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 뤽 타베르니에 프랑스 통계청장은 만 6년 넘게 재임 중이다. 그가 취임한 이후 니콜라 사르코지(우파)→프랑수아 올랑드(좌파)→에마뉘엘 마크롱(우파) 순으로 두 번 정권 교체가 이뤄졌다. 한 명의 통계청장이 재임 중 세 번째 대통령을 맞이한 것이다. 한국에서는 꿈도 못 꿀 일이다.
타베르니에는 72년 역사를 가진 프랑스 통계청의 9번째 청장이다. 역대 청장들이 평균 8년씩 재임하며 장수한 이유는, 어떤 정권이든 통계청의 독립성을 존중해 청장 교체를 최소화했기 때문이다. 1981년 첫 좌파 대통령이 된 프랑수아 미테랑은 전임 발레리 지스카르 데스탱이 임명한 통계청장과 6년을 일하고 돌려보냈다. 1995년 우파가 다시 정권을 가져왔지만, 자크 시라크 대통령은 미테랑 정부 시절 취임한 통계청장과 2003년까지 함께했다.
통계청장 임기가 긴 이유를 한 프랑스 공무원에게 물었더니 "국가 신뢰가 통계에서 출발하니 당연한 것 아니냐. 중앙은행 이상의 독립성이 필요하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영국에서도 존 풀링거 통계청장이 만 4년 넘게 재임 중이다. 도중에 총리가 바뀌었지만 풀링거의 거취에 영향이 없었다.
통계 기구의 독립성을 강조해온 영국과 프랑스는 2000년대 들어 아예 성문화했다. 영국은 통계청을 '내각의 지휘를 받지 않는 의회 산하 독립기구'라고 2007년 법률로 명시했다. 질세라 프랑스도 2008년 '통계 산출 활동의 독립성을 보장한다'고 법률에 못박았다. 그뿐만 아니라 통계청장을 정통한 전문가가 맡는 게 불문율이 돼 있다. 프랑스의 타베르니에는 통계 분야 엘리트를 양성하는 그랑제콜인 국립통계학교(ENSAE) 졸업생이고, 영국 풀링거는 왕립통계학회 회장을 지냈다.
반대로 우리나라 통계청장은 권력 앞에 무기력한 존재다. 얼마 전 임명된 강신욱 청장은 28년 통계청 역사에서 17번째 수장(首長)이다. 역대 청장 중 통계 전문가는 거의 없었고 정권과 가까운 공무원이나 학자가 잠깐 머물다 갔다. 이번엔 통계가 청와대 구미에 맞지 않아 통계청장이 경질된 것 아니냐는 의혹까지 불거졌다. 이임식에서 눈물을 쏟은 전임 청장은 젊은 시절 맹렬한 노동 운동가였다. 이른바 '코드가 맞는다'는 이유로 발탁된 인물이다. 그런 사람이 일부러 정부에 불리한 통계를 만들
었겠나.
진위(眞僞)야 어떻든 '맞춤형 상품'을 만들지 않아 통계청장이 잘린 것 아니냐는 논란을 초래했다는 것 자체가 국가 신뢰도를 깎아 먹는 일이다. 부디 액셀러레이터를 세게 밟아도 자동차가 나가지 않는다며 속도계를 바꾼 식의 인사가 아니었으면 한다. 그렇게 한다고 차가 빨라질 수 없다. 행여나 국민의 눈을 가리려는 시도라면 역사에 남을 죄를 짓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