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도행전]

[10]그리스도, 우리의 유일한 권세 (행 4:1~12) (CBS)

colorprom 2017. 1. 12. 16:57

그리스도, 우리의 유일한 권세 2017년 1월 13일 금요일


사도행전 4:1~4:12           


1 사도들이 백성에게 말할 때에 제사장들과 성전 맡은 자와 사두개인들이 이르러

2 예수 안에 죽은 자의 부활이 있다고 백성을 가르치고 전함을 싫어하여

3 그들을 잡으매 날이 이미 저물었으므로 이튿날까지 가두었으나

4 말씀을 들은 사람 중에 믿는 자가 많으니 남자의 수가 약 오천이나 되었더라


5 이튿날 관리들과 장로들과 서기관들이 예루살렘에 모였는데

6 대제사장 안나스가야바요한알렉산더와 및 대제사장의 문중이 다 참여하여

7 사도들을 가운데 세우고 묻되 너희가 무슨 권세와 누구의 이름으로 이 일을 행하였느냐


8 이에 베드로가 성령이 충만하여 이르되 백성의 관리들과 장로들아

9 만일 병자에게 행한 착한 일에 대하여 이 사람이 어떻게 구원을 받았느냐고 오늘 우리에게 질문한다면

10 너희와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은 알라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고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이 사람이 건강하게 되어 너희 앞에 섰느니라

11 이 예수는 너희 건축자들의 버린 돌로서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느니라

12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하였더라



성경 길라잡이


백성을 가르치고 전함을 싫어하며(2절):

사두개인들은 갈릴리 출신의 제자들을 비천하다고 여겼다.

그런 그들이 자신들을 가르친다는 사실을 불쾌해했다.

또한 죽은 자의 부활을 부정했던 사두개인들의 입장(눅20장 27절)에서는

예수님의 부활을 도저히 인정할 수 없었다.

너희가 무슨 권세와(7절):

5절부터 6절까지에는 당시 예루살렘 성전을 기반으로 권세를 부리던 이들의 이름이 상세하게 등장한다.

유대교의 관점에서는 대제사장보다 더 높은 권위는 없었다.

이들은 자신의 권세로 제자들과 그들의 가르침을 제어할 수 있다고 믿었다.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12절): 스스로 권세가 있다고 주장하는 당대의 종교지도자들 앞에서

제자들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께서 유일한 권세이시라 주장한다.

베드로는 10절에서 하나님께서 당대의 종교지도자들이 아닌 예수 그리스도를 권세로 세우셨다고 주장한다. 누군가가 그리스도인이라는 가장 중요한 표지는 누구를 유일한 권세자로 여기는가 하는 것이다.



그리스도, 우리의 유일한 권세 2017년 1월 13일 금요일


사도행전 4장은 예루살렘교회의 시작과 더불어 발생한 첫째 박해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박해의 가장 중요한 논쟁점은 누구에게 권세가 있는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성전을 기반으로 한 종교 지도자들은 제자들 앞에서 자신들이야말로 권세의 주인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그 권세를 거짓이라고 선언하며,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신들과 이 세상의 유일한 권세이시라고 고백합니다.


이후 이 논쟁은 교회사의 중요한 시점마다 반복적으로 등장합니다.

교황과 황제의 권세 앞에서 루터성경과 그리스도의 권세를 고백했고,

일본 제국주의의 권세 앞에서 신사참배를 거부한 이들은 그리스도의 권세를 고백했습니다.


세상이 스스로 권세를 주장할 때마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께 행하신 일을 기억합니다.

세상이 죽인 그리스도를 하나님께서 살리셨습니다.



이정표 (2019년 9월 30일 월요일)


사건의 발단은 "나면서 못 걷게 된 이"를 고쳐준 일이었습니다.(행3:2)

베드로는 무려 40년의 절망을 말씀 한 마디로, 한순간에 일으켜 세웠습니다.

본인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민심은 순식간에 베드로에게 집중됐습니다.


종교권력층들이 가만있을 리 만무합니다.

그들은 나름 자신만만했습니다. 베드로의 과거에 대한 정보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알고 있던 베드로는, 권력이 무서워 스승마저 부인했던 겁쟁이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치명적 과오는 베드로의 변화에 무지했다는 겁니다.

베드로는 더이상 과거의 베드로가 아니었습니다.


성경은, 베드로의 변화의 이유에 대하여 조금도 주저하지 않습니다.

“이에 베드로가 성령이 충만하여 이르되.”(행4:8) '성령충만'이 변화의 이유, 변화의 근거입니다.
성령충만한 사람은 담대합니다.

성령충만한 사람은 언제나 본질에 충실하고 집중합니다.

담대함의 근거, 진정한 용기의 출처, 모두 ‘본질집중(!)’에 있습니다.
성령충만한 베드로는, 그러므로 더 이상 이정표와 목적지를 혼동하지 않습니다.
권력층들의 협박에 가까운 질문에도, 어떤 유혹의 미끼에도 흔들리지 않습니다.
주저하거나 망설이지도 않습니다.

그에겐 언제나 본질에 대한 답이 준비돼있습니다.

"(오직)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행4:10)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본질이요, 목적지입니다.

목적지에 가려면 이정표가 중요하지만, 이정표는 목적지가 아닙니다.

이정표의 사명은 목적지를 선명히 가리키는 것입니다.

베드로가 곧 이정표였습니다.


+ 주님, 우리도 베드로처럼 목적지에 집중하게 하소서. 아멘.




묵상질문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께서 무엇을 가르치시거나 명하십니까?            

오늘 말씀과 함께 골로세서 1장 15~18절, 요한계시록 1장13~20절 말씀을 묵상해봅시다.            

우리 교회는 오늘 말씀에 어떻게 순종할 수 있을까요?


기도


오늘 묵상한 것에서 기도제목을 찾고, 한 줄 기도문을 작성하여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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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 1:15~18

계 1:13~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