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로마]

[7]우리는 할 말 없는 존재입니다 (롬 3:19~31) (CBS)

colorprom 2016. 12. 13. 14:01

우리는 할 말 없는 존재입니다 2013년 6월 10일 월요일


로마서 3:19~3:31      

     

19 우리가 알거니와 무릇 율법이 말하는 바는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에게 말하는 것이니

이는 모든 입을 막고 온 세상으로 하나님의 심판 아래에 있게 하려 함이라

20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21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

22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


23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24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25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써 믿음으로 말미암아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

26 곧 이 때에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사 자기도 의로우시며 또한 예수를 믿는 자를 의롭다 하려 하심이라

27 그런즉 자랑할 데가 어디냐 있을 수가 없느니라 무슨 법으로냐 행위로냐 아니라 오직 믿음의 법으로니라

28 그러므로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 있지 않고 믿음으로 되는 줄 우리가 인정하노라


29 하나님은 다만 유대인의 하나님이시냐 또한 이방인의 하나님은 아니시냐

진실로 이방인의 하나님도 되시느니라

30 할례자도 믿음으로 말미암아 또한 무할례자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실 하나님은 한 분이시니라

31 그런즉 우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파기하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도리어 율법을 굳게 세우느니라



성경 길라잡이


모든 입을 막고(19절): 이 표현은 법정에서의 상황을 연상하게 한다.

재판 과정에서 일반적으로 피의자는 자신의 입장을 변호하는 말을 하게 된다.

로마서가 기록되던 시대에는 재판 중에 변호할 말이 없는 경우 손을 입에 갖다 대어 표시했다.

피의자의 범죄가 명명백백한 경우에는 변호의 여지를 주지 않는다는 의미에서

재판관이 피의자의 입을 때리기도 했다.

이처럼 하나님 앞에서 우리 모두는 변호의 여지가 없는 존재들이었다.

속량(24절):

이 단어는 노예 시장에서 나온 단어인데, 노예가 풀려나기 위해서는 거기에 합당한 값을 지불해야 했다.

그렇게 값을 지불해서 노예가 자유민이 되게 하는 것을 속량이라고 한다.

그리스도께서 자기 피로 죄에 대한 대가를 지불하시고 우리를 죄에서 해방시키셨다.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25절): 우리말의 ‘간과하다’의 의미는 ‘소홀하게 여겨 넘기다’는 뜻이 강한데

원문에 나타난 의미는 ‘너그럽게 봐주다’는 것이다.

그것은 그냥 불의를 너그럽게 봐주려는 의도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다가

때가 차면 아들의 죽음을 통해 이러한 죄를 해결하려는 뜻을 가지셨기 때문이다.


우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도리어 율법을 굳게 세우느니라(31절):

바울사도는 믿음이 율법을 무효화시키지 않고,

오히려 믿음으로 인해 율법이 요구하는 바를 행하게 된다고 설명하고 있다.

이는 “육신을 따르지 않고 그 영을 따라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가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8:4)”

라는 말씀이나 “남을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다 이루었느니라(13장 8절)”,

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행하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사랑율법의 완성이니라(13장 10절)”

라는 말씀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다.


우리는 할 말 없는 존재입니다 2013년 6월 10일 월요일


우리는 행위로 우리 스스로를 의롭게 하거나 구원할 수 없습니다.

화목제물이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이 유일한 구원의 방법입니다.

아무 차별 없이 주어지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믿음을 통해서만 가능합니다.


믿음은 율법을 굳게 세우는 역할을 하며 사람들로 하여금 죄를 깨닫게 합니다.

그런 까닭에 사람은 자신의 믿음이나 의나 율법의 행위를 결코 자랑할 수 없습니다.

바울사도는 이것으로 다른 사람을 차별하는 것은 결코 하나님의 뜻이 아님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율법 아래에서 경험한 것은 로 귀결되는 것뿐이었습니다.

반면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주어진 ‘의로움’은 경험한 적 없는 새로운 가능성을 의미합니다.


칭의는 종교적 행위나 인종적 차별을 넘어서는 것인 까닭에 어느 누구도 자랑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바울사도가 이 사실을 계속해서 강조하고 있음을 주목해야 합니다.

어쭙잖은 신학적 논쟁으로 편 가르기 좋아하고,

그로부터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차별하고자 하는 경향이 우리의 본성임을 날카롭게 지적하는 것입니다. 불완전한 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율법이 아니라 우리의 본성과 행위인 까닭에,

우리는 할 말이 없는 존재이지요.


바울사도가 율법을 지켜 행하는 것이 무의미하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이 본문에 대한 우리의 독법은 어느새 그런 해석을 도출해 내고 있습니다.

은혜나 믿음을 지나치게 강조하다가,

믿음으로 율법이 요구하는 바를 행하게 된다는 바울의 또 하나의 주된 논지를 왜곡하거나

심지어 무시하는 것입니다.


성경말씀은 어느 구절 하나도 소홀히 다루어서는 안됩니다.

믿음은 율법을 무효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이 요구하는 바를 더 신실하게 행하도록 만듭니다.

믿음 없는 행위는 맹목적이고, 행위 없는 믿음은 공허합니다.

매일 하나님의 의를 드러내는 믿음의 길 위에 굳건히 서기를 바랍니다.


오직 그리스도로 (2017년 9월 11일 월요일) (롬 3:21~26)

율법하나님께서 세우신 의의 기준입니다.
그런데 죄로 타락한 인간은 이러한 하나님의 기준에 도무지 도달할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구원에 이르는 새로운 의를 보여주셨습니다.
그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통하여 주시는 입니다.
우리가 의에 이르는 단 하나의 길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다양한 사상과 주장을 포용할 줄 알아야 교양 있는 사람으로 평가받는 이 시대에
‘오직 그리스도만으로 구원 받을 수 있다’는 주장은 독선적이라고 매도되기 십상입니다.
그러나 시대와 상황이 아무리 바뀌더라도 사도들이 전해 준 이 복음은 변하지 않습니다.
과거에도 그랬듯 현재와 미래에도 언제나 구원에 이르는 길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 외에는 없습니다.


행위가 아니라 오직 믿음 (2017년 9월 12일 화요일) (롬 3:27~31)

바울은 인간이 하나님의 심판을 면할 수 있는 것은 인간이 그럴 만한 행위를 해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하나님을 겸손히 의지하는 믿음을 보고 의롭다고 여겨주셨기 때문이라고 가르칩니다.
곧 흔히 말하는 ‘이신칭의’ 교리인데, 이는 종교개혁 이후 개신교회에서 특히 강조되는 교리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심판을 면할 만큼 거룩한 삶을 살 수 있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누구도 스스로 하나님의 기준을 채울 수 없습니다.
그러한 한계를 하나님 앞에서 인정하고 십자가 보혈의 은혜를 구하는 사람을,
하나님께서는 예수님께서 치르신 핏값을 보시고 심판하지 않으시는 것입니다.
이렇게 구원을 받은 사람들이 율법을 중대히 여기지 않을 수 없습니다.
참된 신자는 말씀의 가르침에 겸손히 순종하기 마련입니다.


믿음으로 얻는 의(義) (2018년 2월 22일 목요일)


오늘 본문은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한다고 말씀합니다.

남녀노소 누구라도 죄인이기 때문에 하나님과 함께할 수 없고 하나님의 영광에도 이를 수 없게 되었습니다.

이는 모든 인간이 감당할 수밖에 없는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죄인이기 때문에 이대로 살다가는 모두 죽을 수밖에 없고, 지옥 가는 인생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죄인 된 우리들을 그냥 두지 않으시고 구원의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구원받고, 은혜로 의롭다 인정받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값없이 받았지만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값'을 치르셨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모든 사람이 죄의 영향력 아래에서 죄인이었지만

이제는 예수님을 믿음으로써 구원의 영향력 아래 차별 없이 구원받고, 의롭다 인정받게 되었습니다.

그 같은 하나님의 의를 오래 전부터 율법과 선지자들이 증거해왔습니다.(롬3:21)


구원의 은혜를 내려주시기 위해서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화목제물로 세우셔서

인간의 죄 문제를 완벽하게 해결하셨을 뿐만 아니라 이로써 당신의 의로우심을 보여주셨습니다.(롬3:25)


따라서 우리가 구원받고 의로워졌다고 도무지 자랑할 수 없습니다.

인간의 행위나 노력은 거기에 하나도 들어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우리 모든 인간을 구원해주신 주님을 찬양합니다.
구원의 은혜를 잊지 않게 하소서. 아멘.

묵상질문


하나님의 의는 우리에게 어떤 방식으로 오며, 율법과는 어떤 관계에 있습니까?

믿음과 율법의 관계에 대해 바울사도는 어떻게 설명하고 있습니까?


기도


차별하지 않고 은혜로 값없이 의롭게 하여 주셨음을 믿고 감사드리는 삶을 살겠습니다.

그리고 더 이상 차별하지 않겠습니다.


율법을 무시하지 않고 오히려 굳게 세우는 믿음을 통해 하나님의 의와 영광을 드러내는 삶을 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