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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교회는 믿음의 발자취만을 따라야 합니다 (롬 4:1~12) (CBS)

colorprom 2016. 12. 13. 14:11

교회는 믿음의 발자취만을 따라야 합니다 2013년 6월 11일 화요일


로마서 4:1~4:12           


1 그런즉 육신으로 우리 조상인 아브라함이 무엇을 얻었다하리요

2 만일 아브라함이 행위로써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면 자랑할 것이 있으려니와 하나님 앞에서는 없느니라

3 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냐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진 바 되었느니라

4 일하는 자에게는 그 삯이 은혜로 여겨지지 아니하고 보수로 여겨지거니와

5 일을 아니할지라도 경건하지 아니한 자를 의롭다 하시는 이를 믿는 자에게는 그의 믿음을 의로 여기시나니

6 일한 것이 없이 하나님께 의로 여기심을 받는 사람의 복에 대하여 다윗이 말한 바


7 불법이 사함을 받고 죄가 가리어짐을 받는 사람들은 복이 있고

8 주께서 그 죄를 인정하지 아니하실 사람은 복이 있도다

9 그런즉 이 복이 할례자에게냐 혹은 무할례자에게도냐

무릇 우리가 말하기를 아브라함에게는 그 믿음이 의로 여겨졌다 하노라


10 그런즉 그것이 어떻게 여겨졌느냐 할례시냐 무할례시냐 할례시가 아니요 무할례시니라

11 그가 할례의 표를 받은 것은 무할례시에 믿음으로 된 의를 인친 것이니

이는 무할례자로서 믿는 모든 자의 조상이 되어 그들도 의로 여기심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12 또한 할례자의 조상이 되었나니

곧 할례 받을 자에게뿐 아니라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무할례시에 가졌던 믿음의 자취를 따르는 자들에게도

그러하니라


13 아브라함이나 그 후손에게 세상의 상속자가 되리라고 하신 언약은 율법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요

오직 믿음의 의로 말미암은 것이니라



성경 길라잡이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진 바 되었느니라(2절):

바울사도는 창세기 15장 6절의 인용을 통해 4장 전체의 중심 주제를 다룬다.

창세기에서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향한 칭의 직후 그와 언약을 세우는 의식을 거행하신다.

이로 보건대 ‘의롭다 하심을 받는 것’은 곧 ‘언약에 속한 사람이 되는 것’이라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그가 할례의 표를 받은 것은 무할례시에 믿음으로 된 의를 인친 것이니(11절):

이 진술은 창세기 17장 11절을 염두에 두고 있다.

여기서 바울사도는 ‘할례’를

아브라함이 할례를 받기 전에 믿음으로 의롭게 여겨진 것을 표시하는 하나의 표징으로 해석한다.

그러므로 할례가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고 여겨지는 조건이나 근거가 아님을 알 수 있다.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무할례시에 가졌던 믿음의 자취를 따르는 자들에게도(12절):

이 구절은 유대인으로서 그리스도인이 된 사람들을 가리킨다.


교회는 믿음의 발자취만을 따라야 합니다 2013년 6월 11일 화요일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은 행위로써가 아니라,

경건하지 않은 사람도 의롭다 하시는 하나님을 신뢰하고 믿었기에 의롭다고 인정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 까닭에 그는 하나님 앞에서 눈곱만치도 자랑할 것이 없습니다.

그의 칭의는 할례를 받기 전에 이루어졌고,

그 이후 할례를 받은 까닭에 그는 모든 믿는 사람들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그를 시조로 하는 언약 가족은 오직 믿음에 토대를 두고 있습니다.

거저 얻은 구원에 대한 진정성 있는 감사의 삶을 사는 사람들그리스도인입니다.

이런 사람들이 모인 것이 교회이지요.


톰 라이트는 ‘칭의’를 ‘사람이 언약 가족으로 입양되었다는 하나님의 선고’라고 정의합니다.


아브라함이 언약 가족의 시조이기는 하지만, 그가 이룬 일들 덕에 의롭다 인정받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경건하지 못한 사람을 의롭게 하여 주시는 하나님을 신뢰하고 믿은 것이 그가 행한 전부였습니다.

의롭게 여겨주신 시점도 할례를 받기 이전이었기에, 그는 할례로 특정되는 유대민족만의 조상이 아니라

할례를 받지 않은 모든 이방인 신자들의 조상이기도 합니다.

언약 가족에 속하는 것은 할례와 같은 인증이 아니라 믿음을 근거로 한다는 점이 중요합니다.


오늘날 교회들은 특정한 교리나 종교적 의식에 따라, 혹은 인종에 따라, 혹은 민족에 따라,

혹은 빈부격차에 따라 경계를 짓고 끼리끼리 모이는 것을 당연시 여기는 듯합니다.

믿음을 기초로 하는 새로운 언약 가족을 구성했다고 고백하면서도

바울 시대의 일부 그리스도인들처럼 편을 갈라 차별하니, 참으로 아이러니합니다.


교회의 문을 활짝 열어야 합니다.

그리고 어떠한 차별도 없이 모든 사람들이 들어올 수 있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일하는 자와 믿는 자 2017년 3월 14일 화요일 (롬 4:6~13)


의롭다는 것은 죄가 하나도 없다는 말입니다. 그러니 인간인 우리는 도무지 의로울 수가 없는 존재들입니다. 반면 하나님은 의로우십니다. 하나님께 연결될 때 우리 인간은 의로워질 수 있습니다.


의로움을 우리가 스스로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착각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착각하는 사람들이 주위에 넘쳐납니다.

나 또한 그런 착각의 무리 중 한 명이 되는 적도 참 많습니다.


심지어 그 착각을 기반으로 하여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이,

즉 의로움을 쌓아간다고 착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착각이 착각을 낳은 것이지요.

의로움을 다만 거죽으로 드러나 보이는 ‘의로운 행실’로 단순화해버리는 것이니까요.


사도 바울아브라함이 행위로써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게 아니라,

믿음 때문에 하나님께 의롭게 여겨졌음을 오늘 본문에서 각별히 강조합니다.

아브라함할례의 표가 없을 때에 하나님을 믿었습니다.(롬4:10)

행위가 관건이 아니라, 믿음이 관건이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지금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붙들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하나님 앞에 나아가고자 하는 이들을, 하나님은 의롭다 여겨주시며 받아주실 것입니다.(롬4:13)
의로움은 행위의 결과물이 아니며, 열심히 일한 대가로 주어지는 월급 같은 것도 아닙니다.

인과관계를 따지고 자업자득을 계산하며 보상을 헤아리는 세상의 기준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논리이지요.


오직 믿음 (2018년 1월 8일 월요일)


오늘 요절을 표준새번역 성서로 다시 읽어보겠습니다.

"경건하지 못한 사람을 의롭다고 하시는 분을 믿는 사람은,

비록 아무 공로가 없어도, 그의 믿음이 의롭다고 인정을 받습니다."(롬4:5, 새번역)


오늘 본문 4장 1-12절은, 사도 바울아브라함의 믿음을 예시하면서

오직 믿음으로 그가 하나님의 의와 약속의 은혜를 받게 되었다는 역사적 사실을 설명하고 증거합니다.

사도 바울아브라함이 어떤 행위나 일하여 수고한 보상으로 하나님의 인정이나 합당히 여김을 받은 것이 아님을 '거듭거듭' 증거합니다. 2절, 4절, 5절, 6절…, 반복적으로 강조합니다.


예수님은 "나를 믿는 자는 살겠고"라고 말씀하셨습니다.(요11:25-26)

믿고 구하는 자에게 예수님은 곧바로 낙원을 허락하셨습니다.(눅23:40-43)

이 믿음의 진리를 로마서 4장에서 사도 바울이 발견하였고 깨달았다고 고백하며 증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딤전1:12-17)


그렇습니다. 자신의 하인을 낫게 한 로마 백부장, 열두 해를 혈루증 앓던 여인, 회당장 야이로,

소경 바디매오 등 어느 누구 한 사람,

그들 자신의 공로, 수고, 노력, 헌신의 대가로 예수님의 치유의 은총을 받은 일이 없습니다.

오직 예수님께 나아와 예수님을 믿고 구할 때 그들은 치유받았습니다.


오늘의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믿음 외에 다른 것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을 믿읍시다. 잘 믿읍시다.


+ 나는 아무 것도 아닙니다. 오직 주님 예수님만 믿겠습니다. 아멘.


묵상질문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 하나님 앞에서 자랑할 것이 없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아브라함이 의롭다고 여김을 받게 된 것과 할례와의 관계는 어떻게 됩니까?


기도


값없이 거저 주어진 구원을 항상 기억하며 감사와 순종의 삶을 살게 하소서.


이 땅의 교회가 여러 가지 이유로 분열하고, 또 때로는 적대시하는 언약 가족답지 못한 행태를 멈추고,

하나님의 말씀에만 기초한 하나의 교회를 이루어 가게 하소서.


오늘 하루도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며 살아가는 복된 하루가 되게 하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