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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뒤바뀌었던 것은 또 뒤바뀔 수 있습니다 (롬 11:13~24) (CBS)

colorprom 2016. 12. 17. 16:13

뒤바뀌었던 것은 또 뒤바뀔 수 있습니다 2013년 6월 29일 토요일


로마서 11:13~11:24           


13 내가 이방인인 너희에게 말하노라 내가 이방인의 사도인 만큼 내 직분을 영광스럽게 여기노니

14 이는 혹 내 골육을 아무쪼록 시기하게 하여 그들 중에서 얼마를 구원하려 함이라

15 그들을 버리는 것이 세상의 화목이 되거든

그 받아들이는 것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것이 아니면 무엇이리요


16 제사하는 처음 익은 곡식 가루가 거룩한즉 떡덩이도 그러하고 뿌리가 거룩한즉 가지도 그러하니라

17 또한 가지 얼마가 꺾이었는데

돌감람나무인 네가 그들 중에 접붙임이 되어 참감람나무 뿌리의 진액을 함께 받는 자가 되었은즉

18 그 가지들을 향하여 자랑하지 말라

자랑할지라도 네가 뿌리를 보전하는 것이 아니요 뿌리가 너를 보전하는 것이니라


19 그러면 네 말이 가지들이 꺾인 것은 나로 접붙임을 받게 하려 함이라 하리니

20 옳도다 그들은 믿지 아니하므로 꺾이고 너는 믿으므로 섰느니라

높은 마음을 품지 말고 도리어 두려워하라

21 하나님이 원 가지들도 아끼지 아니하셨은즉 너도 아끼지 아니하시리라


22 그러므로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준엄하심을 보라

넘어지는 자들에게는 준엄하심이 있으니

너희가 만일 하나님의 인자하심에 머물러 있으면 그 인자가 너희에게 있으리라

그렇지 않으면 너도 찍히는 바 되리라


23 그들도 믿지 아니하는 데 머무르지 아니하면 접붙임을 받으리니

이는 그들을 접붙이실 능력이 하나님께 있음이라


24 네가 원 돌감람나무에서 찍힘을 받고 본성을 거슬러 좋은 감람나무에 접붙임을 받았으니

원 가지인 이 사람들이야 얼마나 더 자기 감람나무에 접붙이심을 받으랴



성경 길라잡이


제사하는 처음 익은 곡식 가루가 거룩한즉 떡덩이도 그러하고 뿌리가 거룩한즉 가지도 그러하니라(16절):

‘제사하는 처음 익은 곡식 가루’와 ‘뿌리’는 이스라엘의 믿음의 조상들을 가리키고,

‘떡덩이’와 ‘가지’는 조상들로부터 바울 당시로까지 이어진 이스라엘 전체를 가리킨다.

이것은 이스라엘 민족의 시작과 결과, 이스라엘 민족을 대표하는 상징들과 일반적인 이스라엘 민족 전체를

각각 연결하고 있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또한 믿음의 조상들을 통해 이스라엘을 선택하신 하나님의 신실하심에는 변함이 없음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모든 이스라엘이 구원을 얻게 될 것임을 의미한다고는 할 수 없다.


뒤바뀌었던 것은 또 뒤바뀔 수 있습니다 2013년 6월 29일 토요일


바울사도는 이방인 그리스도인을 향해 자기중심적인 착각에 빠지는 것은 위험하다고 경고합니다.

그들은 이스라엘의 뿌리에 의존하고 있고,

또 교만에 빠지면 언제든 이스라엘처럼 버림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방인 그리스도인을 향한 바울사도의 경고는,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 오늘 우리를 향한 것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준엄하심을 기억하며, 부르심에 합당한 삶의 모습과 분위기를 지켜 가야 하겠습니다.

바울사도는 비록 자신이 이방인의 사도로 부름 받았다고 말했을지라도,

동족 이스라엘의 회복에 대한 소망의 끈을 결코 놓지 않았습니다.

죽은 자를 살리실 수 있는 하나님의 능력소망의 근거라고 밝힙니다.

비록 지금 이스라엘이 십자가에 나타난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이해하지 못하고 거절하였지만,

결국은 하나님께서 그들을 구원으로 회복시키실 터입니다.

그 유일한 길은 오직 믿음밖에 없습니다.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이 지금 가진 믿음으로부터 멀어져 교만에 빠진다면

이스라엘처럼 꺾이게 될 것이라는 경고는, 곧 오늘 우리를 향한 것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영적 불모지였던 한반도에 복음을 전해 준 서구 사회가

오히려 선교 대상으로 뒤바뀐 현실을 자주 들어왔습니다.

그러나 최근 이렇게 뒤바뀐 상태가 영원히 지속되지는 않을 수 있다고 생각하게 하는

이 땅의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의 모습을 자주 봅니다.

서구 사회의 현실을 보고, 우리는 의기양양하여 뽐내기보다는 하나님 앞에서 두려워했어야 했습니다.

지난 몇 년, 아니 몇 개월 사이에 들려오는 안타까운 소식들은

이 땅의 교회들이 부르심에 합당한 모습을 상실했다는 증거들인 까닭입니다.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준엄하심을 보라”라는 바울사도의 경고의 외침을 기억하는 삶이 되십시오.


+ 이 땅의 교회가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입었다고 해서 교만해지는 위험으로부터 속히 벗어나게 하소서.
+ 언제나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준엄하심을 기억하며 겸손하게 살게 하소서.


본성을 거슬러 (2017년 9월 5일 화요일) (롬 11:18~24)


언젠가 천리향 꽃 핀 것이 예뻐서 다시 꽃을 보고자 꽃을 잘라주었습니다.

그런데 잘못 잘랐는지 가지가 말라가는 것입니다.

나뭇가지가 말라가기에, 어디서부터 말라가는지 보았더니 뿌리에서 먼 곳에서부터 말라갔습니다.

그 모습을 보고 놀라운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할 수만 있다면 뿌리에 가까이 자리잡는 자가 되어야겠구나,'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께 더 가까울까요? 꼭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께 가까이 있으려 노력하는 사람이 하나님께 가까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 가까이 있으려면 나의 인간적 본성을 최대한 거슬러올라가야 합니다.


나의 본성은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마음이며,(렘17:9) 인간적인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것입니다.(창6:5)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롬12:2) 본성을 거슬러올라가야 하나님께 가까이 있을 수 있습니다.


세례 요한, 그리고 수많은 예언자들은 인간의 본성을 거스르려 노력했던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불의한 세상을 역행하여 이른바 '믿음의 야인'으로 살고자 했습니다.

무조건 세상을 비판하고 세상 탓을 하며 세상에 불평을 쏟아붓는게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따라 세상을 반대하며 세상을 거스르는 자, 그것이 하나님께 가까운 사람들의 특징입니다.


우리가 오늘 그렇게 살아갑시다.

대단히 멋진 삶을 살아가라는 권면이 아닙니다. 다만 말라죽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 하나님! 나의 본성을 거슬러 두려운 마음으로 구원을 이루는 내가 되게 하소서. 아멘.


묵상질문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을 향해 바울사도가 던지는 경고의 내용은 무엇입니까?

바울사도가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준엄하심을 보라”라고 말한 의도는 어디에 있습니까?


기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