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로마]

[30]공동체의 하나 됨은 획일화가 아니라 조화입니다 (롬 14:1~12) (CBS)

colorprom 2016. 12. 18. 15:35

공동체의 하나 됨은 획일화가 아니라 조화입니다 2013년 7월 6일 토요일



로마서 14:1~14:12           


1 믿음이 연약한 자를 너희가 받되 그의 의견을 비판하지 말라

2 어떤 사람은 모든 것을 먹을 만한 믿음이 있고 믿음이 연약한 자는 채소만 먹느니라

3 먹는 자는 먹지 않는 자를 업신여기지 말고 먹지 않는 자는 먹는 자를 비판하지 말라

이는 하나님이 그를 받으셨음이라


4 남의 하인을 비판하는 너는 누구냐

그가 서 있는 것이나 넘어지는 것이 자기 주인에게 있으매 그가 세움을 받으리니

이는 그를 세우시는 권능이 주께 있음이라


5 어떤 사람은 이 날을 저 날보다 낫게 여기고 어떤 사람은 모든 날을 같게 여기나니

각각 자기 마음으로 확정할지니라


6 날을 중히 여기는 자도 주를 위하여 중히 여기고 먹는 자도 주를 위하여 먹으니 이는 하나님께 감사함이요 먹지 않는 자도 주를 위하여 먹지 아니하며 하나님께 감사하느니라


7 우리 중에 누구든지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고 자기를 위하여 죽는 자도 없도다

8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

9 이를 위하여 그리스도께서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셨으니 곧 죽은 자와 산 자의 주가 되려 하심이라


10 네가 어찌하여 네 형제를 비판하느냐 어찌하여 네 형제를 업신여기느냐

우리가 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리라

11 기록되었으되

주께서 이르시되 내가 살았노니 모든 무릎이 내게 꿇을 것이요 모든 혀가 하나님께 자백하리라 하였느니라

12 이러므로 우리 각 사람이 자기 일을 하나님께 직고하리라



성경 길라잡이


믿음이 연약한 자(1절): 이 본문의 ‘믿음이 연약한 자’를

15장 1절에 나오는 ‘믿음이 강한’ 그리스도인보다 더 부족한 그리스도인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하기보다는, 믿음이 강한 자들이 자유롭게 행하는 것을 할 수 없다고 여기는 사람으로 해석하는 게 더 맞다.

어떤 특정한 행위를 하거나 하지 않는 것으로 믿음의 확신 여부를 결정하는 것은 옳지 않다.


믿음이 연약한 자는 아직 절기와 먹는 규례를 중요시하고 그것을 믿음의 기준으로 삶는

유대인 그리스도인으로 보아야 한다.


어떤 사람은……먹느니라(2절), 어떤 사람은……확정할지니라(5절):

바울 사도는 믿음이 연약한 자와 강한 자를 채소만 먹는 것과 고기와 포도주를 함께 먹고 마시는 것,

어느 특정한 날을 거룩하게 여기는 것과 모든 날을 거룩하게 여기는 것에 따라 구분하고 있다.

로마서의 전체적인 흐름을 볼 때,

믿음이 연약한 자는 주로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을 가리키고,

믿음이 강한 자는 주로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자기를 위하여(7절): 자기 자신의 배경과 문화, 소망을 그대로 지속하는 것이다.

이것 자체는 틀린 것이 아닐 수 있지만, 그리스도인들은 모든 것이 주를 위한 기준으로 변화되어야 한다.

죽은 자와 산 자의 주가 되려 하심이라(9절): 바울은 그리스도가 ‘주’가 되심을 고백한다.

이 단어는 온 우주의 주인이신 구약의 야훼에게만 붙여지는 이름이라는 것에 주목하라.


공동체의 하나 됨은 획일화가 아니라 조화입니다 2013년 7월 6일 토요일


교회가 종종 비본질적인 문제(아디아포라)로 말미암아 심각한 갈등을 겪거나 분열에 이르는 것을 봅니다.

믿음 안에서 연약한 자나 강한 자나,

서로의 입장이나 행동에 대해 신학적으로 논쟁하거나 비판하는 일은 지양해야 합니다.

신학적으로 시비 걸기는

사나 죽으나 오직 주의 영광을 추구해야 하는 우리가 취할 삶의 태도가 될 수 없는 까닭입니다.

모든 판단은 하나님께서 하실 것입니다.

사귐과 하나 됨을 무너뜨리는 일은 이제 멈추십시오.

신학의 이름으로 다른 이들을 비판하고, 논쟁하고, 정죄하고, 편 가르기 하는 일은

아주 신중하면서도 조심스럽게 이루어져야 합니다.

사랑 없는 신학적 논쟁이나 교리적 판단은

하나님의 은혜가 자리해야 할 사람들의 마음과 일상을 얼어붙게 만듭니다.

신학이나 교리나 전통은 어떤 경우에도 사람을 살리는데 사용되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것들은 위선적 신앙의 도구가 되고 맙니다.


공동체 안에서 믿음이 연약한 자와 강한 자 사이에 넘지 못할 이해의 벽이 존재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이지만, 그것이 실현되는 삶의 자리가 다양한 만큼 신앙적 표현도 다양할 수 있습니다.


믿음의 색깔이 다양하다고 해서 조화를 이루지 못하거나 하나 되지 못할 이유가 없습니다.

모든 그리스도인은 오직 주를 위해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는 존재인 까닭입니다.

신앙의 다양한 표현이 허락되지 않는다면,

강제로 확일화된 왜곡된 신앙이 자리하면서 수많은 분파로 갈라서게 될 것입니다.

사실 이것이 오늘 한국교회의 슬픈 자화상이기도 하지요.


기억하십시오. 중요한 것은,

모든 그리스도인이 추구해야 하는 것은 오직 주님의 영광이고,

그것은 일상 속에서 사랑의 마음으로 행해져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사나 죽으나 우리 모두가 주님의 것임을 깊이 성찰하는 하루가 되십시오.


연약한 자를 받으라 (2017년 10월 19일 목요일)


오늘 본문에서 바울이 사용하고 있는 언어는 심판의 언어입니다.

로마교회 성도들 안에 믿음이 ‘연약한 자’들을 정죄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의롭게 된 자들을 다시 심판의 자리에 세우는 것과 같습니다.

바울은 ‘믿음이 연약한 자’들을 받으라고 권면합니다.

‘믿음이 연약한 자’들은 보수적인 유대인 그리스도인들로 여겨지는데

그들은 아마도 절기와 먹는 것으로 자신의 믿음을 드러내려고 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삶과 죽음의 목표주를 기쁘시게 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주이시며 그분께서 심판자가 되시기 때문에

우리가 함부로 주께서 피를 흘려 사신 다른 그리스도인들을 정죄해서는 안 된다고 가르칩니다.


묵상질문


믿음이 연약한 자나 강한 자나 서로를 향해 비판하지 말아야 할 이유는 어디에 있습니까?      

그리스도인의 행동의 동기는 무엇이어야 합니까?


기도

신학적 견해나 교리적 이해보다는 사랑으로 다른 지체와의 사귐과 하나 됨을 이루어가게 하소서.
어떤 경우에도 주께 속해있음을 드러내는 나의 행동과 삶이 되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