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2018.08.31 03:12
기원전 7세기에 태어난 탈레스는 밤하늘의 별을 헤아리며 걷다가 웅덩이에 빠졌다.
이웃의 누군가에게 꾸중을 들었다.
"발밑의 땅도 알지 못하면서 하늘만 쳐다보느냐"는 힐난이었다.
그래도 그는 꿋꿋하게 하늘과 별을 관찰했다.
만물의 근원을 살핀 '서양 철학의 아버지'는 그렇게 탄생했다.
중국에도 하늘을 무척 궁금하게 여겼던 주체가 있었다. 기(杞)라는 춘추전국시대 작은 나라 사람들이었다.
중국에도 하늘을 무척 궁금하게 여겼던 주체가 있었다. 기(杞)라는 춘추전국시대 작은 나라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하늘이 무너지지 않을까 걱정했다. 잠도 못 이루고, 밥도 먹지 못할 정도였다.
급기야 한 사람은 현자를 찾아가 품고 있던 걱정을 털어놓았다.
급기야 한 사람은 현자를 찾아가 품고 있던 걱정을 털어놓았다.
"공기로 이뤄진 하늘은 결코 무너지지 않는다"는 말을 듣고서야 겨우 시름을 멈췄다고 한다.
'쓸데없는 걱정'의 대명사 기우(杞憂)가 탄생하는 장면이다.
중국인은 '땅'에 삶의 많은 것을 걸어왔다.
일찌감치 화려한 농경의 문명을 피웠던 대지의 적자(嫡子)다운 면모다.
그래서 '하늘'을 묻는 사람에게는 '기우'의 고사처럼 '어리석다'는 평가가 따랐다.
별을 헤아리며 만물의 본질을 탐구했던 탈레스가 나올 문화적 토양은 없었다.
천문의 영역이 그렇다.
중국 전통 천문학의 기술적 수준은 사실 서양을 앞서기도 했다.
그러나 중국의 천문은 황제(皇帝)의 시간표, 나아가 '땅을 다스리는 기준'으로만 작용했다.
높은 수준의 관측이 결국 땅의 권력에 묶였던 형국이다.
그렇듯 땅을 향한 집착은
평면과 실용에 강한 면모를 보인다. 공간을 향하는 입체와 추상에는 둔감하다.
중국 전통 수학이 실용적인 대수(代數)에 강했지만
공간을
다룬 기하학(幾何學)을 줄곧 발전시키지 못했다는 점이 이를 보여준다.
중국인이 지향하는 가치는 그래서 대개 현세적이다.
황금, 행복, 장수, 출세, 권력 등이 큰 줄거리를 이룬다.
강대국으로 굴기(崛起)하는 중국의 국가적 지향도 그렇다.
그러나 현세적 가치에 입각한 지나친 이해타산이 문제다.
떠오르는 중국에 지구촌의 여러 나라가 경계의 눈길을 보내는 이유다.
Copyright ⓒ 조선일보 & 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