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2018.09.04 03:13
로마 누마, 獨 프리드리히 2세… 개인적 성품·취향 한계 넘어서 공적 역할과 책무 성공적 수행
宋나라 양공 같은 리더는 개인 도덕률에 빠져 본분 잊고 조직을 파탄·혼란에 빠뜨려
현대 독일의 시발점이 된 원형(原型)은 동유럽 변방에 있던 프로이센 공국이다.
프로이센을 국가로 도약시킨 주인공은 프리드리히 2세(1712~1786)인데
그는 왕자 시절 국정(國政)에는 관심 없고 예술과 철학에 빠진 감수성 풍부한 문학청년이었다.
엄격한 부왕(父王)이 군대식 규율과 가혹한 훈련을 강요하는 걸 견디다 못해
해외 도피를 감행했다가 실패했다. 자신은 유폐되고 동행한 친구는 참수형을 당했다.
이런 고난은 역설적으로 그가 주어진 운명을 깊이 자각하는 계기가 됐다.
1740년 왕위를 계승한 28세의 젊은 군주는 정치와 군사라는 책무에 충실하면서 뛰어난 역량을 발휘했다.
1740년 왕위를 계승한 28세의 젊은 군주는 정치와 군사라는 책무에 충실하면서 뛰어난 역량을 발휘했다.
오스트리아 왕이자 신성로마제국 황제인 카를 6세가 사망하고 마리아 테레지아 공주가 승계하자,
여성의 왕위 계승을 금지하는 '살리카법' 위반을 명분으로 오스트리아의 노른자위 슐레지엔 지방을 점령했다.
이에 절치부심하던 오스트리아가 프랑스·러시아와 동맹을 맺고 프로이센을 침공해
3대1로 맞붙은 7년 전쟁(1756~1763)에서 그는 승리했다.
이후 내정을 개혁하고 감자를 식량 자원으로 보급하는 등 민생에 힘써 프로이센을 강대국으로 만들었다.
그는 자유로운 영혼이던 청년기의 개인적 성향을 갈무리해 군주의 역량으로 승화시켰고
프로이센과 독일제국 역사를 통틀어 유일하게 대왕(The Great)으로 불린다.
리더도 인간이기에 개인의 취향과 리더로서의 역할이 같을 수만은 없다.
운명적으로 주어진 공적 역할과 개인적 선호도 사이에서 생겨나는 갈등은 현실에서 흔하다.
범인(凡人)은 자신의 성품과 취향대로 행동하면 그만이지만, 리더는 다르다.
리더가 개인적 취향과 자신의 책무를 명확히 구분해야 공동체는 번영한다.
중국 춘추시대 송(宋)나라 양공(襄公·?~BC 637)은 당대 최강자였다.
중국 춘추시대 송(宋)나라 양공(襄公·?~BC 637)은 당대 최강자였다.
그는 주변국 정(鄭)나라와 남방의 신흥국 초(楚)나라의 우호 관계를 깨기 위해 정나라를 공격했다.
양공의 예상대로 초나라가 구원군을 파견하자 홍수(泓水)로 먼저 이동해 결전을 준비했다.
군이 강을 건너는 절호의 기회에서 참모들은 공격을 건의했으나 양공은 거부했다.
'상대편의 약점을 노리는 것은 군자의 도리가 아니다'는 이유였다.
도강한 적군이 대형(隊形)을 형성하자 참모들이 재차 공격을 건의했으나 양공은 또 물리쳤다.
적군이 전투태세를 갖춘 후 시작한 싸움에서 양공은 대패하고 목숨까지 잃었다.
후세인들은 개인적 도덕률에 빠져 군주로서의 본분을 망각하고 패망한 양공의 어리석음을 일컬어
'송양지인(宋襄之仁)'으로 부른다.
로마를 건국한 로물루스가 세상을 떠나자 로마인들은 누마 폼필리우스(BC 750~673)를 왕으로 추대했다. 시민대표단은 그의 거처인 교외의 숲으로 찾아갔지만 누마는 왕위를 사양했다.
로마를 건국한 로물루스가 세상을 떠나자 로마인들은 누마 폼필리우스(BC 750~673)를 왕으로 추대했다. 시민대표단은 그의 거처인 교외의 숲으로 찾아갔지만 누마는 왕위를 사양했다.
명상과 철학을 벗하는 그에게 속세는 반갑지 않았다.
하지만 누마는 거듭되는 요청을 수락한 후에는 지혜와 통찰력으로 로마를 국가 공동체로 재탄생시켰다.
로마제국의 근간이 된 법과 제도의 기본 골격을 누마가 만든 것이다.
리더의 힘은 정통성과 효율성에 기반한다.
리더의 힘은 정통성과 효율성에 기반한다.
정통성은 공동체가 합의한 절차인 승계·선출·임명 등에 따라 생겨나는 명분이고 효율성은 역량에 기인한다.
리더의 책무란 명분을 확충하면서 역량으로 성과를 만들어 내는 데 있다.
명분과 역량의 시너지에서 영웅담이 탄생하고, 부조화에서 비극이 잉태된다.
역량이 부족한 용렬한 리더는 개인적 취향과 자신의 책무를 구별하지 못해 조직을 혼란에 빠뜨린다.
마키아벨리는 군주론에서
마키아벨리는 군주론에서
"나라의 힘을 키우는 일보다 자신의 욕구를 좇는 왕이 나라를 잃어버리는 경우가 흔하다"고 했다.
프리드리히 2세는 젊은 시절 '인간성을 파괴하려는 괴물'에 맞서려고 '반(反)마키아벨리론'을 집필했으나
중년에는 '중요한 점에서 마키아벨리가 옳다는 점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고 술회했다.
마키아벨리는
마키아벨리는
"군주는 자신에게 닥친 '포르투나'(fortuna·운명)를
'비르투'(virtu·자신의 역량)로 극복하면서
'네체시타'(necessita·시대정신)를 항시 염두에 두고 책무를 수행해야 한다"고 보았다.
개인적 취향과 절연하고 리더로서의 운명을 자각하는 포르투나에서 출발해
종합 역량인 비르투로 상황을 타개하며 시대를 호흡하는 네체시타로 공동체를 이끄는 게
리더십의 정수(精髓)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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