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은氏 사후 만든 '예술인法'
250억 들여 예술가 지원하는데 허위 보고로 활동비 타간 게 다섯 명 중 한 명꼴이라니
가난한 예술가들의 형편은 정부가 3년에 한 번씩 하는 '예술인 실태조사'에서도 가늠할 수 있다.
2011년 시나리오 작가 최고은씨가 생활고로 사망하면서 예술가들을 지원하는 '예술인복지법'이 통과됐다. 그 결과 출범한 예술인복지재단은 연 250억원을 쓰며 한 해 5500명에게 창작지원금과 활동비를 지원한다.
재단의 대표적 사업이 예술인 파견이다.
미술·연극·영화·음악 등 분야에서 1000명의 예술가들을 기관이나 지역사회에 보내
예술 역량을 펼칠 기회를 주고 월 120만원 활동비를 5~8개월 준다.
올해만 세금 77억원이 배정됐다.
그런데 이 사업에 구멍이 뚫렸다.
여기 선발된 예술가들은 '월 10일, 총 30시간 이상' 일한 활동 보고서를 매달 제출해야 하는데
허위 보고를 한 게 드러난 것이다.
활동 내용을 담은 인증샷을 허위로 올린 사람이 무려 182명이다. 다섯 명에 한 명꼴이다.
하루 이틀 몰아서 일한 뒤 여러 날에 걸쳐 활동한 것처럼 옷을 바꿔 입고 촬영한 사진을 제출했다.
이 사실을 파악한 재단은 '허위 보고자'에게 올해 7월분 활동비를 지급하지 못하게 됐다는 서한을 보냈다.
7월에만 이 정도 숫자가 걸린 것으로 보아 이전부터 허위 보고가 이뤄졌을 가능성이 높다.
누군가 가짜 사진을 올리는 편법을 퍼뜨렸고
이렇게 해도 별문제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된 이들이 따라 하다 무더기로 적발된 것이다.
2014년 시작된 예술인 파견 지원 사업엔 지금까지 3860명이 참여했다.
여러 해에 걸쳐 적잖은 이들이 허위 보고로 활동비를 타갔을 것이다.
'10일, 30시간' 조건이 예술가의 현실에 맞지 않는다는 반발도 나온다.
공연이나 전시를 준비하다 보면 하루 10시간 넘게 일하는 경우도 많은데,
10일을 채우지 못했다는 이유로 한 달 치 활동비를 안 줄 수 있느냐는 항변(抗辯)이다.
하지만 이 사업을 공모할 때 조건은 미리 고지된 것이다.
며칠 몰아서 일하고 월 120만원 활동비를 받는 게 타당한지는 따져볼 일이다.
복지재단이 이런 사정을 알게 된 건
"허위 사진을 올리고 돈을 받는 건 예술가의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는다"며
지원 대상에서 빼달라고 요청한 사람이 있었기 때문이다.
재단은 7월분 활동 보고서를 꼼꼼히 들여다보다 허위 사진을 찾아냈다.
'10일, 30시간' 조건이 비현실적이라면 바꿀 수도 있다. 그렇다고 거짓 보고서를 합리화 할 순 없다.
"우리가 돈이 없지, 가오가 없냐"는 영화 대사(臺詞)가 왜 공감을 얻었겠나.
치부(恥部)를 스스로 들춰낸 자존심 있는 예술가가 있어서 그나마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