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욥기]

[60]전능자와 다투겠느냐 (욥 40:1~24) (CBS)

colorprom 2017. 6. 13. 14:19

전능자와 다투겠느냐 2017년 6월 10일 토요일


욥기 40:1~40:24           


1 여호와께서 또 에게 일러 말씀하시되

2 트집 잡는 자가 전능자와 다투겠느냐 하나님을 탓하는 자는 대답할지니라


3 이 여호와께 대답하여 이르되

4 보소서 나는 비천하오니 무엇이라 주께 대답하리이까 손으로 내 입을 가릴 뿐이로소이다

5 내가 한 번 말하였사온즉 다시는 더 대답하지 아니하겠나이다


6 그 때에 여호와께서 폭풍우 가운데에서 에게 일러 말씀하시되

7 너는 대장부처럼 허리를 묶고 내가 네게 묻겠으니 내게 대답할지니라

8 네가 내 공의를 부인하려느냐 네 의를 세우려고 나를 악하다 하겠느냐

9 네가 하나님처럼 능력이 있느냐 하나님처럼 천둥 소리를 내겠느냐

10 너는 위엄과 존귀로 단장하며 영광과 영화를 입을지니라

11 너의 넘치는 노를 비우고 교만한 자를 발견하여 모두 낮추되

12 모든 교만한 자를 발견하여 낮아지게 하며 악인을 그들의 처소에서 짓밟을지니라

13 그들을 함께 진토에 묻고 그들의 얼굴을 싸서 은밀한 곳에 둘지니라

14 그리하면 네 오른손이 너를 구원 할 수 있다고 내가 인정하리라


15 이제 소같이 풀을 먹는 베헤못을 볼지어다 내가 너를 지은 것 같이 그것도 지었느니라

16 그것의 힘은 허리에 있고 그 뚝심은 배의 힘줄에 있고

17 그것이 꼬리 치는 것은 백향목이 흔들리는 것 같고 그 넓적다리 힘줄은 서로 얽혀 있으며

18 그 뼈는 놋관 같고 그 뼈대는 쇠막대기 같으니

19 그것은 하나님이 만드신 것 중에 으뜸이라 그것을 지으신 이가 자기의 칼을 가져오기를 바라노라

20 모든 들짐승들이 뛰노는 산은 그것을 위하여 먹이를 내느니라

21 그것이 연 잎 아래에나 갈대 그늘에서나 늪 속에 엎드리니

22 연 잎 그늘이 덮으며 시내 버들이 그를 감싸는도다

23 강물이 소용돌이칠지라도 그것이 놀라지 않고 요단 강 물이 쏟아져 그 입으로 들어가도 태연하니

24 그것이 눈을 뜨고 있을 때 누가 능히 잡을 수 있겠으며 갈고리로 그것의 코를 꿸 수 있겠느냐



나는 비천하오니(4절): 하나님 앞에서 자기는 가볍고 무지한 존재임을 고백하는 표현이다.

즉 자신의 무지함으로 하나님의 위대함을 원망한 것에 대한 회개이다.

네 의를 세우려고 나를 악하다 하겠느냐(8절): 자신이 받는 고난에 대해 억울함을 표현하는 것은,

자신을 정당화 하는 동시에, 그 고난의 통치자이신 하나님을 정죄함이다.

위엄과 존귀(10절): 이는 심판주 하나님의 능력과 성결하심에 대한 표현이다.

하나님의 위엄과 존귀는 교만한 자들을 낮추시는 심판으로 나타나시기 때문이다.

본문에서 이와 같은 위엄과 존귀를 영광과 영화, 즉 빛나는 아름다움으로 표현하였다.

다윗 또한 하나님의 이와 같은 아름다움을 사모하였다(시 27편 4절).

진토에 묻고(13절): 교만한 자들을 아주 멸망시키심을 뜻한다. 교망은 패망의 앞잡이이다(잠 16장 18절).


베헤못(15절): 히브리어로 ‘엄청나게 큰 짐승’이란 뜻인데 하마나 코끼리 같이 덩치가 큰 짐승으로 보이나 정확하게 어떤 동물인지 알지 못하기 때문에 번역하지 않고 ‘베헤못’이라는 명칭을 그대로 사용하였다.

한편에서는 초자연적인 존재로 이해해서 악한 영적세력으로 보기도 한다.

그것을 지으신 이가 …… 가져 오기를 바라노라(19절): 하나님께서는 베헤못에게 칼을 주었다고 말씀하신다. 여기에서 ‘칼’은 무엇을 의미하는지 견해가 분분하다.

칼을 날카로운 이빨로 해석하기도 하며, 다른 짐승의 지배권을 가리킨다고 보는 학자도 있다.

어쨌든 베헤못은 하나님께서 만드신 강력한 힘을 가진 피조물이지만 그것 역시 하나님의 주권 아래에 있다.


전능자와 다투겠느냐 2017년 6월 10일 토요일


하나님께서는 에게 자연 만물의 신비를 보여주시면서

그 감추어진 그 의미를 말해볼 수 있겠느냐고 물으십니다.

그러자 이전에는 하나님 앞에서 할 말이 많아보였던 이지만

자신의 비천함을 깨닫고 입을 꼭 다물어 버립니다.


하나님을 만나기 전에는 도무지 하나님을 이해할 수 없다면서 자기 생각을 쏟아놓던 사람도

하나님을 만나면 자신의 어리석음과 비참함을 깨닫게 됩니다.

바울을 보십시오. 예수 믿는 성도들을 잡으러 의기양양하게 다메섹으로 향했지만

홀연히 하늘로부터 비치는 빛 아래에서 예수님을 만난 후 자신의 어리석음을 깨닫고 돌이킵니다.


누가 감히 하나님과 다툴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을 만난 사람은 그 영화롭고 엄위하신 하나님 앞에 그저 입을 가릴 따름입니다.


사람의 무지함 V    2017년 6월 10일 토요일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모든 것들에는 하나님의 선하신 뜻이 담겨져 있습니다.

비록 그것이 고난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선하신 뜻과 계획하심을 담고 있음을 잊지 않는 것,

이것이 하나님의 위엄과 존귀 앞에서 겸손한 자입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이와 같은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하마를 통하여 나타냅니다.

거대한 덩치의 하마는 악어와 달리 풀을 먹습니다.

만약 이 하마가 자신의 굶주림을 채우기 위해 육식을 하도록 창조 되었다면 얼마나 큰 무서움일까요?


한편 강물이 소용돌이치는 고난 속에서도 놀라지 않고 요지부동하는 모습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고난 가운데 경솔한 우리의 무지함을 깨닫게 하십니다.


유구무언(有口無言)의 인생 (2018년 10월 22일 월요일) (욥 40:1~9)

부모는 자식을 부모 뜻대로 좌지우지할 수 없습니다.

어느 순간 자식은 부모의 품을 떠나 자기 뜻이나 생각을 따라 살아가며, 그렇게 성장하는 것이 맞습니다.

때로는 부모에게 항변하기도 하지요. "왜 나를 낳았나요!"

이는 사춘기 자아정체성이 확립되어가는 과정에서 던질 법한 원망이나 푸념입니다.


하루 아침에 패가망신한 '의인' 은 친구들의 비난과 조롱 가운데

마침내 하나님을 향해 불평하고 항변합니다.

"당신께서 주신 생명, 당신이 거두어가시는 것은 당연합니다.

내 자식들도 재산도 가축도 종도 다 거두어가시면서 왜 제 목숨은 남겨두셨나이까!

차라리 내가 어미의 태중에 있을 때에 거두어가시든지, 그때 이 세상에 태어나지 말아야 했습니다!"라고

자신의 생일을 저주하기까지 합니다.


그때 하나님께서에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땅의 기초를 놓을 때에 네가 어디 있었느냐 네가 깨달아 알았거든 말할지니라."(욥38:4)

"네가 하나님처럼 능력이 있느냐 하나님처럼 천둥소리를 내겠느냐?"(욥40:9)
이 대답합니다.

"나는 비천하오니 무엇이라 주께 대답하리이까 손으로 내 입을 가릴 뿐이로소이다."(욥40:4)

전능자요 창조주이신 하나님 앞에 우리는 입이 백 개여도 할 말이 없는 유구무언(有口無言) 인생입니다.


+ 우주(天), 세계(地), 인간(人)을 창조하신 하나님!

하나님 앞에서(Coram Deo) 오직 감사, 기도, 찬양, 묵상의 언어를 내어놓게 하소서. 아멘.


1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께서 무엇을 가르치시거나 명하시나요?

5 오늘 본문과 함께 전도서 12장 13~14절 말씀을 묵상해봅시다

3 우리 교회는 오늘 말씀에 어떻게 순종할 수 있을까요?



오늘 묵상한 것에서 기도제목을 찾고, 한 줄 기도문을 작성하여 기도합시다.


전도서 12장 13~14절


13.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명령들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모든 사람의 본분이니라

14. 하나님은 모든 행위와 모든 은밀한 일을 선악간에 심판하시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