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파벳도 제대로 모르던 일곱 살짜리 딸이 작년 1월 미국에 도착해 맨 처음 중얼거린 말은
미국의 '국기(國旗)에 대한 맹세'였다.
아침마다 학교에서 "나는 성조기와 그것이 상징하는 국가에 대한 충성을 맹세합니다"로 시작하는
국기에 대한 맹세를 듣다가 그는 금세 외워 버렸다.
한국에선 '전체주의의 상징'이라며 퇴물 취급받는 국기에 대한 맹세를
'자유의 나라' 미국에서 세뇌 교육 수준으로 주입시키고 있는 게 놀라웠다.
이 거대하고 다양한 이민자의 나라가 통합된 초(超)강대국으로 군림하고 있는 것을
'애국주의' 이외로는 설명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제야 동네 집집마다 거의 매일 걸려 있는 성조기(星條旗)의 존재가 이해됐다.
올 6월 미국의 여론조사 회사 갤럽은
"'미국이 매우(extremely) 자랑스럽다'는 비율이 2004년엔 70%까지 올랐다가
트럼프 행정부 들어 47%로 떨어졌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는 '매우 자랑스럽다'로 한정했을 때다.
여기에 '아주(very) 자랑스럽다'고 응답한 비율을 합하면
여전히 75%가 미국인임을 크게 자랑스러워하고 있다.
그래선지 미국의 사회 통합 시스템은 여전히 강력하다.
최근 이민 관련 연구에 따르면
미국에 온 터키 이민자들은 이민 2세대만 넘어가도 대부분 미국인의 정체성을 가지는 것으로 확인됐다.
반면 독일에 거주하는 터키 이민자들에게 '독일과 터키 중 어디가 집인가'라고 물으면
독일을 고르는 비율이 2001년엔 30%를 넘었으나 최근 10%대까지 하락했다.
트럼프 행정부의 반(反)이민 정책이 논란이 되고 있지만,
여전히 미국은 이민자들이 스며들기 가장 좋은 기회의 땅인 셈이다.
얼마 전 만난 미국 국방부 산하 전쟁포로·실종자확인국(DPAA) 소속 인류학자인 한국계 제니 진 박사는 "DPAA는 전사자의 해골도 성조기를 바라볼 수 있도록 배치해 놓는다"며
"미·북 정상회담 후 미군 유해를 55구만 돌려받아 회담이 실패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미국인 입장에선 이것(유해 송환)이 가장 중요한 일"이라고 했다.
미국을 위해 희생한 어떤 미국인도 미국 땅으로 반드시 데려온다는 약속과 다짐이
미국을 지탱하는 힘이라는 얘기다.
트럼프가 중국과 무역 전쟁을 벌이고 전 세계와 좌충우돌할 수 있는 것도
결정적 순간에 이념·인종에 상관없이 '미국은 하나다'는 믿음이 없다면 불가능하다.
요동치는 한반도 정세와 높아가는 통상 압력 속에 대한민국은 무엇으로 중심을 잡고 국민을 설득할까.
적어도 중국의 '사드 보복' 같은 일이 재발할 때 국론이 갈라지고 우왕좌왕하는 일은 더 이상 없어야 한다.
애국심은 구닥다리 관념이 아니라 번영과 자유의 초석이란 점을 21세기 미국이 일깨워주고 있다.
장르 : 고정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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