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명기]

[5]주위를 잘 둘러보십시오 (신명 2:16~25) (CBS)

colorprom 2017. 4. 20. 13:01

주위를 잘 둘러보십시오 2014년 9월 18일 목요일


신명기 2:16~2:25           


16 모든 군인이 사망하여 백성 중에서 멸망한 후에

17 여호와께서 내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18 네가 오늘 모압 변경 아르를 지나리니

19 암몬 족속에게 가까이 이르거든 그들을 괴롭히지 말고 그들과 다투지도 말라

암몬 족속의 땅은 내가 네게 기업으로 주지 아니하리니 이는 내가 그것을 자손에게 기업으로 주었음이라


20 (이곳도 르바임의 땅이라 하였나니 전에 르바임이 거기 거주하였음이요

암몬 족속은 그들을 삼숨밈이라 일컬었으며

21 그 백성은 아낙 족속과 같이 강하고 많고 키가 컸으나 여호와께서 암몬 족속 앞에서 그들을 멸하였으므로 암몬 족속이 대신하여 그 땅에 거주하였으니

22 마치 세일에 거주한 에서 자손 앞에 호리 사람을 멸하심과 같으니

그들이 호리 사람을 쫓아내고 대신하여 오늘까지 거기에 거주하였으며

23 갑돌에서 나온 갑돌 사람이

가사까지 각 촌에 거주하는 아위 사람을 멸하고 그들을 대신하여 거기에 거주하였느니라)


24 너희는 일어나 행진하여 아르논 골짜기를 건너라

내가 헤스본 아모리 사람 시혼과 그의 땅을 네 손에 넘겼은즉 이제 더불어 싸워서 그 땅을 차지하라

25 오늘부터 내가 천하 만민이 너를 무서워하며 너를 두려워하게 하리니

그들이 네 명성을 듣고 떨며 너로 말미암아 근심하리라 하셨느니라



모든 군인이 사망하여 … 여호와께서 내게 말씀하여 이르시되(16-17절):

하나님께 불순종하고 원망했던 출애굽 1세대가 모두 죽은 후에

순종과 승리의 새로운 시대가 시작되는 역사의 중요한 전환점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모세에게 임하였다.

이는 새로운 출발이 하나님의 말씀에서 시작되는 것을 보여준다.


이곳도 르바임의 땅이라 하였나니(20절):

아낙 족속, 에밈(10), 삼숨밈(20)을 모두 ‘르바임’이라 불렀듯이

이들의 특징은 ‘강하고 많고 키가 크다’는 것이었다.

개인적인 측면뿐 아니라 집단적인 측면에서도 강대한 군사력을 가진 집단이었다.

하지만 르바임은 그들보다 ‘약하고 적고 작은’ 모압암몬에게 정복을 당했다.

하나님께서 모압과 암몬 앞에서 싸우셨기에 가능했던 사건이었다.

모압과 암몬의 르바임 정복은 그들 민족에게도 의미 있는 사건이었지만,

이스라엘의 가나안 정복을 위한 발판이기도 했다.

백성들이 두려워했던 대상도 ‘아낙(1장 28절)’이었기 때문이다.

모압과 암몬이 하나님의 도움으로 르바임을 이길 수 있었다면,

이스라엘도 하나님의 도움으로 그들이 두려워했던 아낙을 이길 수 있을 것이다.


그 백성은 아낙 족속과 같이 강하고 많고 키가 컸으나 … 그 땅에 거주하였으니(21절):

르바임 족속이 암몬 족속에 비해 강했는데도 암몬 족속에게 멸망한 것은

하나님께서 그 땅을 암몬 족속에게 주시고자 하셨기 때문이다.

상대적인 인간의 강함은 절대적인 하나님 앞에서는 아무것도 아니다.


본문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도록 중요한 단어나 구절에 대해 설명해 주는 곳입니다.

갑돌(23): 그리스 남방 100km 지점에 위치한 지중해상의 큰 섬 그레데. 크레타 문명의 발상지이기도 하다.


아르논 골짜기(24):

요단강 동편 고원지대에 발원하여 모압과 아모리 족의 경계를 흘러 사해로 들어가는 큰 강.


그들이 네 명성을 듣고 떨며 너로 말미암아 근심하리라(25절):

하나님께서 앞장서시겠다는 약속처럼 전쟁이 일어나기도 전에 시혼의 마음은 두려움으로 가득 찼다.


주위를 잘 둘러보십시오 2014년 9월 18일 목요일


하나님의 명령의 앞뒤전후에는 하나님의 약속이 새겨져 있습니다.

가나안을 정복하라고 명령하신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앞에서 이미 온갖 준비들을 다 해놓으셨습니다.

요단 동편의 르바임들은 이미 모압과 암몬에게 정복을 당했으며,

곧 맞이할 대적들의 마음에는 깊은 두려움이 소용돌이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하신 일들을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염려와 두려움에 빠진 사람들의 특징은 ‘극단적으로 좁은 시야’입니다.

한번 두려움에 마음이 잠식당하면 두려운 대상만 보이지, 다른 것들이 하나도 보이지 않습니다.

그 결과 마땅히 보아야 하는 것은 보지 못하고, 굳이 보지 않아도 되는 것에 시선이 잡혀있습니다.

이런 삶의 결과가 ‘노예’입니다. 곳곳에서 노예로 살아가는 삶의 정황이 보입니다.

‘의자놀이’로 대변되는 경쟁사회 속에서 모두들 달리기에서 앞서기만을 바라고 있고,

달리기 밖의 세상도 가능하다는 것을 잊고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생각보다 큰 자유가 있음을 망각하고 있습니다.


38년 전 이스라엘은 아낙 자손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하나님의 약속을 거부했습니다.

그러나 그 두려움은 사실 허상에 불과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제 이스라엘에게 모압과 암몬의 예를 보여주시며,

이스라엘이 가장 두려워했던 것이 사실은 허상이었음을 알려주셨습니다.


지금도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주위를 보라!’로 말씀하십니다.

길가에 핀 작은 잡초 하나에는 사람이 만든 거대한 건물보다 위대한 생명이 있습니다.

또한 우리 주위에는 생존경쟁이 아닌 더불어 걷는 삶을 선택한 신앙의 지체들이 있습니다.

두려움을 접어두고 주위를 살펴보면 하나님께서 하신 수많은 일들이 비로소 보일 것입니다.


우리의 탐욕과 하나님의 뜻은 다르다 2014년 9월 18일 목요일


하나님은 사람을 통해 일하시되 순종하는 사람을 통해 일하십니다. 누군가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나님은 99% 헌신된 100명이 아니라 100% 헌신된 1명을 찾으신다.”

물론 헌신이나 순종을 비율로 측정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하나님은 그만큼 우리에게 온전한 헌신과 순종을 요구하신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적당히 헌신하고 순종하는 것은 불순종과 별반 다를 것이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차든지 덥든지 하라고 하셨던 것입니다(계 3:15).


한편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암몬 족속을 괴롭히지도 다투지도 말라고 하십니다.

이는 에돔 및 모압 족속과 같이 암몬 족속 또한 이스라엘이 싸워야 할 대상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은 다른 나라들과 같이 그들의 필요와 탐욕 때문에 전쟁해서는 안 되었습니다.

다만 그들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전쟁만 해야 했습니다.

곧 그들은 자신들의 필요와 탐욕이 아닌 오직 하나님의 뜻에만 순종해야만 했습니다.


마찬가지로 오늘날 우리 또한 우리의 필요와 탐욕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따라 행해야 합니다.

무엇보다 우리의 필요와 탐욕에 기인한 것을 하나님의 뜻이라 착각하지 않아야 합니다.

역사는 이런 착각에 의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고통당했는지 증거해줍니다.


1 르바임은 이스라엘에게 어떤 의미였습니까?

5 암몬 족속의 르바임 정복이 시사하는 바가 무엇입니까?(20~22절)

1 하나님께서 암몬 족속과 다투지 말라고 하신 이유는 무엇인가요?

5 내 욕심이나 필요와 하나님의 뜻을 어떻게 구별해야 할까요?


- 보고 싶은 바가 아니라 보아야 할 것을 보게 해주십시오.
- 우리의 눈을 열어주셔서 하나님께서 행하신 것을 보게 해주십시오.

- 어떤 상황에서든 나의 탐욕이나 필요에서 비롯된 것을 하나님의 뜻으로 착각하지 않도록 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