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시로 세워진 육체의 예법과 땅에 지어진 성막 2014년 5월 17일 토요일
히브리서 9:1~9:10
1 첫 언약에도 섬기는 예법과 세상에 속한 성소가 있더라
2 예비한 첫 장막이 있고 그 안에 등잔대와 상과 진설병이 있으니 이는 성소라 일컫고
3 또 둘째 휘장 뒤에 있는 장막을 지성소라 일컫나니
4 금 향로와 사면을 금으로 싼 언약궤가 있고
그 안에 만나를 담은 금 항아리와 아론의 싹 난 지팡이와 언약의 돌판들이 있고
5 그 위에 속죄소를 덮는 영광의 그룹들이 있으니 이것들에 관하여는 이제 낱낱이 말할 수 없노라
6 이 모든 것을 이같이 예비하였으니 제사장들이 항상 첫 장막에 들어가 섬기는 예식을 행하고
7 오직 둘째 장막은 대제사장이 홀로 일 년에 한 번 들어가되
자기와 백성의 허물을 위하여 드리는 피 없이는 아니하나니
8 성령이 이로써 보이신 것은
첫 장막이 서 있을 동안에는 성소에 들어가는 길이 아직 나타나지 아니한 것이라
9 이 장막은 현재까지의 비유니
이에 따라 드리는 예물과 제사는 섬기는 자를 그 양심상 온전하게 할 수 없나니
10 이런 것은 먹고 마시는 것과 여러 가지 씻는 것과 함께 육체의 예법일 뿐이며
개혁할 때까지 맡겨 둔 것이니라
성경 길라잡이
세상에 속한 성소(1절): 세상에 속했다는 것은 성소가 지상에 있다는 것을 말한다.
24절에 나오는 ‘손으로 만든 성소’와 동일한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이 성소는 일시적이며 불완전한 것이다.
둘째 휘장(3절): ‘성소’와 ‘지성소’ 사이를 구분하는 휘장을 가리킨다.
이것들에 관하여는 이제 낱낱이 말할 수 없노라(5절):
이 단락의 목적이 성막의 구성물을 자세하게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밝히는 대목이다.
꼭 필요한 부분(둘째 휘장으로 나뉜 성소)만 언급하고 화제를 전환하고 있다.
첫째 장막과 둘째 장막의 구분이 첫 언약과 새 언약의 가장 두드러진 차이점으로 나타난다.
성령이 이로써 보이신 것은 첫 장막이 서 있을 동안에는 성소에 들어가는 길이 아직 나타나지 아니한 것이라
(8절): 첫 장막은 2절과 6절에 따르면 ‘성소’를 가리킨다. 그리고 여기서 성소는
‘지성소’가 의미하는 하나님께서 임재하시는 참 장막(8장 2절)을 가로막는 역할을 하고 있다.
따라서 ‘성소’의 존재가
진정으로 하나님과 만나는 장소인 지성소로 들어가는 것을 제한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첫 언약에는 예배자와 하나님 사이에 장애물이 있었고, 그 때문에 한계가 있었다.
현재까지 비유니(9절): 장막은 예수님의 완전한 구속 사역을 상징한다.
그리고 현재까지란 말은 ‘지금까지’란 말로 구약의 성막과 예수님의 구속 사역을 대조한다.
즉 성막은 자유롭게 나아갈 수 없지만 예수님의 구속 사역은 하나님께 자유롭게 나아갈 수 있는 길을 열었다.
임시로 세워진 육체의 예법과 땅에 지어진 성막 2014년 5월 17일 토요일
첫 언약으로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장막(성소와 지성소)이 지어졌고,
죄를 속하고 하나님과 교제하기 위한 방법들이 계시되었습니다.
하지만 이것들은 ‘현재까지의 비유’에 불과합니다(9장 9절).
장막은 육체는 깨끗하게 하지만 양심을 온전케 하지 못했고,
휘장 뒤편 지성소에는 대속죄일에 대제사장만 홀로 출입할 수 있었습니다.
첫 언약 아래에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과 직접 만나는 것이 불가능했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coram Deo)”라는 구호를 즐겨 사용합니다.
모든 순간에 하나님을 인식하고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소망하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이 구호의 근본적인 의미는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죄 짓는 본성을 인식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거룩하신 하나님을 깊이 의식할 때마다 우리 안에 있는 깊은 죄를 마주합니다.
건널 수 없는 강이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놓여있는 것 같은 현실이 우리를 절망에 빠뜨립니다.
이런 의식은 우리로 하여금 가난한 마음을 갖게 합니다.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만을 소망하게 됩니다. 우리를 겸손하게 합니다.
또한 우리는 겸손하게 하나님 앞에서 종교적인 활동들을 행합니다.
그런 활동들은 분명 우리가 가진 신앙이 만들어낸 양식입니다.
주일 예배에 참석하고, 교회와 사회에서 봉사하고,
개인 경건을 유지하기 위해 말씀을 묵상하고 기도하는 생활을 합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인들에게 당연한 일들처럼 보입니다.
그렇지만 이것들이 우리들의 양심을 온전케 하지는 못합니다.
종교적인 활동과 삶의 양식이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놓인 죄의 강을 가로지르는 다리가 되지 못합니다.
먼저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새롭게 거듭나는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하겠습니다.
하나님과 교제케 하시는 예수님 2014년 5월 17일 토요일
히브리서 기자는 손으로 만든 성소에 대해 언급합니다.
‘첫 장막’이라 불리는 ‘성소’ 안에는 등잔대와 상, 진설병이 있고(2절),
‘둘째 휘장 뒤에 있는 장막’이라 불리는 ‘지성소’ 안에는 금향로와 사면을 금으로 싼 언약궤가 있습니다(3-4절).
이러한 성소를 통하여 우리는 완전한 구속을 이루신 예수님을 보아야 합니다.
세상에 속한 성소(1절)는 일시적이고 불완전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완전하신 분입니다.
예수님께서 모든 율법의 요구를 이루셨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성소를 볼 때마다 우리는 구원을 주신 예수님께 감사하며 나아가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이유는 우리와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구약의 예물과 제사로는 우리와 하나님과의 관계를 온전하게 회복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오직 예수님께 나아가는 것뿐입니다.
하나님께서도 우리 이상으로 우리와 온전한 관계를 맺으시기 원하십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며 그분과 교제하는 삶보다 큰 복은 없음을 알고
오늘 하루도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해가기를 바랍니다.
묵상질문
1 본문에 제시된 성막의 구조적 특징은 무엇입니까?
5 섬기는 첫 언약의 예법이 가진 한계는 무엇입니까?
1 예수님의 피가 효력이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5 하나님과 온전한 교제를 누리지 못할 때의 나의 삶은 어떠했나요?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기도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으로 거듭나는 청년들이 늘어나게 해주십시오.
종교적인 행동이 주는 안정감을 추구하지 않고,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는 자들 되게 해주십시오.
예수님을 통하여 나를 구원하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날마다 하나님과 아름다운 교제를 누리며 살게 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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