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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각 동네와 각 지역으로 (누가 10:1~16) (CBS)

colorprom 2017. 4. 11. 19:18

각 동네와 각 지역으로 2014년 7월 8일 화요일


누가복음 10:1~10:16           


1 그 후에 주께서 따로 70 인을 세우사 친히 가시려는 각 동네와 각 지역으로 둘씩 앞서 보내시며

2 이르시되 추수할 것은 많되 일꾼이 적으니

그러므로 추수하는 주인에게 청하여 추수할 일꾼들을 보내 주소서 하라

3 갈지어다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어린 양을 이리 가운데로 보냄과 같도다

4 전대나 배낭이나 신발을 가지지 말며 길에서 아무에게도 문안하지 말며

5 어느 집에 들어가든지 먼저 말하되 이 집이 평안할지어다 하라

6 만일 평안을 받을 사람이 거기 있으면 너희의 평안이 그에게 머물 것이요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로 돌아오리라

7 그 집에 유하며 주는 것을 먹고 마시라 일꾼이 그 삯을 받는 것이 마땅하니라

이 집에서 저 집으로 옮기지 말라

8 어느 동네에 들어가든지 너희를 영접하거든 너희 앞에 차려놓는 것을 먹고

9 거기 있는 병자들을 고치고 또 말하기를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에게 가까이 왔다 하라


10 어느 동네에 들어가든지 너희를 영접하지 아니하거든 그 거리로 나와서 말하되

11 너희 동네에서 우리 발에 묻은 먼지도 너희에게 떨어버리노라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온 줄을 알라 하라

12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그 날에 소돔이 그 동네보다 견디기 쉬우리라


13 화 있을진저 고라신아, 화 있을진저 벳새다야,

너희에게 행한 모든 권능을 두로와 시돈에서 행하였더라면

그들이 벌써 베옷을 입고 재에 앉아 회개하였으리라

14 심판 때에 두로와 시돈이 너희보다 견디기 쉬우리라


15 가버나움아 네가 하늘에까지 높아지겠느냐 음부에까지 낮아지리라


16 너희 말을 듣는 자는 곧 내 말을 듣는 것이요 너희를 저버리는 자는 곧 나를 저버리는 것이요

나를 저버리는 자는 나 보내신 이를 저버리는 것이라 하시니라




주께서 따로 칠십 인을 세우사 친히 가시려는 각 동네와 각 지역으로 둘씩 앞서 보내시며(1절):

히브리어 구약성경 창세기 10장에는 세상에 있는 민족들의 이름 70개가 언급되어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70명의 제자들을 각 마을로 보내셨다는 것은

온 나라와 민족에게 복음을 전하실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신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LAB 인용)


예수님은 앞서 열두 제자를 파송했던 것처럼 지금 70명을 따로 세워 파송하셨다.

이들도 둘씩 짝을 지어서 보냈는데, 이는 당시 법적 증언이 효력을 발생하려면

두 사람 이상의 증인이 있어야 하는 구약적 전통에 입각한 것이었다.


그런데 여기서 이전 열두 제자를 보낼 때와 다른 점은

그 목적이 ‘종말적인 추수를 준비하도록 하는 것’이었다는 점이다.

즉 예수님은 다른 목적으로 이들을 파송했던 것이다.


갈지어다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어린 양을 이리 가운데로 보냄과 같도다(3절):

 예수님께서는 전도자들을 파송하면서 그들이 감당해야 할 일이 어떤 종류의 것인지 설명하기 위해

이와 같은 표현을 사용하셨다. 전도자들은 매우 약한 자들로서 극도로 위험한 상황 가운데 보내졌다.

예수님께서는 그 사실을 숨기거나 미화하기보다는 선명하게 묘사하여 보여주셨다.


먼저 말하되 이 집이 평안할지어다 하라(5절): 예수님은 70명을 파송하면서 먼저 ‘평안을 빌라’고 하셨다.

비록 그들이 ‘이리 가운데로 보냄을 받은 것’과 같은 형편이었음에도,

그들은 마지막 때의 추수를 위해 ‘평화의 메시지’를 전해야만 했다.


각 동네와 각 지역으로 2014년 7월 8일 화요일


예수님과 함께 제자들은 각 동네와 각 지역을 다니며 하나님나라를 증언하였습니다.

하나님나라가 임했다는 소식은 이 세상 모든 곳에 울려 퍼져야 할 복음이기 때문입니다.

세상 구석구석에 어둠이 가득한 곳마다 하나님나라의 복음이 증언되어 회복될 필요가 있었고,

제자들이 가는 곳에서는 어김없이 회복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교회가 감당하는 다양한 사역들은 모두 하나님나라를 증언하는 것으로 드러나야 합니다.

병든 자를 치료하는 일, 가난한 자를 구제하는 일, 약한 자를 돌보는 일,

고통 중에 우는 자들의 친구가 되어 섬기는 일조차도 하나님나라를 증언하는 일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나라를 증언하는 일은 복음의 메시지를 전하는 것과 함께 섬김과 봉사를 통해서 나타납니다.

하나님나라는 우리의 선포와 함께 희생적인 섬김의 삶으로 세상 가운데 증명되는 것입니다.


교회의 존재 이유와 목적은 하나님나라를 증언하는 일에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겠습니다.

그런데 교회가 하고 있는 많은 사역들이 하나님나라를 증언하는 일이 되고 있는지 살펴봐야 합니다.

겉으로는 하나님나라를 이야기하지만 실상은 인간들의 제국을 건설하고 있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인간들의 제국이 된 교회에서는 사람의 영광이 높여지며 사람들이 다스립니다.

말로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뿐 실상은 철저히 사람들의 이익을 위해 봉사하는 타락한 종교의 모습을 보입니다. 우리가 섬기는 교회가, 우리가 하고 있는 사역이 진정으로 하나님나라를 위한 것이 되도록 해야겠습니다. 교회는 하나님나라의 전위로서

하나님나라를 증언하도록 부름 받은 공동체라는 사실을 기억하며 살아갑시다.


70명의 추수꾼 vs 마지막 심판 2014년 7월 8일 화요일


예수님은 70명을 둘씩 나누어 각 마을로 보내시면서 그들을 ‘추수할 일꾼’으로 칭하셨습니다.

이는 이전에 열두 제자들을 보내셨을 때와는 달리 ‘추수할 때’를 위한 일꾼으로서

추수할 때가 가까이 이르렀음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또한 예수님은 이들 70명을 보내시면서 특별한 당부를 줍니다.


그것은 첫째, 아무것도 가지고 가지 말라는 것이었습니다.

이는 그들이 방문하여 평안을 빌어준 집에 유하면서 주는 것을 먹고 마실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일꾼이 그 삯을 받는 것처럼 평안을 비는 자 역시 대접을 받는 것이 당연한 것이었습니다.


둘째는 길에서 아무에게도 문안하지 말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셋째는 어느 집에 들어가든지 그 집의 평안을 빌라는 것이었습니다.

만일 평안을 빌 때에 그 집 주인이 그것을 받지 않으면 그 평안은 비는 자에게 다시 돌아올 것입니다.

한 마을의 경우에도 그 마을이 추수꾼을 영접하지 않으면

미련없이 발에 묻은 먼지를 떨어버리라고 하셨습니다.


이 시대의 타락과 불의를 볼 때, 이 시대는 하나님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는 세상임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이들에게는 하나님의 심판이 분명히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와 더불어 예수님을 따르는 우리는 줄기차게 평화의 복음을 전해야 할 것입니다.

그것이 추수할 일꾼으로서 우리의 사명입니다.


흔들리지 않는 원칙 2015년 5월 19일 화요일



우리가 주님의 일을 할 때 주님께서 명령하신 '흔들리지 않는 원칙'을 잘 따르는 것이 중요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은 70인을 전도현장에 보내시며,몇 가지 원칙을 제시하셨습니다.


첫째는 '전대나 배낭이나 신발을 가지지 말며, 길에서 아무에게도 문안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4절) 전도여행을 위한 여비나 그밖의 것들을 준비하지 말고 전적으로 하나님께 의존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땅히 인사받고 인사해야 하지만, 복음전파사역이 긴급하니 그런 것을 하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둘째는 '먼저 평안을 빌라'고 하셨습니다.(5절)

이 평안을 받아들이면 그 사람이 예수님을 믿는 자에게 주시는 '평안'을 얻을 것이요,

거절하면 그들에게 내가 빌어준 평안이 나에게로 돌아올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셋째는, '일꾼이 삯을 받는 것이 마땅하다'고 하셨습니다.(7절)

전도하러 나갔다가 어느 집에 들어가 주는 것을 먹고 마시라고 하셨습니다.

그것은 마땅한 일, 합당한 일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때 제시되었던 원칙을 한 마디로 요약하면 '하나님께 전적으로 의존하여 복음을 전파하라'일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복음을 전파하되, '내'가 한다고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복음전파는 하나님께서 하십니다 (Missio Dei).

'나'는 그분의 도구일 뿐입니다.

하나님께 전적으로 의존합시다.

그것이 복음전파사역의 원칙입니다.


나의 말을 듣는 사람 (2018년 1월 20일 토요일) (누가 10:13~16)


예수님은 지금 칠십 명의 제자들을 파송하시며 그들에게 주의사항을 말씀하시는 중입니다.

이를테면 '파송연설' 중이십니다.

연설 중에 예수님은 '고라신' 과 '벳새다,' 그리고 '가버나움' 등을 콕 집어 거명하시면서

거의 '저주'에 가까운 말씀을 퍼붓고 계십니다.
왜 그러시는 걸까요?


이 지역들은 추측컨대 예수님께서 특별히 더 관심을 두고 있었던 지역이었을 수 있습니다.

실제로 이 지역들은 예수님의 관심지역이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동일한 내용을 다루는 마태복음에서는

그 지역에서 "권능을 가장 많이" 행하셨다고 기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마12:20)


예수님의 권능을 가장 많이 경험하면서 회개할 기회가 아무리 많았어도 그곳 사람들은 회개하지 않습니다.

그건 예수님의 권능에 문제가 있어서가 아닙니다. 회개하지 못하는 그들 문제입니다.


한편 가버나움은 "

가버나움아 네가 하늘에까지 높아지겠느냐 음부에까지 낮아지리라"고 책망받습니다.(15)

교만한 자들 역시 회개하지 못하는 자들입니다.


예수님의 파송연설은 다음과 같은 말씀으로 끝납니다.

"너희 말을 듣는 자는 곧 내 말을 듣는 것이요

너희를 저버리는 자는 곧 나를 저버리는 것이요

나를 저버리는 자는 나 보내신 이를 저버리는 것이라."(눅10:16)


복음전파자에게 문제가 없어도 듣는 이가 회개할 줄 모르는 교만한 사람이라면

복음은 전달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그것을 지적하고 계십니다.


+ 하나님, 혹여 실패할지라도 열심을 내게 하소서. 아멘.


1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기도해야 한다고 가르쳐주신 내용은 무엇인가요?

5 제자들을 보내시는 것이 마치 이리 가운데 어린 양을 보내는 것과 같다고 하신 이유는 무엇인가요?

1 예수님이 70명을 둘씩 각 동네와 각 지역으로 보내신 목적이 무엇일까요?

5 나는 주위의 사람들에게 평화의 복음을 얼마나 전하고 있나요?


이 땅의 교회가 하나님나라를 증언하는 공동체가 되어 세상 가운데 하나님나라를 드러내게 해주십시오.
하나님나라를 증언하는 삶은 험하고 위험합니다. 하나님의 성령이 임하셔서 이 사역을 기쁨으로 감당할 힘을 주십시오.


다툼과 분열, 전쟁의 소식이 끊이지 않는 세상에서

예수님의 평화의 복음을 전하는 사명을 잘 감당하는 자가 되게 해주세요.


+ 하나님, 부르실 때 바로 지금 평안을 비는 축복의 일을 하게 하시고,

그럴 때 먹이시는 주님의 은혜를 누리게 하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