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명기]

[4]진노 속에서 긍휼을 봅니다 (신명 2:1~15) (CBS)

colorprom 2017. 4. 20. 11:33

진노 속에서 긍휼을 봅니다 2014년 9월 17일 수요일


신명기 2:1~2:15           


1 우리가 방향을 돌려 여호와께서 내게 명령하신 대로 홍해 길로 광야에 들어가서

여러 날 동안 세일 산을 두루 다녔더니

2 여호와께서 내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3 너희가 이 산을 두루 다닌 지 오래니 돌이켜 북으로 나아가라

4 너는 또 백성에게 명령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세일에 거주하는 너희 동족에서의 자손이 사는 지역으로 지날진대 그들이 너희를 두려워하리니

너희는 스스로 깊이 삼가고 5 그들과 다투지 말라

그들의 땅은 한 발자국도 너희에게 주지 아니하리니 이는 내가 세일 산을 에서에게 기업으로 주었음이라


6 너희는 돈으로 그들에게서 양식을 사서 먹고 돈으로 그들에게서 물을 사서 마시라

7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가 하는 모든 일에 네게 복을 주시고 네가 이 큰 광야에 두루 다님을 알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40 년 동안을 너와 함께 하셨으므로 네게 부족함이 없었느니라 하시기로


8 우리가 세일 산에 거주하는 우리 동족 에서의 자손을 떠나서 아라바를 지나며

엘랏에시온게벨 곁으로 지나 행진하고 돌이켜 모압 광야 길로 지날 때에

9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모압을 괴롭히지 말라 그와 싸우지도 말라

그 땅을 내가 네게 기업으로 주지 아니하리니 이는 내가 자손에게 아르를 기업으로 주었음이라


10 (이전에는 에밈 사람이 거기 거주하였는데 아낙 족속 같이 강하고 많고 키가 크므로

11 그들을 아낙 족속과 같이 르바임이라 불렀으나 모압 사람은 그들을 에밈이라 불렀으며

12 호리 사람도 세일에 거주하였는데 에서의 자손이 그들을 멸하고 그 땅에 거주하였으니

이스라엘이 여호와께서 주신 기업의 땅에서 행한 것과 같았느니라)


13 이제 너희는 일어나서 세렛 시내를 건너가라 하시기로 우리가 세렛 시내를 건넜으니

14 가데스 바네아에서 떠나 세렛 시내를 건너기까지 38 년 동안이라

이 때에는 그 시대의 모든 군인들이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맹세하신 대로 진영 중에서 다 멸망하였나니

15 여호와께서 손으로 그들을 치사 진영 중에서 멸하신 고로 마침내는 다 멸망되었느니라



홍해 길로 광야에 들어가서 여러 날 동안 세일 산을 두루 다녔더니(1절):

세일 산은 사해 남쪽의 에돔 족속이 살고 있는 지역이다.

3, 14절을 참고할 때, ‘여러 날 동안’은 광야 생활이 끝나는 38년의 시간이다.


여호와께서 내게 말씀하여 이르시되(2절):

1장의 사건과 지금 여기 2절에서 시작되는 하나님의 계시 사이에는 38년의 광야 생활이 있다.

따라서 이제부터 주어지는 말씀은 출애굽 1세대가 아니라

가나안 땅에 들어갈 새 세대, 곧 출애굽 2세대에게 주어지는 말씀이었다.


그들과 다투지 말라(5절):

에돔 족속의 땅과 모압 족속의 땅(9절)은 외관상 에돔과 모압이 자신이 힘으로 정복한 땅이었지만,

신앙의 관점에서는 하나님께서 두 민족에게 주신 땅이었다.


돈으로(6절): ‘돈’에 해당하는 단어는 ‘은’을 뜻하는 말이다.

당시에는 국제적으로 은이 주요한 화폐로 통용되었음을 시사한다.


너희는 돈으로 그들에게서 양식을 사서 먹고 … 사서 마시라(6절):

양식은 돈으로 직접 살 수 있었지만,

물은 돈으로 직접 물을 사는 것이 아니라 우물을 파서 얻은 물에 대한 대가를 지불해야 했다는 의미이다.

즉 우물을 팔 수 있는 허가권을 돈으로 샀다는 뜻이다.


이 사십 년 동안을 너와 함께 하셨으므로 네게 부족함이 없었느니라(7절):

추가된 38년의 광야생활은 단순한 형벌의 시간만은 아니었다.

하나님과 함께 있었기에 모든 것이 부족한 광야에서도 부족함을 경험하지 않았다.

광야생활은 형벌을 넘어 축복의 의미도 있었다.


세렛 시내(13): 모압과 에돔 사이 접경지에 북서쪽으로 놓여 있는 시내.

출애굽한 이스라엘이 오랜 방랑을 끝내고 정착한 마지막 야영지이다.


그 시대의 모든 군인들이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맹세하신 대로(14절): 1장 35절의 말씀이 그대로 성취되었다. 뒤틀린 것 같은 역사이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굳건히 이루어지고 있다.


진노 속에서 긍휼을 봅니다 2014년 9월 17일 수요일


38년의 광야생활은 분명 형벌의 시간이었습니다. 예고된 죽음이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다가왔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긍휼은 그분의 진노 속에서도 살아있습니다.

모든 것이 부족한 광야였지만 하나님께서는 38년간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하셨고,

이스라엘은 결핍이 아닌 풍요를 경험했습니다.

역사상 그 어느 때보다 복되신 하나님과 가까이 머문 38년이었습니다.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면 보이나니 그때에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으리라.”라는 말처럼

38년의 광야생활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아는 만큼만 그 의미를 깨달을 수 있습니다.


광야생활은 멀리서 보면 길고 지루하게 반복된 시간이며, 줄줄이 죽어나가는 죽음의 시간으로만 보입니다.

당연히 하나님이 아주 잔혹하고 무서운 분으로만 보일 것입니다.


그러나 광야생활을 조금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거기에는 큰 기쁨과 즐거움이 있습니다.

불기둥과 구름기둥은 하나님의 동행을 일상적으로 경험하게 하며,

하늘에서 내리는 만나와 메추라기는 화려하지는 않지만 부족하지 않은 음식이었습니다.

모든 것이 충분하고 넘쳐흘렀던 이집트에서도 누리지 못했던 ‘충분함’을,

모든 것이 부족한 광야에서 누리는 기적의 시간이었습니다.

하나님 한 분의 동행이 광야를 풍요의 땅으로 바꾸었습니다.

그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범죄와 고통 안에서조차도 축복을 일구시는, 악을 선으로 바꾸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을 알고 진정으로 사랑하는 자들은 그분의 깊은 진노 속에서 더욱 높은 사랑을 보는 안목이 있습니다. 우리를 둘러싼 고통을 그저 고통으로만 생각하면 아무것도 건질 것이 없습니다.

하지만 신앙은 고통의 한 가운데서 하나님 한 분이면 충분하다는 고백을 낳습니다.


순종이 참 승리로 이끈다 2014년 9월 17일 수요일


하나님은 말씀으로 무에서 유를 창조하신 분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이 함께하신다는 것은 새로운 창조의 역사,

곧 새 하늘과 새 땅을 만드시는 하나님의 역사에 참여한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이와 더불어 하나님이 함께하신다는 것은 단순히 과거 40년의 광야생활에서만이 아니라

현재 그리고 미래에도 함께하신다는 것입니다.

한 마디로 하나님은 지금까지 한 순간도 함께하시지 않은 적이 없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는 겁니다.

나는 이처럼 한 순간도 떠나지 않으시고 함께하시는 하나님을 경험하고 있나요?


한편 13절에서 하나님은 “이제 너희는 일어나서 세렛 시내를 건너가라”고 말씀하시는데,

이어 나오는 구절을 보면, “우리가 세렛 시내를 건넜으니”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명령에 즉각적으로 순종했음을 보여주는 것으로서,

38년 전 가데스바네아에서 보여준 불순종과는 완전히 대조를 이룹니다.

그리고 이 때문에 출애굽 2세대는 승리의 세대가 될 수 있었습니다.


오늘날 우리의 삶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즉각적인 순종만이 참 승리로 이끄는 길인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순종은 나의 삶에 전능하신 하나님이 개입하시는 통로가 되기 때문입니다.


1 하나님의 주권이 어떻게 드러나고 있습니까?(5, 9, 14절)

5 광야생활은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까?(7절)

부활하신 예수님이 디베랴 바닷가에서 밤새도록 고기를 잡지 못한 제자들에게 배 오른편에 그물을 던지라고 말씀합니다. 제자들이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였을 때, 잡았던 물고기의 수는 153마리였습니다 (요21:1-11). 하나님의 생명의 양식인 말씀에 순종할 때 우리는 풍성한 153의 열매를 얻게될 것입니다.

1 이스라엘이 세일과 모압의 땅을 차지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인가요?

5 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알고 또 그것에 순종하려고 노력하나요?


광야와 같은 현실 속에서도 하나님의 주권을 굳건히 믿게 해주십시오.
하나님을 바르게 알아 하나님으로 ‘충분히’ 살게 해주십시오.


오늘날 내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하시고,

그것에 즉각적으로 순종하는 삶을 살게 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