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누가]

[34]누가 이웃인가? (누가 10:25~42) (CBS)

colorprom 2017. 4. 12. 13:51

누가 이웃인가? 2014년 7월 10일 목요일


누가복음 10:25~10:42           


25 어떤 율법교사가 일어나 예수를 시험하여 이르되 선생님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26 예수께서 이르시되 율법에 무엇이라 기록되었으며 네가 어떻게 읽느냐

27 대답하여 이르되 네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였나이다

28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대답이 옳도다 이를 행하라 그러면 살리라 하시니


29 이 사람이 자기를 옳게 보이려고 예수께 여짜오되 그러면 내 이웃이 누구니이까


30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를 만나매

강도들이 그 옷을 벗기고 때려 거의 죽은 것을 버리고 갔더라


31 마침 한 제사장이 그 길로 내려가다가 그를 보고 피하여 지나가고

32 또 이와 같이 한 레위인도 그 곳에 이르러 그를 보고 피하여 지나가되

33 어떤 사마리아 사람은 여행하는 중 거기 이르러 그를 보고 불쌍히 여겨

34 가까이 가서 기름과 포도주를 그 상처에 붓고 싸매고

자기 짐승에 태워 주막으로 데리고 가서 돌보아 주니라

35 그 이튿날 그가 주막 주인에게 데나리온 둘을 내어 주며 이르되

이 사람을 돌보아 주라 비용이 더 들면 내가 돌아올 때에 갚으리라 하였으니


36 네 생각에는 이 세 사람 중에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겠느냐

37 이르되 자비를 베푼 자니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 하시니라


38 그들이 길 갈 때에 예수께서 한 마을에 들어가시매 마르다라 이름하는 한 여자가 자기 집으로 영접하더라

39 그에게 마리아라 하는 동생이 있어 주의 발치에 앉아 그의 말씀을 듣더니

40 마르다는 준비하는 일이 많아 마음이 분주한지라 예수께 나아가 이르되

주여 내 동생이 나 혼자 일하게 두는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시나이까 그를 명하사 나를 도와주라 하소서


41 주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마르다마르다야 네가 많은 일로 염려하고 근심하나

42 몇 가지만 하든지 혹은 한 가지만이라도 족하니라

마리아는 이 좋은 편을 택하였으니 빼앗기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25절): 그에게 영생은 ‘무엇을 행하는 일’과 관련되어 있었다. 자기 의를 통해 생명을 얻고자 하는 자들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실패할 수밖에 없는 길 위에서 자기기만에 빠져 있는 자의 모습이 여기에 드러나 있다.


그 사람이 자기를 옳게 보이려고(29절): 그의 목적은 자기 의로움을 드러내는 것이었다. 주님께서 밝히신 율법의 의미대로라면 자신은 명백하게 불의한 자라는 것이 되는데, 이런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이 사랑해야 할 이웃의 의미를 축소함으로써 자신이 의로운 자라는 사실을 증명하고자 했다. 이 율법교사의 모습에서 우리 자신의 얼굴을 발견하게 된다.



누가 이웃인가? 2014년 7월 10일 목요일


이웃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삶에는 한계가 없습니다.

내가 사랑해야 할 이웃이 누구이며 어떤 사람들인지 구별하려 할 것이 아니라,

내가 누군가의 이웃이 되고 있는지를 물어야 합니다.

환란을 당한 누군가에게 이웃이 되어 사는 삶, 그런 삶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삶은 이웃을 사랑하는 삶으로 드러납니다.

이 단순한 진리를 부정해서는 안 됩니다.

만인의 아버지이신 하나님은 만백성이 서로 사랑하며 사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뜻을 따라 이웃을 사랑하며 살아갑니다.


그러나 우리는 종종 성경 속의 율법사처럼

내가 사랑할 수 있는 사람들과 내가 사랑할 수 없는 사람들로 나누며,

심지어 미워하며 증오해도 되는 사람들까지 구별합니다.

우리가 사랑하지 못하는 것, 심지어 어떤 이들을 미워하며 증오하는 것조차 합리화하려 노력합니다.


그러나 성경의 진리는 이 문제를 다른 방식으로 접근합니다.

우리는 우리가 사랑할 수 있는 이웃이 누구인지 구별하려 들지만,

성경은 우리가 고통 중에 있는 누군가의 이웃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세상에는 환란 당한 자들, 고통 속에 울고 있는 자들, 도움이 필요한 자들이 너무 많습니다.

거리마다 십자가 네온이 빛나고, 주일마다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찬양하는 사람들은 많지만,

세상에서 환란을 당한 사람들의 이웃이 될 사람들은 너무 적다는 것이 이 땅의 아픔입니다.


구원의 복음을 노래하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세상에서 환란 당한 사람들의 이웃이 된다면,

하나님의 뜻이 이 땅에 이루어지기를 구하는 기도가 응답될 것입니다.



너도 이와 같이 하라 2014년 7월 10일 목요일


한 율법교사가 예수님을 시험하기 위해 찾아와 ‘영생을 얻는 방법’에 대해 물었습니다.

그 율법교사는 나름대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는 율법의 가르침이

‘영생을 얻는 방법’이라고 믿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가 보기에 예수님은 이와 다른 것을 가르치고 있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이에 예수님은 그에게 강도를 만난 사람을 도와준 한 사마리아인의 이야기를 해주셨습니다.

그리고는 그에게 누가 강도만난 자의 이웃이냐고 묻습니다.

이에 율법교사는 자비를 베푼 자라고 대답했고,

예수님은 그에게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율법교사는 영생 얻는 방법을 알고 가르쳤지만 정작 자신은 그 말씀대로 행하지 않는 자였습니다.

때문에 결국에는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의 의미도 제대로 알지 못한 자였습니다.

그런데 어쩌면 지금의 우리가 이 율법교사와 똑같지는 않나요?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고 알긴 하지만 정작 삶에서 실천하지 않고 있기에,

어느 순간부터 하나님의 말씀이 의미하는 바조차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것은 아닌가요?


하나님의 말씀은 살고 행하라고 주어진 것입니다.

또한 말씀은 살고 행할 때 그 의미를 더욱 분명하게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말씀대로 가서 행하는 하루가 되기를 바랍니다.


중요한 것 한 가지 2015년 5월 22일 금요일


세상에는 할 일이 참 많습니다. 그래서 '한 가지만 하며 살 수는 없다'고 우리는 생각합니다.

그러나, 주님의 눈에는 세상 모든 일이 다 동급으로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힘써야 하는 일은 단 한 가지입니다.

그것은 주님을 섬기는 일이지요. 그리고 주님의 말씀을 듣는 일이지요.

내 정신을 고양시키는 일이지요. 예민한 영적 감수성을 잃지 않도록 하는 일이지요.


언뜻 보기에 마리아보다 마르다가 ‘이른바’ 더 여성적입니다.

마르다는 주님이 오신다는 소식을 듣고 주님을 맞을 준비로 분주합니다.

주님이 막상 오셨는데도 계속 분주합니다. 그러나 마리아는 주님의 발치에 앉아서 말씀을 듣습니다.

그때 당시 여성이, 음식준비는 아랑곳하지 않고 감히 예수님의 발치에 앉아서 말씀을 듣다니…!


예수님은 당신을 접대할 준비로 바쁜 마르다보다

말씀을 듣기 위해 예수께 바짝 다가앉아있는 여인 마리아를 더 기뻐하셨습니다.

물론 마르다를 딱히 책망한 것도 아닌 듯합니다.

아마도 주님은 마르다마리아와 같이 말씀을 듣기를 원하셨을 것입니다.


우리는 이 일 저 일을 똑같이 다 잘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선택하며 살아갈 뿐입니다.

어제, 우리는 어떤 일을 선택하며 살아왔습니까?

오늘, 지금 이 시각 이후, 우리는 어떤 일을 선택하며 살아갈 것입니까?



좋은 편을 선택하라 2006년 6월 2일 금요일 

                   

예수님은 예루살렘에 오르실 때마다 베다니에 있는 마르다와 마리아 자매의 집에 들르셨습니다.

이 가정은 자매의 오라비인 나사로가 소생함을 받은 사건도 있고(요 11:43-44)하여

주님이 각별히 사랑하는 가정이었습니다.

예수님이 마지막 예루살렘에 올라가셨을 때도 이 자매의 집에 들르셨습니다.

마르다는 음식 준비에 분주했고 마리아는 주님의 발 아래 앉아 말씀을 주의 깊게 듣고 있었습니다.

마르다는 정성을 다해 음식을 대접하는 것으로 주님의 일행을 영접했고,

마리아는 진리를 사모하는 마음으로 주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런데 분주하게 준비하던 마르다마리아가 협력하지 않는 것에 불평하는 마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교회에서 궂은 일을 도맡아 담당하는 일꾼이 많이 있습니다.

여러 분야에서 헌신적인 봉사와 수고를 통해 교회의 구석 구석이 깨끗하게 유지됩니다.

그러나 그 분주한 일 때문에 불평하고

다른 사람의 섬김을 공정하게 평가하지 못하는 잘못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예수님은 마르다처럼 음식으로 섬기는 것도 좋은 일이나,

마리아처럼 진리를 사모하여 집중하여 듣는 것은 더 좋은 일이라고 하셨습니다.

마리아가 더 좋은 편을 선택한 것입니다.

마리아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는 기회를 놓치지 않았습니다.


우리들은 바쁜 일에 몰두한 나머지 가장 중요한 일에 소홀할 수 있습니다.

일상적인 일에 얽매이거나 몰두하다가 스스로 분주해져서 불평하며 원망으로 일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좋은 삶의 모습이 아닙니다.

항상 깨어 있는 상태에서 예수님 말씀에 귀 기울이며 평안을 유지하며 일하는 것

훨씬 좋은 선택입니다.

교회에 나와 믿음 생활을 하면서 여러 방법으로 주님을 섬기며 일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그러나 그 섬김과 헌신 가운데서도 말씀을 사모하고 배우고 듣는 일에 더욱 힘쓰는 성도들이 되어야 합니다. 주님과의 최우선적인 관계는 진리의 말씀으로 연결되는 것입니다.

다른 일로 열심히 섬겼던 마르다보다 주님의 말씀을 집중하여 들었던 마리아가 더 좋은 선택을 한 것처럼,

우리는 주님이 기뻐하시고 주님과 항상 가장 좋은 관계를 맺는 일을 선택하도록 해야 겠습니다.
항상 더 좋은 편을 선택하도록 하십시다. 


사랑은 측은히 여기는 마음 2015년 5월 21일 목요일 (누가 10:25~37) (CBS)


사랑은 '구체적'입니다. 사랑은 추상적 개념으로 그 의미가 쉬 파악되지는 않습니다.

더구나 사랑에 대한 개념정의를 어렵게 알아챘지만, 그랬다고 해서

자동으로 사랑하며 살아가는 사람이 되지는 않습니다. 전혀 다른 차원의 일이니까요.


율법교사는 사랑에 관하여 이를테면 잘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율법의 첫째 계명을 잘 말할 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대답, "네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네 이웃을 네 자신같이 사랑하라"는 것은 말 그대로 정답이었습니다.(27절)

그렇다면 그가 사랑을 '아는' 사람이며 동시에 사랑을 '하는' 사람이었을까요?


이제 예수님은 사마리아 사람의 비유를 들려줍니다. 그런 다음 질문합니다.

"이 세사람 중에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겠느냐?"(36절)

예수님의 이 질문은 그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질문입니다.

사랑의 개념에 대해서 잘 알아서 잘 말할 수 있는 그 누구라도

예수님의 비유 앞에서는 조용해질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사랑을 알든 모르든 실제로 우리가 제사장으로 혹은 레위 사람으로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사마리아 사람측은히 여기는 마음을 가진 사람입니다.

상대방의 고통과 아픔에 공감하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그러한 사람입니까?



+ 구체적으로 사랑하게 하소서. 아멘.


사랑 (2018년 11월 3일 토요일)


강도가 나타났습니다.

강도는 여행자의 옷을 벗기고 때립니다. 강도 만난 자는 대책없이 강도에게 당하였습니다.

어떻게 할 수 없는 막막한 상황입니다.

이때에 그곳을 지나가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제일 먼저 지나간 사람은 제사장입니다. 제사장은 거의 죽어가는 강도 만난 자를 보고 피하여 지나갑니다.

그 다음으로 지나간 사람은 레위인입니다. 그도 역시 피하여 지나갑니다.

마지막으로 지나가는 사람은 사마리아 사람입니다.


사마리아 사람은 강도 만난 사람을 보더니 가까이 다가가

그 상처에 올리브기름과 포도주를 붓고 싸매어줍니다.

그런 다음 주막으로 데려가 주막주인에게 돌보아주도록 부탁하며, 비용을 지불합니다.


사마리아 사람에게서 우리는 사랑을 느낍니다.

듣도 보도 못한 낯선 사람을 돌보는 그에게서 우리는 사랑을 느끼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우리를 어떻게 사랑하셨을까요?

병자들을 고치시고, 귀신들린 사람들을 건강하게 해주시고, 복된 가르침을 주시다가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셨습니다.

사마리아 사람에게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사랑입니다.


그리하여 요한일서는 우리에게 이렇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께서 이렇게까지 우리를 사랑하셨으니, 우리도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

(요일4:11, 새번역)

그렇습니다. 사랑합시다.


+ 우리의 삶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을 온전히 실천하게 하여주소서. 아멘.


이웃사랑 (2019년 5월 22일 수요일) (25~28)


성경의 모든 가르침을 한 마디로 요약하면 '사랑'입니다.

그것을 두 가지 차원에서 바라보면 하나님사랑이웃사랑이지요.


사랑은 생명의 시작이고 중심이며 마무리입니다.

건강하고 아름다운 생명이란,

사랑으로 만들어지고 사랑으로 키워지며 사랑으로 마무리되는 생명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사랑으로 대하셨으며, 예수님께서도 우리들을 사랑으로 대하셨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도 사랑을 결단하였습니다.

사랑이 기독교의 핵심입니다.

기독교인인 우리는 사랑을 놓쳐서는 안 되겠습니다.

그 사랑은 두 방향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첫째, 기독교인은 하나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우리 믿음의 선배들은 하나님사랑에 푹 빠져서 살았습니다.

성경에는 하나님사랑에 빠진 믿음의 선배들 모습을 많이 보여줍니다.


둘째, 이웃을 사랑해야 합니다.

우리 믿음의 선배들은 이웃사랑에 빠져 살았습니다.

우리 또한 이웃을 우리의 몸과 같이 사랑하여야 합니다. (레19:18, 마22:37)

그것이 하나님의 계명인 까닭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지금 이웃을 제대로 사랑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다른 종교·문화권에서 왔다고, 돈 벌고 싶어 우리나라에 들어왔다고 질색하며 이웃을 바라보기도 합니다.

얼굴모양이나 입은 옷을 보고 대화 한 마디 나눠보지 않은 채 '테러리스트'로 정죄하기도 합니다.

난민, 탈북민, 이주노동자들, 결혼이주여성들, 여러 분야에 걸쳐있는 소수자들(minorities)…,

우리는, 그러한 우리의 이웃들을 제대로 진정으로 사랑하고 있는가, 자문해보아야 하겠습니다.


+ 주여,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게 하소서.

그 어떤 이유로든 이웃을 혐오하지 않도록 우리를 인도하여주소서. 아멘.


1 예수께서 말씀하신 영생의 길은 무엇인가요?

5 예수님께서 사마리아인을 비유로 말씀하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1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냐는 물음에 율법교사는 무엇이라고 대답하나요?

5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가 주는 교훈은 무엇인가요?


하나님 이 땅의 그리스도인들이 이웃을 사랑하며 섬기는 삶을 살게 해주십시오.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이웃을 사랑하도록 성령의 은혜를 부어주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을 머리의 지식 속에 가두지 않고 삶의 현장 속에서 실천하는 자가 되게 하시고,

그로 인해 말씀의 더 깊은 의미를 깨닫는 은혜를 얻게 해주세요.


+ 중요한 일 한 가지를 일상 속에서 잃어버리지 않게 하소서. 아멘.

+ 하나님, 더욱 진리를 사모하여, 다른 일보다 주님의 말씀을 듣고 배우는 일에 힘쓰게 하옵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