
아베 신조 총리는 침묵했다.
고레에다 감독이 반(反)아베 성향인 데다 영화가 일본 사회의 어두운 면을 다루고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쿨 재팬(cool Japan·일본 문화를 세계에 알리자는 일본 정부의 프로젝트)'을 표방하는 일본 총리가
그릇 작은 리더임을 보여준 것이다.
그런데 지금 일본 문화재계에서 똑같은 '좁쌀 행태'가 벌어지고 있다.
최근 1년간 오사카에서 연수하면서 만난 간사이 지역 박물관 관계자들은
"지금 분위기가 최악"이라고 했다. '쓰시마 불상'으로 인한 일본 내 반한(反韓) 감정이 심각해서다.
한국 절도범들이 일본 쓰시마섬(對馬島)에서 훔쳐온 고려 불상(佛像)을
충남 서산 부석사로 인도하라는 법원 판결에 따라 여태껏 일본으로 돌려주지 않고 있는 게 문제의 발단이다.
피해는 우리 박물관들에 떨어지고 있다.
특히 고려 건국 1100주년을 맞아 올해 12월 열릴 예정인 '대(大)고려전'이 직격탄을 맞았다.
국립중앙박물관은 개방적이고 독창적인 문화를 이룩했던 고려의 총체적 면모를 보여주기 위해
전 세계에 흩어진 고려 명품을 모으는 중이다.
상당수 명품이 일본에 있기에 일본 측 협조가 긴요하다.
하지만 일부 사찰과 사립박물관은 아예 접촉 창구를 닫았고,
국립·시립박물관들도 "일본 중요문화재로 지정된 최상급 명품은 빌려줄 수 없다"고 난색을 표하고 있다.
한 일본 학예사는
"한국과는 관계를 유지해야 하니 우리도 빌려주고 싶다. 그런데 문화청이 허가를 안 해줘서 난감하다"고 했다. 작품을 소장한 기관이 대여하겠다는데도 일본 문화청이 "노(No)" 하고 있다는 얘기다.
일본에선 국가가 지정한 국보나 중요문화재를 해외로 반출할 경우 정부 허가를 받아야 한다.
최상급 고려청자와 사경, 나전칠기 수 점이 일본 중요문화재로 지정돼 있다.
정부가 불허한다면 고려전에 출품도 할 수 없다.
쓰시마에서 훔쳐온 불상은 지금이라도 돌려주는 것이 마땅하다.
약탈이라는 확증이 없는데 장물을 돌려주지 않으니 꼭 필요한 교류까지 발목 잡힌 것이다.
그러나
소장자 개인의 의지가 아니라 정부가 위에서 틀어막고 있다면, 이는 다른 차원의 문제다.
고려청자는 일본의 중요문화재이기 전에 고려의 유산이고 후손인 한국인들이 감상할 권리가 있다.
판결 하나를 빌미로 정당한 문화재 교류까지 방해하는 건 문제를 더 키울 뿐이다.
겉으로 '쿨 재팬'을 외치면서 속으론 '언 쿨(un-cool)'인 일본 정부의 뒤끝이 씁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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