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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십자가를 지신 주님이 주신 경고와 약속 (누가 23:26~43) (CBS)

colorprom 2017. 4. 16. 18:21

십자가를 지신 주님이 주신 경고와 약속 2014년 8월 26일 화요일


누가복음 23:26~23:43           


26 그들이 예수를 끌고 갈 때에 시몬이라는 구레네 사람이 시골에서 오는 것을 붙들어

그에게 십자가를 지워 예수를 따르게 하더라


27 또 백성과 및 그를 위하여 가슴을 치며 슬피 우는 여자의 큰 무리가 따라오는지라

28 예수께서 돌이켜 그들을 향하여 이르시되

예루살렘의 딸들아 나를 위하여 울지 말고 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하여 울라

29 보라 날이 이르면 사람이 말하기를 잉태하지 못하는 이와 해산하지 못한 배와 먹이지 못한 젖이 복이 있다 하리라

30 그 때에 사람이 산들을 대하여 우리 위에 무너지라 하며 작은 산들을 대하여 우리를 덮으라 하리라

31 푸른 나무에도 이같이 하거든 마른 나무에는 어떻게 되리요 하시니라


32 또 다른 두 행악자도 사형을 받게 되어 예수와 함께 끌려 가니라

33 해골이라 하는 곳에 이르러 거기서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고 두 행악자도 그렇게 하니

하나는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있더라

34 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하시더라 그들이 그의 옷을 나눠 제비 뽑을새

35 백성은 서서 구경하는데 관리들은 비웃어 이르되

저가 남을 구원하였으니 만일 하나님이 택하신 자 그리스도이면 자신도 구원할지어다 하고

36 군인들도 희롱하면서 나아와 신 포도주를 주며

37 이르되 네가 만일 유대인의 왕이면 네가 너를 구원하라 하더라

38 그의 위에 이는 유대인의 왕이라 쓴 패가 있더라


39 달린 행악자 중 하나는 비방하여 이르되 네가 그리스도가 아니냐 너와 우리를 구원하라 하되

40 하나는 그 사람을 꾸짖어 이르되 네가 동일한 정죄를 받고서도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아니하느냐

41 우리는 우리가 행한 일에 상당한 보응을 받는 것이니 이에 당연하거니와

이 사람이 행한 것은 옳지 않은 것이 없느니라 하고

42 이르되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거억하소서 하니

43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시니라



그들이 예수를 끌고 갈 때에……예수를 따르게 하더라(26절):

십자가형은 죄수가 형틀을 메고 시내를 가로질러 처형 장소까지 이동해야 했다.

로마 군인들은 오랜 심문과 조롱에 지쳐 쓰러진 예수님 대신 시몬이라는 사람을 붙잡아 형틀을 지게 했다.

공권력으로 사람들을 함부로 대하고 있다. 십자가형의 부도덕성을 반증한다.


구레네 사람(26): ‘구레네’ 출신의 사람. ‘구레네’는 북아프리카 리비아의 중요 도시로서,

기원전 5세기 이후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이 집단 거주했다.


시몬이라는 구레네 사람(26절):

시몬은 당시 교회에 잘 알려진 인물이었던 루포알렉산더의 아버지였다(막 15:21).

아마 시몬은 유월절을 기념하기 위해 예루살렘을 찾은 유대인 순례자였을 것이다.


나를 위하여 울지 말고 … 복이 있다 하리라(29-30절):

골고다 언덕으로 오르시는 예수님의 뒤를 많은 여인들이 따라갔다.

이 구절은 그 때 예수님이 그들에게 하신 말씀이다. 이

것은 곧 다가올 예루살렘의 멸망과 그에 따른 환난과 고통을 암시하는 것이다.


푸른 나무에도 이같이 하거든 마른 나무에는 어떻게 되리요 하시니라(31절):

‘푸른나무’는 평화와 안식을 가지고 오신 예수님을, ‘마른 나무’는 예루살렘의 여인들(백성들)을 가리킨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당하는 십자가 고통과 어려움보다 더 큰 폭력이 예루살렘을 휘감을 것을 예언하신다.

 

해골이라 하는 곳에 이르러(33절):

해골이라는 말은 라틴어로 ‘칼바리아’(Calvaria)인데, 여기서 ‘갈보리’란 이름이 생겨났다.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기억하소서(42절):

죄인이 하는 신앙의 고백이다.

제자들마저도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나라가 좌절되었다고 생각할 때,

이 죄인은 하나님의 나라를 당당히 고백하고 있다.

그는 죽음에 직면하면서 비로소 참된 믿음을 소유하게 된 것이다.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43절):

낙원은 천국의 다른 이름으로, 하나님께서 계시는 곳을 가리킨다.

칠십인역성경에서는 에덴동산을 낙원으로 번역했다(창 2장 8~9절).

따라서 낙원은 예수님께서 회복하신 타락 이전의 에덴동산,

곧 하나님과의 개인적인 관계를 경험하는 것을 가리킨다고 볼 수 있다(ESV Study Bible 참고).


십자가를 지신 주님이 주신 경고와 약속 2014년 8월 26일 화요일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위해 우는 여인들에게

죄와 세상의 권세가 폭력으로 그들을 억압할 것이라고 경고하십니다.

십자가형을 집행하는 사람들은 여전히 예수님을 조롱하지만,

그들의 조롱과 박해는 아이러니하게 유대인의 왕으로 오신 예수님의 실체를 증명합니다.

더 나아가 예수님께서는 믿음으로 고백하는 죄인에게 낙원을 약속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지신 십자가의 길을 따르는 것은 현실 세계를 애통하게 여기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아무런 죄 없이 고난을 당하시고 핍박을 당하신 것은, 정말이지 안타깝고 어처구니없는 일입니다. 또한 그 길이 우리의 죄를 대속하고 생명을 주시기 위한 길이기에,

앞서가셨던 십자가의 길은 슬프고 안타까워 보입니다.


그럼에도 그리스도를 따르는 우리들은 십자가만 슬퍼하며 아쉬워해서는 안 됩니다.

오히려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 세계에 영향을 미치는 죄와 악의 세력이 득세하는 것을 애통해야 합니다.

삶의 자리에서 마주하는 불의한 상황들과 현실에서 자행되는 억압을 슬퍼하고 저항해야 합니다.


그렇게 우리 삶에 임한 죽음과 죄악의 그림자가 만들어내는 어둠에 빛을 밝혀야 합니다.

거짓과 불신으로 달려가는 세상에서, 십자가를 통해 주어진 진정한 평화와 행복을 추구해야 합니다.

주님께서 십자가를 지셔서 우리에게 약속해주신 ‘낙원’을 소망해야 합니다.

십자가를 주목하는 것이 우리 삶의 자리로 이어져야 합니다.

우리가 직면하는 삶 가운데 찾아온 의와 평강과 희락(롬 14:17)을 추구해야 합니다.


하나님나라에 비춰 우리의 현실은 어떠한지 묵상해보시기 바랍니다.


생명의 십자가 2014년 8월 26일 화요일


예수님은 십자가를 메고 사형장소인 언덕으로 향하셨습니다.

이 언덕은 ‘해골’이라는 이름이 붙여진 ‘갈보리 언덕’이었습니다.

‘해골’은 ‘죽음’을 상징합니다. 그런데 인간의 구원을 위해 오신 예수님이 ‘죽음’을 상징하는 ‘해골 언덕’ 위에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그 피를 그 언덕 위에 뿌리신 것에는 중요한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곧 세상을 구원하시기 위해 오신 예수님이

해골 언덕의 정수리에 생명의 십자가를 꽂으시고 구원의 보혈을 흘리심으로써,

‘해골의 권세’, 즉 ‘죽음의 권세’를 정복하셨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러하기에 누구든 예수님을 자신의 구주로 고백하는 자에게는

십자가로부터 흘러나오는 참 생명의 능력, 부활과 영생의 축복이 흘러가게 되는 것입니다.


혹시 지금 나의 인생, 나의 가정, 나의 학교와 학원이 아무런 소망도 보이지 않는 해골 언덕 같지는 않은가요? 죽음의 권세가 압도하고 있는 공동묘지 같지는 않은가요?

설령 그렇더라도 절대 포기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오히려 해골(죽음)의 언덕을 생명의 언덕이 되게 하신 예수님을 가슴에 품고

그 곳에서 믿음으로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그러한 나의 기도와 삶을 통해 예수님의 생명을 흐르게 하시어,

마침내 해골 같고 죽음 같았던 우리의 인생과 가정, 학교를

기쁨과 소망, 사랑이 넘치는 곳으로 변화시키실 것입니다.


용서 받은 자의 용서 2015년 4월 3일 금요일


마지막 순간까지 예수님께서는 원수를 사랑하라고 하신 말씀처럼,

예수님을 십자가에 매단 자들을 사랑하셔서, 그들을 용서해달라고 아버지께 간구하고 계십니다.

 

그때 예수님 옆에 달린 두 강도 중 하나는 예수님을 조롱하고 비방했고,

또 다른 강도는 그런 그를 꾸짖었습니다.

조롱하는 강도를 꾸짖은 그 강도는 예수님에 관해 올바로 이야기하고, 더불어 자신의 신앙을 고백하며

하나님의 나라에서 자신을 기억해달라고 요청하고 있습니다.

 

용서를 받으려면 용서를 구해야 합니다.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용서를 구할 때 용서받을 수 있습니다.

죄를 용서받기 위해서는 회개하는 것이 지극히 당연한 일입니다.

 

그리고 십자가에서 구원을 선포하신 일은,

예수님께서 죄인을 구원하기 위해 오셨다는 것을 가장 극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의 죄가 너무 커서 하나님께 용서받지 못할 것이라 생각한다면, 그런 생각보다 큰 죄가 없습니다.

하나님께 용서받지 못할 죄는 없습니다.

우리는 날마다 우리의 죄를 하나님께 회개하며 용서를 구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것에 비례하여 용서해주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각박한 오늘의 우리 사회에서는 순간적으로 일어난 분노를 조절하지 못하여

이웃과 가족들을 다치게 하는 현상들이 많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분노조절장애라는 정신적인 질병을 안고 살아갑니다.

분노를 억누르거나 쌓아두다가 결국엔 분노에 지배당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용서로 끝내 분노를 이기는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그것이 주님을 따르는 제자들이 살아가는 삶의 방식입니다.

또한 이것 역시 고난에 동참하는 방법입니다.



1 십자가 행렬을 따르며 슬퍼하는 여인들에게 예수님께서는 어떻게 반응하십니까?

5 예수님의 십자가는 무엇을 위함입니까(34절, 43절)?

1 예수님께서 피 흘리신 언덕 이름은 무엇이며, 왜 하나님은 그 곳에 예수님의 십자가를 세우셨을까요?      

5 지금 나의 삶에 해골 언덕 같은 곳은 없나요?

그 곳을 생명의 언덕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 예수님께 간청한 죄인은 예수님을 어떻게 믿고 있었습니까?

- 나라면 도저히 용서하지 못할 것 같은 죄가 있습니까?

 

예수님의 십자가를 따라 살아가게 해주십시오!


해골 언덕 같은 우리의 인생과 가정, 학교가 생명을 주시는 예수님으로 인하여 회복되고

기쁨과 소망, 사랑이 넘치는 생명의 언덕이 되게 해주세요.


+ 우리의 죄를 용서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날마다 용서를 구하며 살게 해주십시오.
+ 우리도 남을 용서하여 분노에 지배당하지 않는 삶을 살도록 해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