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12/17 주일
임 은미 (유니스) 목사 묵상
역 대 상 27 장
33 - 아히도벨은 왕의 모사가 되었고 아렉 사람 후새는 왕의 벗이 되었고
Ahithophel was the king`s counselor. Hushai the Arkite was the king`s friend.
왕의 벗이라는 말에 마음이 머문다.
벗..
친구 보다 더 정겹게 느껴지는 단어 "벗"
누가 우리의 친한 벗인가??
어제는 내가 해야 하는 설교가
"하나님과의 친밀함"에 관한 것인지라..
수양회를 가면서
생각을 했다.
(앗.. 나 수양회까지 알바로 운전해 주기로 했던
학생은
지난 2틀동안 밤 새워 시험 공부했는지라..
아침에 나랑 만나기로 한 그 시간까지 잠을 잤다고 한다.
ㅠㅠ
그래서리.. 나 혼자 운전하고 수양회관까지 갔다.
갈 때 한시간 반 가량 걸리고
올 때 약 2시간 반..
뭐... 주례 시간까지.. 그야말로 딱 맞추어서
집에 잘 도착했다
할렐루야!!)
딱히 생각을 했다기 보다는
기도를 했다.
"주님... 친하다고 하는 것..
친구끼리도 친하다고 하면
누구를 친하다고 하는것일까요?
주님하고 저 하고 친하다고 한다면..
우리는 왜 친하죠?
그 기도를 드리자
주님께서 친한 친구에 대한 생각을 주욱
나열해 주셨다.
친한 친구?
친한 친구는 일단
나를 아는 친구..
나를 오해하지 않는 친구..
내가 이렇게 말해도
저렇게 말해도
또는 누가 나에 대하여 잘 못 말하면?
그것이 잘 못된 말인 것을 알아서
전해 듣는 말을
곧이 듣지 않는 친구..
이 부분에서는
이런 생각도 들었다.
이단들..
교주가 분명 잘 못 된 것이 나중에 신문에 나고
시끌 법적 해 질때
자연 드는 생각은...
저렇게 열매를 보아.. 완전
저 교주가 가짜임을 알 수 있는데
왜 아직도 맹종(?)을?
정말 또라이 아냐?
그런 생각 저절로 하게 된다.
왜 그런 이단에서 안 나오지?
왜 저런 이단의 교주 아래에 아직 있지?
이단 교주를 향한 맹신..
그냥 믿어주는 것..
신문에 커다랗게 그 교주가 한 일들이
잘 못된 것을 알아도
그냥 그 교주를 믿는것?
그야말로 맹종인데...
우리 하나님!
누구이신가?
참 신
유일하신 우리 하나님!
그런데 이 하나님을 이단의 교주보다도
덜 맹신 한단 말인가?
나는 가끔 하나님이 원망스럽다는
상담 글을 읽을 때가 있다.
그리고 그 상황을 보면
정말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당연한 것 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누구인들 이 상황에서는 그렇지 않을까?
공감이 되어진다.
오늘 얼마 전 받은
멜 내용을 올려 본다.
이름을 말하지 않으니
괜찮으리라고 생각한다.
근데 이 사람의 멜만 이런 내용인가?
나는 이런 내용 정말로 많이 받아 보았다.
그러니 딱히 한 사람의 이야기는 아니고
다만 얼마 전 온 멜 내용임을 말하고자 한다.
이 사람은 하나님 잘 믿는 남편하고 결혼했는데
남편이 외도를 한 경우이다.
**
그냥 누군가에게 하소연 하고 싶어서요
저요 몇일 묵상도 기도도 안해요
하기 싫어요
전 하나님을 신뢰하고 어떤 상황에서도 원망하지 않아야 한다고 배웠고
그렇게 하고 애쓰며 살았어요
이 일이 있은 후에도 원망 하지 않았어요
더 단단하게 회복하시겟지...
이 시간에 뭔가 주님뜻이 잇겟지...
그렇게 믿으면서 이 시간을 보냇는데 요즘엔 자꾸 쓴 마음이 생겨요
남편에게도 주님에게도 자꾸만 쓴 마음이 생겨요
이 일이 있고 난 후에도 남편이 밉기보단 불쌍했어요
가정에 아이들에게 그리고 저에게도 좋은사람이여서 실수겠거니
그 마음은 오죽할까 싶어서 안 된 마음이 더 컷어요
그런데 이런 시간이 길어지면서 점점 더 제 마음은 상하기만 해요
죄를 지은 그 여자랑 남편은 아무렇지 않게 일상을 사는데 왜 나만 힘들까....
이 모든 책임을 내가 지고 힘겨워 해야 하나....
남편에겐 회복의 의지가 있긴 한가...
도망만 가는 남편이 밉고 무책임해 보이고...
하나님은 이상황을 왜 보기만 할까??
내가 뭘 그렇게 잘 못 살았나...
남편사랑 받고 가정 꾸리며 사는 여자는 늘 주님과 친밀한 사람들인가....
바쁜 일상에서 주님과 친밀함에 애쓰진 못햇지만 무슨결정을 하든 늘 주님을 생각하며 했는데....
도데체 왜 이런 일이 일어난걸까...
시간이 지날수록 나아지지 않는 상황을 보며 마음이 상하고 지쳐요
참 아이같은 생각이지만 이 상황에 주님이 자꾸 원망스러워요
******************
누구인들 이런 상황을 만나게 되면
위의 고백을 하지 않을까?
하나님이 이런 고백을 하는 하나님의 자녀를
내치시겠는가?
모른다 하시겠는가?
너가 감히 나에 대해 원망을?
그렇게 꾸짖으시겠는가?
절대 그렇지 않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러나?
이 상황에서 이렇게 생각되어지는 하나님에 대한
생각은 올바른 생각인가?
친한 친구는
오해하지 않는다.
그 친구를 알기 때문이다.
친한 친구에 대한 어떤 부정적인 말을 들었다면
그 말을 곧이 곧대로 믿기 보다는
아... 그런 말을 그 친구가 했을리는 없어! 라던가
그 말을 혹시 그 친구가 했다 한다면
다른 선한 뜻이 있었을거야
그렇게 그 친구를 믿어 주고
그 친구에 대해 잘 못 생각하는 사람에게
친구에 대해 옹호의 말을 할 것 같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이다.
무조건적인 사랑을 받고 무조건적인 용서
그리고 무조건적인 이해 모두 다 받을 자격이 있다.
그러나 친구는?
하나님의 벗은 그냥 아무나 되는 것 같지는 않다.
하나님을 적어도 오해하지는 않아야 할 것 같다.
하나님이 정말
나의 아픔을 그냥 못 본척 하는 분이라고 여겨지는가?
정말 그렇게 생각하는가?
아직은(?) 하나님의 벗이 아니기 때문에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아닌가?
우리의 아픔..
고통..
만약에 어떤 사람의 딸이 강간을 당했다고 하자.
하나님 잘 믿는 집안에서 일어난 일이라고 하자.
부모도
딸도 얼마나 힘이 드는 상황이 바로 그런 상황 아닐까?
하나님 잘 믿는 부모 아래
아들이 동성연애하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하자
너무 감당하기 힘든 일 아닌가?
잘 믿던 믿음의 남편이 또는 아내가
외도를 한다고 하자
배신감에 밤 잠을 못 이룰 일이 아니겠는가?
그 때
"하나님이 왜 강간 당한 내 딸을 가만 보고만 계셨습니까?
도데체 뭐 하시는 분인겁니까?
내가 하나님 잘 믿는데
나한테 이럴 수 있습니까?"
이것이 과연
하나님 잘 믿는 엄마가 하나님 한테
올려 드릴 수 있는
자신의 아픔의 기도일까?
그렇게 말한다고
하나님이
그렇게 아픔을 토로하는 엄마를 아빠를
혼내시겠는가?
나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친구가 된 엄마라면
아빠라면
아마 이렇게 기도하지 않을까?
"주님.. 저는 제 딸 하나... 이런 것 보면서
마음이 찢어집니다.
하나님 오늘도 얼마나 많은 하나님의 딸들이
강간을 당하고
폭력을 당하고
외도하는 남편.. 아내들..
그들의 음란을 보면서
마음이 찢어지실른지요
저는 그 마음을 아는지요?
저는 제 자식 하나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오늘 이시간도
도데체 몇명의 비극적인 일들을
바라 보시면서 마음을 찢고 또 찢으셔야 할른지요!!"
이렇게 기도를 올린다고 하면
그러면
하나님이 전지전능하다면서
왜 그 일을 막지 않으시는지..
왜 외도하는 남편은
내가 기도하자 말자
마음을 돌이키고 돌아오지 않는지..
도데체 하나님은 무엇을 하고 계신건지..
이렇게 나에게 물어 본다고 하면..
나는 사실 답이 없다.
하나님이 하신 일이 아니라
하나님이 넘 사랑하셔서
피조물인 인간들에게 준
"자유의지"
그 자유의지를 잘 못 쓰고 있는 모든 사람들에 대한
책임을
왜 하나님이 지셔야 하는것인지..
그것이 왜 진정
하나님의 잘못이라고 우리는 생각해야 하는지...
주님
오늘도 최고의 날입니다.
이 땅에 참으로 많은 사람들이
상처를 갖고 살아갑니다.
불공평한 일도 당하고 있습니다.
억울하고
아프고
괴롭고
치사하고
서럽고
서글프고
외롭고
우리 주님 그 모든 사람들의 신음소리에 귀를 기울이십니다.
우리가 모르는 것뿐..
하나님은 우리의 신음소리 하나에도
귀를 기울이십니다.
우리의 귀를 지으셨습니다
우리의 입술을 지으셨습니다.
우리가 하는 말을 못 알아 들으실 리가 없습니다.
주님
주님의 자녀임이 감사합니다
끊임 없이 받는 사랑과 용서가 넘 감사합니다.
하나님의 자녀된 저의 신분이
너무나 감사하고
내가 받는 어떤 고통보다
더한 고통을
나를 위해 십자가에서 모두 다 당해 주셨음을
더 더욱
감사합니다.
내 고통이 크면 클 수록
나를 위해 치루셔야 했던 그 모든 십자가의 고통이
더 더욱 감사하게 생각됩니다.
하나님의 자녀된 것도 감사하지만
"하나님의 벗"이 되고 싶습니다.
다윗은 왜 후새를
"벗"이라고 불렀을까요?
하나님은
왜 아브라함에게 친구라고 불렀을까요?
왜 예수님은 우리를 친구라고 하셨을까요?
하나님의 벗
예수님의 벗
성령님의 벗이 되어서
오늘도 하루를
감사만 알고 살아갔으면 합니다.
저는 불평할 것이 없습니다.
원망 할 것 역시 아무것도 없습니다.
나를 보지 않고
예수님을 볼 수 있어서 감사합니다.
내가 가진 것 보다
예수님이 가진 것을 볼 수 있어서 감사합니다.
나..
아무것도 아닙니다..
주님..
모든 것이 되십니다.
오늘도 내 삶은 주님을 위한 것이지
나를 위한 것이 아니라서 감사합니다.
나도 나를 판단하지 아니하노니..
저는 요즘 이 말씀이 넘 좋습니다.
나도 나를 판단하지 아니하노니..
나를 판단하실 이는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우리 주님의 나를 향한 판단은
느을 넉넉하기만 합니다.
내 안에 계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나를 판단하시는 우리 주님은
항상
내가 귀하다고 하십니다.
나 같은 보배가 없다고 하십니다.
내 안에 그가!
그 안에 내가!
저는 오늘도 더 없이 소중한 새 날을
선물로 받았습니다.
하나님과 우정을 쌓을 수 있는 새날이라서
감사합니다.
나는 하나님이 그냥 좋습니다.
야속한 것 아무것도 없습니다.
제가 받은 너무나 큰
은혜를 조금이라도 더 갚지 못함이
죄송할 뿐...
예수 그리스도 그 분의 생명을
제가 받았습니다.
그 외에 더 필요한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모든 것을 다 가졌습니다.
그렇게 믿고
오늘도 하루를 시작합니다.
주님
오늘이 어제보다
더 친한 주님과 내가 되었으면 합니다.
내일은 미국으로 들어갑니다.
새벽 일찍 집을 나섭니다.
오늘 밤 짐 다 잘 싸고
집 정리 잘 해 놓고
미국 잘 다녀오겠습니다.
주님 사랑합니다
주님 감사합니다
오늘도 우리 주님 저를 보시면서 하루종일 기쁘시면 참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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