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은 연단의 자리에서 인내하는 것 2014년 5월 28일 수요일
히브리서 12:1~12:13
1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하며
2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3 너희가 피곤하여 낙심하지 않기 위하여 죄인들이 이같이 자기에게 거역한 일을 참으신 이를 생각하라
4 너희가 죄와 싸우되 아직 피 흘리기까지는 대항하지 아니하고
5 또 아들들에게 권하는 것 같이 너희에게 권면하신 말씀도 잊었도다
일렀으되 내 아들아 주의 징계하심을 경히 여기지 말며 그에게 꾸지람을 받을 때에 낙심하지 말라
6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가 받아들이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라 하였으니
7 너희가 참음은 징계를 받기 위함이라
하나님이 아들과 같이 너희를 대우하시나니 어찌 아버지가 징계하지 않는 아들이 있으리요
8 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친아들이 아니니라
9 또 우리 육신의 아버지가 우리를 징계하여도 공경하였거든
하물며 모든 영의 아버지께 더욱 복종하여 살려 하지 않겠느냐
10 그들은 잠시 자기의 뜻대로 우리를 징계하였거니와
오직 하나님은 우리의 유익을 위하여 그의 거룩하심에 참여하게 하시느니라
11 무릇 징계가 당시에는 즐거워 보이지 않고 슬퍼 보이나
후에 그로 말미암아 연단 받은 자들은 의와 평강의 열매를 맺느니라
12 그러므로 피곤한 손과 연약한 무릎을 일으켜 세우고
13 너희 발을 위하여 곧은 길을 만들어 저는 다리로 하여금 어그러지지 않고 고침을 받게 하라
구름 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1절):
큰 경기장에서 경기하는 모습을 떠오르게 하는 구절로, 증인들은 11장에 언급된 믿음의 영웅들이다.
그들은 믿음의 능력과 하나님의 신실하심에 대한 증거를 가지고 있다.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2절): 예수님은 믿음의 창시자이시며 완성자이시다.
예수님은 모든 신자들의 믿음에 앞서 가셔서 믿음의 최종 목표에 이르신 분으로서
믿음을 완전히 구현한 최고의 모델이시다.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하며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1, 2절): 인내로 경주하라는 권면이 핵심 메시지다.
경주를 위해 필요 없는 것들을 벗고, 피곤하여 낙심치 않기 위해서 예수님을 바라보라고 권한다.
예수님께서는 믿음의 창시자(아르케곤, 히 2장 10절 참조)시며, 믿음을 완성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이다.
너희가 참음은 징계를 받기 위함이라(7절):
믿음의 경주 가운데 인내해야 하는 이유는 연단(ESV, discipline)받기 위해서다.
아버지가 아들을 양육하기 위해 훈련시키는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믿음의 백성들을 거룩하게 하시려고(12장 10절) 연단하신다.
우리의 어그러진 다리를 곧게 하시기 위해서다(12장 13절).
믿음은 연단의 자리에서 인내하는 것 2014년 5월 28일 수요일
우리가 힘써 노력해야만 하는 것은, 다름 아닌 아버지 하나님께서 아들인 우리에게 내리신 훈련입니다.
그것이 물론 우리를 슬프게 할 수 있지만, 우리의 유익을 위한 것입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믿는 것은 결국 우리 삶에 닥쳐오는 징계를 받아들이는 자세로 증명됩니다.
연단의 과정에서 믿음은 인내로 표현됩니다. 인내하는 자들이 하나님 나라의 열매(의와 평강)를 맺습니다.
소망을 가진 사람이 끝까지 인내할 수 있습니다.
학생들은 방학을 기다리면서 졸린 눈을 비비며 등교를 하고, 직
장인들은 월급날을 고대하면서 출근 전쟁에 돌입합니다.
얼굴에 담고 있는 다양한 고민이 담긴 표정들만큼이나, 저마다 마음속에 품은 다채로운 소망이 있습니다.
그 소망은 삶이 즐거울 때도 힘을 발휘하지만, 오히려 일상이 고달플 때 본격적인 힘을 발휘합니다.
외적인 어려움과 고통 가운데 소망은 인내의 원동력이 됩니다.
그렇기에 소망을 갖는 일은 중요합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신앙의 경주에서 붙잡아야 할 소망은 무엇일까요?
믿음으로 시작한 우리의 걸음은
예수님께서 시작하시고 완성하신 싸움에 들어선 것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고난에 참여하는 사람에게는 그리스도의 승리 역시 주어진다는 소망을 가져야 합니다.
이런 관점에서 삶에 갑자기 닥친 죄악과 대적들로 말미암은 고통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살리시기 위한 수술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일부분을 떼어내는 것은 고통스러운 일이지만, 수술 이후에 보다 나은 생활이 있습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살 때 찾아오는 어려움이, 오히려 우리의 어그러진 모습을 바로 세우는 역할을 합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보이지 않지만 우리를 사랑하시는 아버지 하나님의 존재를 믿고, 소망해야 합니다.
믿음의 주, 온전하게 하시는 예수님 2014년 5월 28일 수요일
믿음의 삶은 장거리 경주와도 같습니다.
견디기 힘든 고통을 인내하며 목표를 향해 달리는 경주처럼,
믿음의 삶도 죄와 피 흘리기까지 싸우며 인내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 경주를 완주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믿음의 주요 완성자이신 예수님을 바라보아야만 합니다.
십자가의 고난을 참으신 예수님께서 우리의 연약함을 아시고 도와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반면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잊고 죄와 싸우지 아니할 때에는 사랑의 징계가 있을 것입니다.
물론 이 징계는 우리를 연단시키고 의와 평강의 열매를 맺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은 그분의 자녀인 우리가 믿음의 경주를 온전히 완주하기 원하십니다.
그래서 때로 우리를 연단하시기 위해 징계도 하십니다.
하지만 이 징계는 형벌과 같이 무서운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것은 가장 위대한 아버지의 사랑입니다.
우리로 하여금 그분의 거룩하심에 참여토록 하시려는 사랑입니다.
하여 그 사랑을 깨닫고 우리는 죄와 싸워야 합니다.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어떤 죄라도 거부해야 합니다.
물론 이를 위해 예수님께서 우리를 도우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직 믿음으로 예수님만 바라봅시다.
예수님을 생각하라 2017년 5월 2일 화요일
우리중에 완벽하게 평탄한 인생길,
완전하게 안전한 인생길을 걸어간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다 자기들대로 어렵다고 느끼고, 다 자기들대로 힘겹다고 생각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인생길이 완벽하게 평탄하고 완전하게 안전해서 희희낙락하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고난과 시험 속에 있을 때에도 예수님을 바라보며 고난과 시험을 이겨나갈 힘을 얻는 사람들이
그리스도인입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너희가 피곤하여 낙심하지 않기 위하여 죄인들이 이같이 자기에게 거역한 일을 참으신 이를 생각하라."
(히12:2-3)
이 성경 말씀은 우리에게 두 가지를 제안합니다.
첫째, 예수님을 바라보라. 아무리 예수님을 바라보려 해도 지금 예수님이 눈앞에 안 보입니까?
눈을 뜹시다. 예수님께서는 안 계시는 곳이 없습니다.
둘째, 예수님을 생각하라. 예수님 생각이 조금도나지 않을 만큼 고민거리, 문젯거리가 무겁습니까?
예수님께서는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을 향하여 ‘내게로 오라’ 말씀하셨습니다.
인생이라는 마라톤 (2018년 3월 28일 수요일) (히 12:1~3)
흔히들 '인생은 마라톤과 같다'고 합니다.
정해진 목표지점을 향해 뛰어가되 체력의 안배와 속도의 조절을 잘 해야 완주할 수 있습니다.
'순위'도 중요하지만 직업선수가 아닌 이상 마라톤에서 제일 중요하고 뿌듯한 일은 '완주'입니다.
중도에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목표를 향해 뛰었다는 사실은
마라톤 정신에 입각해 볼 때 가장 명예로운 일입니다.
그래서 모든 역경을 이겨낸 후, 탈진한 상태가 되어도, 다리를 절거나 끌면서도
마라톤 참가자들은 완주하려고 노력합니다.
제일 마지막에 들어올지라도 경주를 포기하지 않은 '꼴찌'에게 더 큰 박수가 쏟아지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 아닐까요?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삶이 가지는 목표는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 목표 때문에 우리는 달립니다.
목표를 항하여 우리는 끝까지 달려야 합니다.
달리는 일 자체가 중요합니다.
달리는 도중에 장애물을 만나기도 합니다.
물리적 장애물도 물론 있지만,
사실은 '사람, 재물, 권세, 세상적인 쾌락' 같은 것에 마음을 뺏기는 심리적 장애물이 더 많습니다.
그럴 때 우리는 마음을 가다듬고 '주님을 생각'하여야 합니다.(히12:3)
'주님을 생각'하는 것은 아무 노력 없이 저절로 되지 않습니다.
끝없이 목표를 상기할 때 가능합니다.
남보다 빨리 달려 1등 하자는 목표를 가지면 예수님을 잃습니다.
빨리 달리는 것보다 예수 그리스도라는 목표가 중요합니다.
속도보다 방향이 더 중요한 것입니다.
+ 주님, 인생의 마라톤을 꾸준히 뛰어 완주하게 하소서. 아멘.
징계는 사랑 (2018년 9월 11일 화요일)
믿음의 길을 간다는 것은 마치 경주를 하는 것과 같습니다.(히12:1)
한순간 믿으면, 그리고 한 번의 고백이면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의 길은 우리 앞에 놓여있는 삶의 자리와 세상의 유혹을 극복하며 끝까지 싸워나가는 과정을 가리킵니다. 그 길고 지난한 과정을 겪는 동안 "믿음의 창시자요 완성자"인 예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히12:3, 새번역)
오늘 본문에서 우리는 ‘징계’의 의미 두 가지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첫째, 징계는 목적이 아니라 과정입니다.
우리가 징계받을 때에 피곤하거나 낙심하지 않으려면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면서 십자가를 참아낸 예수님을 기억하고 바라보며
징계의 목적을 되새겨야 하겠습니다.(히12:10)
둘째, 징계는 사랑하는 자에게 주어지는 특권 같은 것입니다.
징계를 통해 인간은 성장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지금 우리가 징계받는 고난의 터널을 통과하고 있다면,
이것을 하나님의 은혜요 사랑으로 깊이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는 피곤한 손과 연약한 무릎을 일으켜 세워야 합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징계, 세상으로부터 오는 고난 속에서 믿음을 가지고 성장과 성숙을 도모하여야 합니다.
+ 주님, 현재의 고난과 상황을, 나의 성장을 도모하는 기회로 여기게 하소서. 아멘.
1 ‘예수를 바라보라’는 권면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습니까?
5 믿음의 경주를 인내함으로써 경험하는 연단(징계)는 무엇입니까?
1 하나님께서 때로 그분의 자녀들을 징계하시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5 내게 하나님께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습관적인 죄가 있나요?
이 죄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주신 소망을 따라 인내하게 해주십시오.
우리가 가진 소망의 이유를 묻는 사람들에게 온유하고 담대하게 답하게 해주십시오.
사랑의 하나님,
저는 비록 약하지만 이미 승리하신 예수님께서 함께하시면 얼마든지 죄와 싸워 이길 수 있음을 믿습니다.
오직 예수님만 바라보며 믿음의 경주를 하게 해주세요.
우리가 어디에 있든지 날마다 주님을 생각하는 복 있는 사람이 되게 하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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