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로마]

[6]사람은 너나없이 모두 죄인입니다 (롬 3:9~18) (CBS)

colorprom 2016. 12. 13. 13:47

사람은 너나없이 모두 죄인입니다 2013년 6월 8일 토요일


로마서 3:9~3:18          


9 그러면 어떠하냐 우리는 나으냐 결코 아니라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죄 아래에 있다고 우리가 이미 선언하였느니라


10 기록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11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12 다 치우쳐 함께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13 그들의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요 그 혀로는 속임을 일삼으며 그 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있고

14 그 입에는 저주와 악독이 가득하고

15 그 발은 피 흘리는데 빠른지라

16 파멸과 고생이 그 길에 있어

17 평강의 길을 알지 못하였고

18 그들의 눈 앞에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느니라



19우리가 알거니와 무릇 율법이 말하는 바는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에게 말하는 것이니

이는 모든 입을 막고 온 세상으로 하나님의 심판 아래에 있게 하려 함이라

20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성경 길라잡이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죄 아래에 있다고(9절):

바울의 이 진술은 결국 하나님 앞에서 율법의 행위로는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다(3장 20절)는

인류의 보편적 상황을 의미한다.

율법을 행하는 자라야 의롭다 하심을 얻을 것이지만(2장 13절),

율법죄를 깨닫게 하는 역할을 할 뿐이다(3장 20절).


기록된 바 의인은 없나니……하나도 없도다(10-12절):

이 구절은 시편(14장 1~3절, 53장 1~3절)을 인용하여 인류의 보편적인 상태를 설명하고 있다.

시편 기자는 “선을 행하는 자가 없도다”라고 하였지만,

바울사도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로 고쳐서 서술하고 있다.

아마도 ‘의롭다’는 용어에 강조점을 두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들의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요……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느니라 함과 같으니라(13~18절):

구약성경의 인용으로, 13절은 시편 5편과 140편에서, 14절은 시편 10편에서, 15~17절은 이사야 59장에서,

18절은 시편 36편에서 인용하였다.

특히 18절의 “그들의 눈 앞에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느니라”는 표준새번역 시편에서는

“그의 눈에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빛이 없다”로 기록되어 있다.


사람은 너나없이 모두 죄인입니다 2013년 6월 8일 토요일


인류는 한결같이 다 죄 아래에 있습니다.

마음으로 하나님을 멀리한 인류는 결국 좋은 삶의 가능성마저 상실한 채 살아가는 형국에 처합니다.

언어기관을 통해 나오는 모든 말이 죄이고, 행하는 모든 몸짓이 폭력입니다.

이와 같은 인류의 보편적인 문제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을 상실했기 때문이라고

바울사도는 밝히고 있습니다.

인류는 그대로 가만히 두면 아무 희망도 없이 죄의 구렁텅이 속에서 허우적거리며

점점 더 파멸로 치닫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을 상실한 인류는 동시에 삶의 희망도 상실하였습니다.

이것이 인류가 보편적으로 처한 인류 역사의 실황입니다.

이 상황은 십자가의 도가 아니면 결코 해결할 길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이 되어 십자가에서 죄의 문제를 근원적으로 해결하셨음을 고백함에도 불구하고,

그 길을 제대로 가지 못하는 것이 우리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 죄 가운데 머무는 것은 당연지사입니다.

하지만 믿음으로 의롭다는 선언을 받은 사람들마저 말하는 모든 것이 다른 사람들을 해롭게 하는 것들이고,

행하는 모든 몸짓에 폭력만 난무할 뿐이니, 지금 세상은 참으로 비참합니다.

칭의의 교리를 귀하게 받드는 하나님의 사람들

불의한 세상 가운데 하나님의 의를 드러내는 선한 말과 행동으로 살지 않는다면 참으로 이상한 일입니다.

누구든지 불의한 구조와 권력에 침묵함으로써 동조하면 하나님께서도 그에게서 귀를 닫으실 것입니다.


정체성에 맞게 하나님을 진정으로 경외하는 삶의 걸음을 진실되이 걸으십시오.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2017년 9월 9일 토요일) (로마 3:9~20)


율법은 죄를 깨닫게 할 뿐 그 자체로 우리를 구원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율법을 온전히 지키지 못함을 계속 확인할 뿐입니다.

결국 율법은 우리의 무력함을 깨닫고 하나님께 겸손히 의지하도록 하기 위해서 주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들은 신앙의 형식을 갖추는 것으로 구원을 얻는 것처럼 으스대며 하나님을 찾지 않았고,

찾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그런 우리들이 어떻게 하나님을 만날 수 있었습니까?

우리가 하나님을 찾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찾으러 오셨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구원은 처음부터 끝까지 전적인 하나님의 역사이며,

우리가 그분을 찬송하는 이유도 저주와 심판 아래 놓인 우리를 그분이 홀로 구원하셨기 때문입니다.


묵상질문


인류가 처해 있는 근원적인 상태는 어떠합니까?   

   

말하고 행하는 모든 것이 죄와 폭력으로 귀결되는 상황이 된 근본적인 원인이 어디에 있다고

바울사도는 지적하고 있습니까?



기도


죄 아래에 있는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근본적으로 구원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항상 기억하며

살게 하소서.


의롭다고 선언하여 주시고 아들 삼아 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걸맞게

삶 가운데 아름다운 말과 선한 행동으로 살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