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도행전]

[62]죽을 것도 각오하였노라 (행 21:1~14) (CBS)

colorprom 2017. 3. 15. 14:07

죽을 것도 각오하였노라 2017년 3월 15일 수요일



사도행전 21:1~21:14           


1 우리가 그들을 작별하고 배를 타고 바로 고스로 가서 이튿날 로도에 이르러 거기서부터 바다라로 가서

2 베니게로 건너가는 배를 만나서 타고 가다가

3 구브로를 바라보고 이를 왼편에 두고 수리아로 항해하여 두로에서 상륙하니

거기서 배의 짐을 풀려 함이러라


4 제자들을 찾아 거기서 이레를 머물더니

그 제자들이 성령의 감동으로 바울더러 예루살렘에 들어가지 말라 하더라


5 이 여러 날을 지낸 후 우리가 떠나갈새 그들이 다 그 처자와 함께 성문 밖까지 전송하거늘

우리가 바닷가에서 무릎을 꿇어 기도하고

6 서로 작별한 후 우리는 배에 오르고 그들은 집으로 돌아가니라


7 두로를 떠나 항해를 다 마치고 돌레마이에 이르러 형제들에게 안부를 묻고 그들과 함께 하루를 있다가

8 이튿날 떠나 가이사랴에 이르러 일곱 집사 중 하나인 전도자 빌립의 집에 들어가서 머무르니라

9 그에게 딸 넷이 있으니 처녀로 예언하는 자라


10 여러 날 머물러 있더니 아가보라 하는 한 선지자가 유대로부터 내려와

11 우리에게 와서 바울의 띠를 가져다가 자기 수족을 잡아매고 말하기를 성령이 말씀하시되

예루살렘에서 유대인들이 이같이 이 띠 임자를 결박하여 이방인의 손에 넘겨 주리라 하거늘

12 우리가 그 말을 듣고 그 곳 사람들과 더불어 바울에게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지 말라 권하니


13 바울이 대답하되 여러분이 어찌하여 울어 내 마음을 상하게 하였느냐

나는 주 예수의 이름을 위하여 결박 당할 뿐 아니라 예루살렘에서 죽을 것도 각오하였노라 하니

14 그가 권함을 받지 아니하므로 우리가 주의 뜻대로 이루어지이다 하고 그쳤노라



성경 길라잡이


무릎을 꿇어 기도하고(5절): 일반적으로 서서 기도하는 것이 당시의 관습이었으므로,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것은 이 기도의 엄중함과 신실함을 보여준다.(20장 36절)

일곱 집사 중 하나인 전도자 빌립(8절):

일곱 집사 중의 한 사람으로 선택된(6장 5절) 빌립전도자로 소개된다.

전도자는 바울서신에서 은사 중의 하나로 언급된다(엡 4장 11절).

디모데후서에서 바울은 디모데는 전도자의 임무(딤후 4장 5절)를 다하라고 권면한다.

(그러므로) 성령이 말씀하시되(11절):

한글 번역에 생략된 ‘그러므로’와 함께 이 어구는 아가보의 예언에 무게를 더한다.

올라가지 말라 권하니(12절): 바울에게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지 말라고 그들은 눈물로(13절) 권하고 있다.

‘권하다’는 동사는 지속적인 성격을 드러내는 시제로 사용되어

그들이 지속적으로 간절하게 바울에게 권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죽을 것도 각오하였노라 2017년 3월 15일 수요일


1절부터 6절은 밀레도에서 떠나 두로까지의 방문을 간략하게 언급합니다.

성령님께서는 두로에서 제자들을 통해 바울예루살렘에서 당할 위험을 경고합니다.

바울은 두로를 떠나 돌레마이에서 형제들을 방문하고 하루를 묵은 후 가이사랴에 이릅니다.

바울은 가이사랴에서 빌립의 집에 머무릅니다.

그때 유대에서 내려온 선지자 아가보 또한 바울에게 예루살렘에서 당할 위험을 경고합니다.


바울은 이들의 권고에 자신은 주 예수의 이름을 위한 결박과 죽음을 각오하고 있다고 대답합니다.

그의 헌신은 주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14절).

리의 하나님 나라를 향한 헌신은 주님의 뜻을 이루는 것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혹시 우리는 욕망과 교만을 가득 안고 명예와 헛된 영광을 추구하며 제자인 척 하고 있지 않습니까?


죽을 것도 각오하였노라 2015년 8월 11일 화요일



사도 바울 일행이 항해를 마친 후, 육로로 예루살렘에 가까운 가이사랴에 도착했습니다.

빌립 집사의 집에 있을 때, 아가보라는 선지자가 찾아오더니,

바울의 띠를 가져다가 자기 팔다리를 동여맸습니다.

그러고는 예루살렘에서 띠 임자가 붙잡히리라 예언합니다.(11절)

 

그러자 신자들이 바울에게 예루살렘에 가지 말라 강권합니다.

이때 바울이 말합니다.

"나는 주 예수의 이름을 위하여 결박당할 뿐 아니라 예루살렘에서 죽을 것도 각오하였노라."(13절)

이에 신자들은, 사도 바울의 예루살렘행을 주님의 뜻으로 받아들이게 됩니다.


몇 해 전, 동남아시아의 이슬람 강세지역에서 선교사들을 강제추방했습니다.

이들 중 몇 사람이 대도시 안전가옥에 머물러있다가 거기를 방문한 후원자들과 만났습니다.

모두들 다시 안전해질 때까지 지켜보자는 의견을 주고받았습니다.

 

그때 나이오십이 넘도록 원주민을 위해 독신으로 사역한 한 여성선교사가 말했습니다.

"저는 떠나온 게 아닙니다. 꼭 필요한 의약품이 있어 가지러 온 것뿐입니다.

저는 오래 전 에 그들을 위해 주님을 전하는 이 일과 결혼했습니다."

이튿날 그녀는 박해의 현장으로 되돌아갔습니다.


어리석은 일 같지요? 이 여성선교사도, 사도 바울도, 어리석기 짝이 없는 사람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 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눅 10: 21)


주의 뜻대로 이루어지리이다 (2018년 6월 22일 금요일) (행 21:8~16)


15이 여러 날 후에 여장을 꾸려 예루살렘으로 올라갈새

16가이사랴의 몇 제자가 함께 가며 한 오랜 제자 구브로 사람 나손을 데리고 가니

이는 우리가 그의 집에 머물려 함이라


사도 바울 제3차 전도여행을 마치고 이스라엘의 가이사랴에 도착했을 때입니다.

빌립 집사의 집에 며칠간 머물게 되었는데 선지자 아가보가 와서 바울의 허리띠를 가져가더니

그것으로 자기 손과 발을 묶고서 예언을 합니다.

"유대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이 허리띠 임자를 이와 같이 묶어서 이방 사람의 손에 넘겨줄 것이라고,

성령이 말씀하십니다."(행21:11, 새번역)
그러자 믿음의 형제들이 바울에게 예루살렘에 올라가지 말라고 눈물로 애원합니다.

이에 대해 바울은 말합니다.

"왜들 이렇게 울면서 내 마음을 아프게 하십니까?

나는 주 예수의 이름을 위해서, 예루살렘에서 결박을 당할 것뿐만이 아니라,

죽을 것까지도 각오하고 있습니다."(행21:13, 새번역)

그러자 이들은 더 이상 권하지 않고, "주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빕니다"라고 말했습니다.(행21:14, 새번역)


처음에 사람들의 마음은 "주님의 뜻"과는 좀 달랐습니다. 사도 바울을 말렸습니다.
그러나 마침내 "주님의 뜻"을 따라 마음을 바꾸었습니다.


우리는 어떠합니까?

우리는 "주님의 뜻"을 따르다 내가 죽을 수도 있음을 알게 되었다면

주님의 뜻을 따라 마음을 바꿀 수 있습니까?

내 이름이 드높아지고, 내가 잘 되는 것을 주님의 뜻으로 ‘내 맘대로’ 생각하고 싶어하는 것은 아닙니까?


사도 바울을 본받읍시다.

마음을 바꾸었던 사도 바울 곁의 사람들을 본받읍시다.


+ 주님, 사도 바울과 같은 각오를 우리도 할 수 있게 우리의 마음을 붙잡아주소서. 아멘.


묵상질문


1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께서 무엇을 가르치시거나 명하시나요?

5 오늘 본문과 함께 고후 9장 21~30절 말씀을 묵상해봅시다.

3 우리 교회는 오늘 말씀에 어떻게 순종할 수 있을까요?


기도


오늘 묵상한 것에서 기도제목을 찾고, 한 줄 기도문을 작성하여 기도합시다.

각종 결박과 죽음을 감수하겠다는 마음, 우리도 가질 수 있도록 성령께서 함께하여주소서. 아멘.


 고후 9:21~30 (?)  고전 9:21~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