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터키 맨 서쪽 유럽 접경지부터 동쪽 끝 이란 국경까지 배낭여행을 한 적이 있다.
유서 깊은 건축물과 화려한 고층빌딩이 한데 어우러져 있는 이스탄불,
달나라 같은 기괴한 지형의 카파도키아 등 가는 곳마다 풍경이 천차만별이었다.
그런데 한 가지 공통적인 것은
대도시든 산자락의 작은 마을이든 거의 예외 없이 '자미(이슬람 사원)'가 있다는 점이다.
터키 총인구의 99.8%가 무슬림인 까닭이다.
그렇다고 터키가 '종교 국가'인 건 아니다.
무스타파 케말 장군은 1922년 세계대전으로 패망한 오스만 제국의 터에 터키를 건국하며
정교(政敎)분리를 도입하고 서구식 민주주의를 실시했다.
이슬람을 주요 종교로 삼은 나라 가운데 민주주의가 제대로 정착한 나라는 거의 없었는데,
선거를 통해 지도자를 교체하는 터키는 한동안 세계 정치학계에서
'이슬람 국가도 민주주의가 가능하다'는 가설을 입증하는 좋은 사례였다.
하지만 이제 더 이상 '터키 모델'은 거론되지 않는다.
레제프 에르도안 대통령이 '독재의 길'을 택한 탓이다.
높은 대중적 인기에 취한 그는
2014년까지 12년간 총리를 3연임한 것에 만족하지 못하고 대선에 출마해 대통령이 됐다.
올 4월에는 개헌을 통해 의원내각제이던 정부 형태를 대통령 중심제로 바꿨다.
총리 4연임 제한 규정을 무력화하고 1인 장기 집권 욕심을 본격화한 것이다.
이제 국제사회는 그를 '21세기 술탄'이라고 부른다.
그런 에르도안은 최근 화폐 가치 폭락 등 자신의 실정(失政)에 따른 경제난을 미국 탓으로 돌리고 있다.
트럼프 정부가 이달 중순 터키산 철강 등에 대해 취한 관세 부과 조치를 꼬투리 잡고 맹비난한다.
하지만 터키 경제가 고꾸라진 건 트럼프 행정부 출범 전인 2013년부터다.
지지율 추락을 막기 위해 '남 탓'을 해대며 국민의 판단력을 흐리고 있는 것이다.
국가 지도자의 '남 탓 쇼'는 터키만이 아니다.
베네수엘라의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은 치솟는 물가와 수직 낙하한 취업률이
"미 제국주의의 경제 공격 때문"이라 하고 있다.
미국이 '셰일가스' 생산 확대로 유가 폭락을 불러 석유 의존도가 높은 자국 경제가 파탄 났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같은 시기 사우디 등 많은 산유국이 유가 하락 충격을 잘 견뎌낸 사실을 설명해주지 못한다.
미국 프린스턴대의 뮐러 교수는 저서 '누가 포퓰리스트인가'에서
"포퓰리스트는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지 못한 기득권·엘리트층을 상대로 집권에 성공했기 때문에
국정 운영 실패를 나라 안팎의 기득권 탓으로 돌리기 십상이다"고 했다.
권력을 휘두르고 있으면서 정작 책임져야 할 일이 생기면 남 탓 하는 지도자가 있다면,
그가 '얍삽한 포퓰리스트'는 아닌지 의심해 봐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