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명기]

[8]동지는 마지막을 함께하는 사람입니다 (신명 3:12~29) (CBS)

colorprom 2017. 4. 22. 16:50

동지는 마지막을 함께하는 사람입니다 2014년 9월 22일 월요일


신명기 3:12~3:29           


12 그 때에 우리가 이 땅을 얻으매 아르논 골짜기 곁의 아로엘에서부터 길르앗 산지 절반과 그 성읍들을

내가 르우벤 자손갓 자손에게 주었고

13 길르앗의 남은 땅과 의 나라였던 아르곱 온 지방 곧 온 바산으로는 내가 므낫세 반 지피에게 주었노라


(바산을 옛적에는 르바임의 땅이라 부르더니

14 므낫세의 아들 야일이 그술 족속과 마아갓 족속의 경계까지의 아르곱 온 지방을 점령하고

자기의 이름으로 이 바산을 오늘날까지 하봇야일이라 불러오느니라)


15 내가 마길에게 길르앗을 주었고

16 르우벤 자손과 갓 자손에게는 길르앗에서부터 아르논 골짜기까지 주었으되

그 골짜기의 중앙으로 지역을 정하였으니 곧 암몬 자손의 지역 얍복 강까지며

17 또는 아라바와 요단과 그 지역이요

긴네렛에서 아라바 바다 곧 염해와 비스가 산기슭에 이르기까지의 동쪽 지역이니라


18 그 때에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여 이르기를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땅을 너희에게 주어 기업이 되게 하셨은즉

너희의 군인들은 무장하고 너희의 형제 이스라엘 자손의 선봉이 되어 건너가되

19 너희에게 가축이 많은 줄 내가 아노니 너희의 처자와 가축은 내가 너희에게 준 성읍에 머무르게 하라

20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주신 것 같이 너희의 형제에게도 안식을 주시리니

그들도 요단 저쪽에서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주시는 땅을 받아 기업을 삼기에 이르거든

너희는 각기 내가 준 기업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고


21 그 때에 내가 여호수아에게 명령하여 이르기를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두 왕에게 행하신 모든 일을 네 눈으로 보았거니와

네가 가는 모든 나라에도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행하시리니

22 너희는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친히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라 하였노라


23 그 때에 내가 여호와께 간구하기를

24 주 여호와여 주께서 주의 크심과 주의 권능을 주의 종에게 나타내시기를 시작하셨사오니

천지간에 어떤 신이 능히 주께서 행하신 일 곧 주의 큰 능력으로 행하신 일 같이 행할 수 있으리이까

25 구하옵나니 나를 건너가게 하사

요단 저쪽에 있는 아름다운 땅, 아름다운 산과 레바논을 보게 하옵소서 하되


26 여호와께서 너희 때문에 내게 진노하사 내 말을 듣지 아니하시고 내게 이르시기를

그만해도 족하니 이 일로 다시 내게 말하지 말라

27 너는 비스가 산 꼭대기에 올라가서 눈을 들어 동서남북을 바라고 네 눈으로 그 땅을 바라보라

너는 이 요단을 건너지 못할 것임이니라

28 너는 여호수아에게 명령하고 그를 담대하게 하며 그를 강하게 하라

그는 이 백성을 거느리고 건너가서 네가 볼 땅을 그들이 기업으로 얻게 하리라 하셨느니라

29 그 때에 우리가 벳브올 맞은편 골짜기에 거주하였느니라



그 때에 우리가 이 땅을 얻으매(12절):

시혼과 옥을 물리침으로 얻은 요단 동편 땅은 르우벤, 갓, 므낫세 반 지파에게 삶의 기반으로 분배되었다.

약속의 땅이 이미 분배되기 시작했다.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주신 것 같이 너희 형제에게도 안식을 주시리니(20절):

일반적으로 안식은 전쟁 이후에 찾아오는 평화를 의미한다.

하지만 이스라엘에게 안식은 보다 깊은 의미가 있다.

이스라엘에게 안식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땅에서,

정의와 평화를 가져오는 하나님의 통치 아래에서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가는 상태다.

그러한 안식이 요단 동편에서 1차적으로 이루어지기 시작했고, 남은 서편으로 확대되어야 한다.

주 여호와여(24절): 여기서는 하나님의 이름인 ‘여호와’와

사람이 스스로를 낮추어 하나님을 부를 때 쓰는 ’주‘(아도나이)를 합쳐서 하나님을 ‘주 여호와’로 부른다.


레바논(25): ‘삼림 지대’, ‘산악’이란 뜻.

수리아 해안을 따라 두로에서 아르밧까지 약 160km에 걸쳐 있는 고원 지대의 나라.


비스가 산(26): 요단 동편과 사해를 바라볼 수 있는 아바림 산맥에 속한 높은 산.


그만해도 족하니 이 일로 다시 내게 말하지 말라(26절): 모세는 끝내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한다.

부당한 명령처럼 보이지만 모세는 가나안보다 더 좋은 하나님께로 갔으며,

이스라엘 백성은 이후에 발생할 수 있는 모세 숭배의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여호와께서 너희 때문에 … 거주하였느니라(26-29절):

하나님이 모세의 간청을 왜 물리치셨는지는 나오지 않는다(1:37; 4:21 참조). 다만 민수기 25장에 따르면,

‘벳브올’은 이스라엘이 처음으로 바알의 종교의식과 접촉하게 된 곳이다(4:3 참조).

바로 이 자리에서 이스라엘은 모세를 통하여 하나님의 뜻에 맞는 삶의 규칙을 전해 받게 된다.


동지는 마지막을 함께하는 사람입니다 2014년 9월 22일 월요일


하나님의 약속이 가시적으로 성취되기 시작했습니다.

요단 동편에서는 이미 두 지파 반이 먼저 땅을 삶의 기반으로 받았습니다.

그러나 아직 하나님의 안식이 모든 지파에 이르지는 않았습니다.

이에 먼저 땅과 안식을 받은 두 지파 반도 남은 형제들을 위해 전쟁의 선봉에 섰습니다.

마지막 지파가 안식을 누릴 때에야 참된 안식이 실현될 것입니다.

함께 일을 시작하는 것보다 더욱 어려운 것은 함께 일을 마무리하는 것입니다.

처음 일을 시작할 때는 모두의 마음이 하나로 모인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일이 조금씩 성취되면 각 사람 마음에 도사리고 있던 욕망이 꿈틀대기 시작합니다.


인류의 역사를 보면 꼭 일이 잘 되어가는 시점부터 심각한 내분이 발생하여

동지들의 사이를 무너뜨리기 시작합니다.

이미 한 몫을 얻은 사람은 그 자리에 주저앉으려 하거나 더욱 큰 몫을 욕망하기 시작하며,

아직 자신의 몫을 얻지 못한 사람은 쉽게 불평과 원망을 내뱉습니다.


참된 안식을 향한 이스라엘의 여정이 본격적인 궤도에 올랐습니다.

하지만 바로 그 순간이야말로 서로의 마음이 분열될 수 있는 위기의 순간입니다.

이에 모세는 이미 땅을 얻은 지파들이 남은 땅을 얻기 위한 전쟁의 선봉에 서도록 명령했습니다.

그 결과 이스라엘은 일사불란하게 마지막을 함께했습니다.

신앙공동체의 동지처음의 뜻을 마지막까지 동일하게 함께 간직하는 사람들입니다.

이미 내 몫을 챙겼다고 다른 지체를 잊는 사람은 동지가 아닙니다.

곁에 있는 지체의 결핍을 외면한 채 자신만 즐기고 있다면, 그 역시 동지가 아닙니다.

흥분되는 시작보다 중요한 것은 마지막을 차분하게 마무리하는 것입니다.


내게 주신 은혜가 족하다 2014년 9월 22일 월요일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셨고, 또 친히 이스라엘을 위하여 싸우시겠다고 하셨습니다.

따라서 언약에 신실하신 하나님은 약속을 지키시기 위해 친히 전쟁에 임하셨습니다.

따라서 이스라엘의 관심을 두어야 할 것은 눈에 보이는 적들이 아니라

승리를 주실 하나님의 강하신 손이었습니다.


만일 그들이 믿음의 눈으로 하나님이 그들을 대신해 싸우시는 것을 본다면,

어떤 두려움이라도 이길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대신 싸우시는데 감히 어떤 적이 우리를 이길 수 있을까요?


한편 모세는 자신도 가나안 땅에 들어갈 수 있기를 하나님께 간절히 구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만해도 족하니 이 일로 다시 내게 말하지 말라”(26절)고 하십니다.

이는 하나님이 모세를 미워하셨기 때문이 아닙니다.

다만 모세는 이미 넘치는 은혜를 받았기 때문에 현재의 모습으로도 충분하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우리 역시도 간구하는 모든 기도들에 대해

우리가 원하는 방식대로 응답 받지는 못할 것임을 보여줍니다.

그보다는 비록 우리가 구하는 것이지만,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뜻에 맞게 응답될 것입니다.

하지만 결국 우리는 우리의 방식보다 하나님의 뜻이 더 복된 것임을 알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이라면 (2018년 1월 25일 목요일) (23~29)


25절에 보면 모세의 간절한 기도가 나옵니다.

지난 40년 동안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땅에 들어가서 그 땅을 보고 그 땅에서 살아가는 것,

이것이 바로 모세가 간절히 원했던 것입니다.

비록 하나님께서 이 소원을 거절하셨지만 모세의 간절함(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지는 것을 보고 싶다)만큼은 우리들이 배워야 할 것입니다.


믿는 자들이 진실로 소망하고 원해야 할 것은 세상에 있지 않습니다.

오직 하늘에 있습니다. 오직 하나님께 있습니다.

그러므로 믿는 자들은 하나님의 약속과 하나님의 뜻을 원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원해야 합니다.


또 우리들이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내가 간절히 원한다고 해서 우리의 소원대로 하나님께서 응답해주시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모세가 하나님의 약속의 땅에 들어가기를 원한 것은 잘못된 소원이 아니었습니다.

어찌 보면 너무나 당연한 소원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응답은 단호했습니다.

"이 일로 다시 내게 말하지 말라."


아마도 모세는 크게 실망했을 것입니다. 큰 충격을 받았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모세는 하나님의 응답에 순종했습니다.

자신의 뜻을 접고, 자신의 소원을 접고, 하나님의 응답에 순종했습니다.


오늘 하루 이렇게 기도합시다.

"주님께서 어떻게 응답하시든지 순종하겠습니다.

비록 내 소원과 다를지라도 순종하겠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이 디베랴 바닷가에서 밤새도록 고기를 잡지 못한 제자들에게 배 오른편에 그물을 던지라고 말씀합니다. 제자들이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였을 때, 잡았던 물고기의 수는 153마리였습니다 (요21:1-11). 하나님의 생명의 양식인 말씀에 순종할 때 우리는 풍성한 153의 열매를 얻게될 것입니다.

1 먼저 땅을 받은 지파는 전체 이스라엘을 위해 어떻게 행동했습니까?(18절)

5 하나님께서는 왜 모세가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하게 하셨습니까?(25~28절)

1 하나님께서 모세의 청을 거절하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5 내 방식대로가 아닌 하나님의 뜻에 맞게 기도응답을 받은 일이 있나요?


자신의 삶에 탐닉하느라 형제자매들을 잊어버리지 않게 해주십시오.
마지막을 함께하는 동지로 살게 해주십시오.


언제 어디서든 하나님이 나를 대신해 싸우시는 것을 믿고 담대할 수 있게 하시고,

설령 내 방식대로가 아니더라도 그것이 하나님의 뜻임을 믿고 감사하게 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