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나보다 더 큰 이 2014년 7월 14일 월요일
누가복음 11:27~11:36
27 이 말씀을 하실 때에 무리 중에서 한 여자가 음성을 높여 이르되
당신을 밴 태와 당신을 먹인 젖이 복이 있나이다 하니
28 예수께서 이르시되 오히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자가 복이 있느니라 하시니라
29 무리가 모였을 때에 예수께서 말씀하시되
이 세대는 악한 세대라 표적을 구하되 요나의 표적밖에는 보일 표적이 없나니
30 요나가 니느웨 사람들에게 표적이 됨과 같이 인자도 이 세대에 그러하리라
31 심판 때에 남방 여왕이 일어나 이 세대 사람을 정죄하리니
이는 그가 솔로몬의 지혜로운 말을 들으려고 땅 끝에서 왔음이거니와 솔로몬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으며
32 심판 때에 니느웨 사람들이 일어나 이 세대 사람을 정죄하리니
이는 그들이 요나의 전도를 듣고 회개하였음이거니와 요나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느니라
33 누구든지 등불을 켜서 움 속에나 말 아래에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는 들어가는 자로 그 빛을 보게 하려 함이라
34 네 몸의 등불은 눈이라 네 눈이 성하면 온 몸이 밝을 것이요 만일 나쁘면 네 몸도 어두우리라
35 그러므로 네 속에 있는 빛이 어둡지 아니한가 보라
36 네 온 몸이 밝아 조금도 어두운 데가 없으면 등불의 빛이 너를 비출 때와 같이 온전히 밝으리라 하시니라
당신을 밴 태와 당신을 먹인 젖이 복이 있나이다(27절):
이는 여인으로서 최고로 가치 있는 일을 한 마리아에 대한 흠모를 표현한 것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성령으로 잉태한 것을 생각할 때, 하나님의 기적을 바라는 표현이기도 했다.
이에 예수님은 오히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자가 복이 있다고 말씀하신다.
요나의 표적(29-30절): 유대인들은 메시아나 선지자라 칭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에게 하나님이 보내신 자라는 것을 증명할 수 있는 표적을 구했다.
이에 예수님은 요나의 표적을 말씀하셨는데, 이는 요나가 물고기 뱃속에서 3일을 있었던 것처럼,
예수님 또한 죽으셨다가 3일 만에 부활하실 것임을 예표하는 것이기도 했다.
요나가 니느웨 사람들에게 표적이 됨과 같이(30절): ‘표적’은 ‘사인(sign, NIV)’이다.
요나가 예언자로서 하나님의 뜻을 알리는 사인이었다는 의미다.
요나가 하나님의 사인이었던 것처럼, 예수님께서도 그의 세대에 하나님의 뜻을 알리는 하나님의 사인이셨다. 물론 요나와 비교할 수 없는 완전한 표적이었다.
네 몸의 등불은 눈이라(34절):
눈은 존재를 식별하는 몸의 기관으로 선과 악을 분별하는 관점을 의미하기도 한다.
눈이 성한 자는 주의 말씀을 통해 선악을 바르게 분별할 수 있으나
눈이 나쁜 자는 주의 말씀을 받아들이지 못하며 결과적으로 선악을 분별하지 못하게 된다(LAB인용).
요나보다 더 큰 이 2014년 7월 14일 월요일
요나의 선포를 듣고 회개한 니느웨 백성들과 달리,
유대 백성들은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이적을 보고도 믿지 않았으며, 그의 선포를 듣고는 귀를 막아버렸습니다. 세상의 거짓된 것들로 눈이 가려진 자들은 참 빛이 세상에 임하였으나 보지 못하고,
그 빛을 향해 나아가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빛을 멸시하며 핍박할 뿐입니다.
질병을 고치고 귀신을 쫓아내며 심지어 죽은 자를 살리신 일들은 근대적 인간 이성으로는 설명할 길이 없기에, 기적이라는 말로 이야기할 수밖에 없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예수님의 제자들이 예수님을 신격화하기 위해
복음서를 기록하면서 신화적 요소를 가미했다고 주장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참모습을 알고자 한다면 성경의 신화적 요소들을 제거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합리적 이성으로 받아들일 수 없는 초자연적인 일들은 상상과 조작의 산물로 치부하여
신화의 세계로 내몰아버리는 것입니다.
이런 일들을 단순히 신비로운 것으로 치부해버려도 되는 것일까요?
이런 사고는 철저히 인간중심적인 사고일 뿐, 전혀 정당하지 않습니다.
인간이 이해할 수 있으면 합리적인 것이고 인간이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은 신화일 뿐이라는 생각은,
인간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을 파악할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전제 아래서만 타당합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인간의 이성이란 참으로 나약한 것이며, 쉽게 속을 뿐 아니라
사실을 왜곡하는 어리석음으로 심각하게 병들어있다는 증거가 세상에 수 없이 널려있습니다.
이와 같은 역사적 증거를 정직하게 받아들이는 이성은 하나님 앞에 겸손해 질 수 밖에 없습니다.
참된 표적을 가르치심 2014년 7월 14일 월요일
사람들은 기적을 원하며 그것에 열광합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진정한 복된 삶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사실 이것은 거꾸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도 지키지 않는 자,
또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자기 생각대로 행하는 자에 대한 경고이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먼저 듣고, 또 그 말씀대로 지켜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복을 받는 사람의 모습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처럼 눈은 몸의 등불입니다.
눈이 성하면 온 몸도 밝겠지만 눈이 나쁘면 온 몸이 어두울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말하는 ‘눈’은 시력이 아니라 가치관입니다. 즉 자신과 세상을 바라보는 가치관입니다.
하나님 또는 성경의 가치관을 가질 때 우리의 삶은 건강하고 바르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반대로 물질 또는 세상의 가치관을 가진다면 우리의 삶은 황폐하고 비뚤어지게 될 것입니다.
보통 눈이 나쁜 사람은 안경을 통해서 세상을 봐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죄로 인해 가치관이 손상된 사람들은
하나님(성경)의 가치관을 통해 자신과 세상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눈은 몸의 등불 2016년 1월 13일 수요일 (누가 11:33~36)
오늘본문에서 예수께서는 등불을 비유로 하여 인간의 내면에 있는 '어둠(abyss)'을 직시하도록 이끄십니다. 등불이 없는 방은 깜깜합니다. 게다가 문이 닫혀있으면 빛이 스며들어갈 수 없습니다. 그런 방처럼 인간의 내면에도 등불이 없어 깜깜한 방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런 방이 크든작든 우리 내면에 있다는 것을 우리는 어렴풋하게나마 알고 있습니다. 분노조절이 잘 되지 않을 때, 속마음과 다른 말이 툭 튀어나올 때, 내 뜻대로 조절하기 어려운 영역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어쩌면 깜깜한 방의 문이 잠시 열렸던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깜깜한 방'이 내 안에 있음을 감지한 것이지요. 그 깜깜한 방을 무시합니까? 얼른 그 방문을 닫고, 내속의 어둠을 못 본 척, 슬쩍 눈을 감아버립니까? 그렇게 하면 결국 깜깜한 방을 그대로 두는 셈이 됩니다. 그러나 예수께서 말씀하십니다. "네 속에 있는 빛이 어둡지 아니한가 보라."(눅11:35) 예수님의 이 말씀은, 우리 속에 있는 빛이 수시로 어두워질 수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는 말씀으로 들려옵니다. 어떻습니까? 오늘 나의 속을 들여다봅시다. 밝습니까? 어둡습니까? 그런데 나의 속을 들여다볼 눈, 그 눈의 상태는 또 어떠합니까? 그 눈은 온전합니까? 아니면 나쁩니까?(눅11:34) 눈이 성해야, 눈이 온전해야 내 '안'과 '밖'을 제대로 볼 수 있음은 물론이고, 나의 온 몸이 밝을 수 있을 것입니다(눅. 11:34)
그때 우리는 어떻게 합니까?
+ 주님, 우리가 우리 속에 있는 빛이 어둡지는 않은지 들여다보게 하소서. 아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자가 복이 있느니라 (2019년 2월 9일 토요일) (누가 11:24~28)
24더러운 귀신이 사람에게서 나갔을 때에 물 없는 곳으로 다니며 쉬기를 구하되 얻지 못하고
이에 이르되 내가 나온 내 집으로 돌아가리라 하고
25가서 보니 그 집이 청소되고 수리되었거늘
26이에 가서 저보다 더 악한 귀신 일곱을 데리고 들어가서 거하니
그 사람의 나중 형편이 전보다 더 심하게 되느니라
27이 말씀을 하실 때에 무리 중에서 한 여자가 음성을 높여 이르되
당신을 밴 태와 당신을 먹인 젖이 복이 있나이다 하니
28예수께서 이르시되 오히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자가 복이 있느니라 하시니라
예수님께서, 어떤 사람에게서 쫓겨난 악한 귀신 이야기를 해주십니다.
쫓겨난 귀신이 머물 곳을 찾다가 결국 전에 살던 곳으로 다시 되돌아갔더니,
거기가 깨끗이 청소되어있어, 자기보다 악한 다른 일곱 귀신을 더 모아서 거기로 다시 들어갔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니, 그 사람의 형편이 이전보다 더 나빠졌다는 이야기입니다.
성도들 가운데 주님의 은혜와 능력을 한 번 체험하고 났는데도
어쩐 일인지 이전보다 영적인 상태가 더 나빠지는 경우를 가끔 보게 됩니다.
삶에서 성령의 열매가 나타나기보다는
오히려 믿음의 공동체에 속한 다른 성도들의 마음에 상처를 주고, 시험 들게 하는 말과 행동을 하기도 합니다.
왜 그런 일이 일어날까요?
사탄의 공격을 또 받았기 때문입니다.
사탄은 한 번 공격하고 사라지지 않습니다. 사탄은 항상 성도를 공격합니다.
그러므로 한 번 기적을 체험했다고 하여 '나는 기적체험자입네'하며 '우쭐'해져서 방심해서는 안 됩니다.
인간은 계속해서 하나님 앞에 회개를 해야 하고, 계속해서 말씀의 능력을 힘입어야 합니다.
그러려면 계속해서 겸손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귀신 이야기를 듣고 어떤 여자가 말했습니다.
"당신을 밴 태와 당신을 먹인 젖이 복이 있나이다."(눅11:27) 그러자 주님께서 그 말을 정정해주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자가 복이 있느니라."(눅11:28)
그렇습니다. 이 세상 그 어떤 좋은 것도 말씀을 듣고 지키는 것보다 복되지 않습니다.
성도는 하나님의 말씀을 매일같이 듣고 꾸준히 지켜야 합니다.
인간의 진정한 복은 하나님 말씀에서만 나오기 때문입니다.
+ 사탄의 공격을 이길 수 있도록 하나님 말씀의 능력을 힘입게 하소서. 아멘.
1 니느웨 사람들과 남방 여왕의 공통점은 무엇인가요?
5 심판 때에 니느웨 사람들이 일어나 이 세대 사람들을 정죄하리라는 말씀은 무슨 뜻일까요?
1 예수님이 표적을 구하는 자들에게 요나의 표적을 말씀하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5 나는 어떠한 가치관으로 세상을 보고 있나요?
우리가 성경이 기록하는 표적들을 읽고 들으면서 믿음에 이르게 해주십시오.
교회가 증언하는 하나님나라의 복음이 사람들의 마음에 들리고, 믿어지는 은혜를 주십시오.
나의 모든 삶을 하나님 또는 성경의 가치관 위에 세우기 위해
늘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또 그 말씀을 지키며 사는 사람이 되게 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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