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하는 자라야 의롭다 하심을 얻습니다 2013년 6월 5일 수요일
로마서 2:1~2:16
1 그러므로 남을 판단하는 사람아, 누구를 막론하고 네가 핑계하지 못할 것은
남을 판단하는 것으로 네가 너를 정죄함이니 판단하는 네가 같은 일을 행함이니라
2 이런 일을 행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심판이 진리대로 되는 줄 우리가 아노라
3 이런 일을 행하는 자를 판단하고도 같은 일을 행하는 사람아, 네가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줄로 생각하느냐
4 혹 네가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너를 인도하여 회개하게 하심을 알지 못하여
그의 인자하심과 용납하심과 길이 참으심이 풍성함을 멸시하느냐
5 다만 네 고집과 회개하지 아니한 마음을 따라
진노의 날 곧 하나님의 의로우신 심판이 나타나는 그 날에 임할 진노를 네게 쌓는도다
6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그 행한 대로 보응하시되
7 참고 선을 행하여 영광과 존귀와 썩지 아니함을 구하는 자에게는 영생으로 하시고
8 오직 당을 지어 진리를 따르지 아니하고 불의를 따르는 자에게는 진노와 분노로 하시리라
9 악을 행하는 각 사람의 영에는 환난과 곤고가 있으리니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며
10 선을 행하는 사람에게는 영광과 존귀와 평강이 있으리니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라
11 이는 하나님께서 외모로 사람을 취하지 아니하심이라
12 무릇 율법 없이 범죄한 자는 또한 율법 없이 망하고
무릇 율법이 있고 범죄한 자는 율법으로 말미암아 심판을 받으리라
13 하나님 앞에서는 율법을 듣는 자가 의인이 아니요 오직 율법을 행하는 자라야 의롭다 하심을 얻으리니
14 (율법 없는 이방인이 본성으로 율법의 일을 행할 때에는
이 사람은 율법이 없어도 자기가 자기에게 율법이 되나니
15 이런 이들은 그 양심이 증거가 되어 그 생각들이 서로 혹은 고발하며 혹은 변명하여
그 마음에 새긴 율법의 행위를 나타내느니라)
16 곧 나의 복음에 이른 바와 같이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사람들의 은밀한 것을 심판하시는 그 날이라
성경 길라잡이
판단하는 네가(1절): 유대인들은 이방인들과 똑같은 모습으로 죄를 지었지만
자신들은 의인이라고 자부하면서 이방인들을 무시하였다.
하나님께서……보응하시되(6절):
유대인들은 자신들이 아브라함의 자손이라는 교만에 빠져서 스스로 의로운 것처럼 여겼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유대인이든 이방인이든 행한 대로 갚으시는 분이시기 때문에
삶의 열매에 대한 책임은 각자가 져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들을 차별 없이 그 행한 일에 따라서 심판하실 것이라는 의미다.
이는 바울사도가 구약성경의 몇 구절들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이는데,
잠언 24장 12절이나 시편 62장 12절, 전도서 1장 14절, 호세아 12장 2절 등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11절의 “외모로 사람을 취하지 아니하심이라”라는 말씀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율법 없는 이방인이 본성으로 율법의 일을 행할 때에는(14절):
율법이 없이도 율법이 말하는 바를 양심을 따라 순종함으로써 의롭다고 선언된 이방인들에 대한 언급이다.
학자들에 따라 일반적으로 ‘이방인들’을 가리킨다는 견해와
‘이방인 그리스도인들’로 보아야 한다는 견해로 나뉜다.
만약 15절의 ‘양심이 증거’가 된다는 구절이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분별할 수 있는 감각이 모든 사람들 속에 주어져 있다는 의미라면
전자가 옳을 것이다.
그러나 사람이 행위로 의롭게 될 수 없다는 구절(3장 20절)과 함께 살펴보면
이 이방인은 실재가 아닌 가상의 존재로 이해하는 게 좋다.
더해서, 3장 20절은 문맥상 위선적인 유대인에 대한 묘사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방인들은 유대인 같은 율법은 없었지만
율법이 없어도 옳고 그른 행위에 대한 그들만의 양심이 율법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것이 바로 여기서 말하는 본성이다.
그러나 율법이 인간을 의롭게 할 수 없듯이 이방인의 본성도 인간을 의롭게 할 수 없다.
심판하시는 그 날이라(16절): 유대인이든 이방인이든 불의의 결과는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심판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루어질 것이다.
만일에 우리의 행위대로 심판을 받는다면 우리 모두는 다 영벌에 처해질 자들이지만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심판하시기 때문에 우리는 영벌이 아니라 영생을 얻게 된다.
행하는 자라야 의롭다 하심을 얻습니다 2013년 6월 5일 수요일
본문은 하나님의 은혜에 의해 믿음으로 구원받았다는 현재 상태와,
하나님께서는 각 사람에게 그 행한 것을 따라 보응하신다는 최종적 상황을 깨닫도록 합니다.
선한 일을 행하는 것과 이기심에 얽매여서 진리를 거스르고 불의를 따르는 것 사이에서
어느 편의 삶을 사느냐에 따라 영광과 존귀와 평강이 주어질 수도, 환난과 고통이 주어질 수도 있습니다.
이 판단에 있어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차별함이 없이 대하십니다.
중요한 것은, 율법의 소유가 아니라 율법의 실천입니다.
시공을 초월한 곧은 마음은 인간의 현실세계에서는 존재할 수 없는 모양입니다.
신앙생활을 오랫동안 했음에도 불구하고
덜 성숙한 인격으로 공동체의 분란을 일으키거나 사회적 비리에 연루되는 분들을 볼 때마다 드는 생각입니다. 아니, 우리 주변에서 비일비재하게 발견할 수 있을 뿐더러, 우리 자신이 또한 그러합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인자하시고 관용하시고 오래 참으시는 분이 아니셨더라면 어찌 되었을까 하고 생각할 때마다 몸서리치는 전율을 느끼게 됩니다.
남을 비판하고 정죄하기 이전에 우리 자신을 돌아볼 일입니다.
현재 믿음에 의해 의롭다고 칭함을 받았다고 해서 우리의 이후 행위까지 모두 면제되는 것은 아님을
오늘 본문을 통해 재차 깨닫습니다.
구원은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에 근거한 것이 분명합니다.
하지만 율법을 소유했다고 해도, 즉 자신이 속한 교회나 교단의 신학이나 교리를 잘 이해하고 있다고 해도
그것이 명하는 바를 따라 실천하지 않는다면 그 책임을 면할 수 없습니다.
혹 교리를 충분히 알지 못한다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사람의 본성에 심겨두신 선한 뜻을 실천한다면 다행스런 일입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앎’이란 ‘체험적으로 아는 것’이라는 점을 상기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머리로만 만나는 게 아니라 실제 삶의 경험으로 만나는 삶을 걸어가십시오.
판단 그리고 정죄 2016년 2월 29일 월요일 (롬 2:1~11)
어떤 사람, 사물, 사건을 판단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사람마다 개인적인 제한된 경험 안에서 판단하기 때문에, 편협한 판단을 할 가능성이 언제나 있습니다.
게다가 우리는 이중적인 잣대를 무심코 적용합니다.
기준자체를 자기자신에게는 관대하게, 다른 사람에 대해서는 엄격하게 적용하면서도
정작 그러고 있는지 스스로도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바로 그러한 점을 사도 바울은 지적합니다.
"남을 판단하는 사람아, 누구를 막론하고 네가 핑계하지 못할 것은
남을 판단하는 것으로 네가 너를 정죄함이니 판단하는 네가 같은 일을 행함이니라."(롬2:1)
인간은 혼자서는 완벽히 공정하게 판단하기 어렵습니다.
누구나 자기의 관점을 따라 사람, 사물, 사건의 일면을 보고 있기 때문에 독단에 빠지기 쉽습니다.
학벌이 높아도, 사회적 지위가 막강하여도, 심지어 경건한 종교지도자라 할지라도
그 사람의 판단이 다른 사람보다 더 훌륭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모두가 하나님 앞에서는 죄를 지을 가능성이 있는 일개 인간일 뿐이며
그릇된 판단을 할 가능성을 갖고 있는 유한한 존재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우리 모두가 다 같은 인간임을 다시금 생각하는 오늘 하루가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차별함이 없이" 대하십니다.(롬2:11, 새번역)
우리도 그렇게 합시다.
율법을 행하는 자 2016년 3월 1일 화요일 (롬 2:12~16)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율법을 주신 이유는
그 율법을 잘 간직하고, 열심히 연구하라고 주신 것이 아닙니다.
율법을 주신 가장 명백한 이유는 그 율법대로 행하라고 주신 것이지요.
율법이 간직하고 있는 하나님의 뜻이 우리 삶 속에서 드러나지 않는다면
그 율법은 죽은 율법이 될 것입니다.
이는, 율법이 아예 없는 것만 못한 결과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가장 큰 약점은 하나님의 말씀을 많이 알고, 묵상도 하지만,
그 말씀이 삶으로 제대로 옮겨지지 않는 것입니다.
율법의 핵심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율법을 폐하러 오신 분이 아니고 완성하러 오신 분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의 사건을 통해서 율법을 완성하셨습니다.
삶을 통해서 완벽하게 율법을 살아내신 것입니다.
달라스 윌라드는 그의 저서 [잊혀진 제자도]에서,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구원은 필요하다고 생각하지만
예수님처럼, 바울처럼 사는 것은 불가능하거나 불필요한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이런 그리스도인들을 '뱀파이어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렀습니다.
다시 말해 나의 구원을 위해 예수님의 보혈만 필요로 한다는 것입니다.
피만 쏙 뽑아먹는 뱀파이어와 같은 존재라는 의미입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입니다.(약2:17)
말 그대로 믿음이 아닙니다.
하나님사랑과 이웃사랑을 우리 삶으로 실천할 때에야 우리는 비로소 '믿는 자, 신자'입니다.
남을 판단하는 사람아 (2017년 9월 5일 화요일)
1장에서 바울은 이방인들의 죄악과 심판을 다루고 있다면,
2장에서는 이러한 이방인들을 판단하는 유대인들을 향해서 경고합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이방인들을 비판하는 유대인들도 동일한 죄를 짓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또한 남들보다 조금 더 경건한 행위에 힘쓴다는 이유로
스스로를 괜찮은 사람으로 여기면서 주변 사람들의 행동을 지적하고 정죄하는 잘못을 범하지 말아야 합니다. 결국 하나님께서 보실 때는 똑같은 죄인일 뿐입니다.
그렇게 남을 정죄하기 좋아하는 그 사람은 복음 안에서 사는 자 같지만,
사실 유대인들처럼 복음이 더욱 필요한 사람입니다.
남의 잘못을 지적하여 자신을 의로워 보이게 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심판의 심각성 (2017년 9월 6일 수요일) (롬 2:12~16)
하나님 앞에서의 의인은 오로지 율법에 완전히 순종하는 사람입니다.
유대인에게 율법이 있다면 이방인에게는 양심이 있어서 율법의 기능을 담당합니다.
그러나 유대인이나 이방인 중에서 의인으로 여길 만큼
완벽하게 율법이나 양심을 지킬 수 있는 자는 없기 때문에 모든 사람은 다 정죄를 받을 것입니다.
이제 남은 것은 하나님의 심판 밖에 없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이것의 심각성을 알지 못합니다.
신자들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심판이 얼마나 무섭고 엄중한 것인지 잘 알지 못한 채
너무 쉽게 십자가 구원을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원래 우리가 받아야 했던 하나님의 심판이 얼마나 심각한 것인지 이해하게 될 때
비로소 그리스도의 구원 사역이 감격적으로 다가올 것입니다.
남을 판단하는 사람아! (2018년 9월 6일 목요일)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중잣대'를 적용하는 것을 빗대어 지적하는 표현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사도 바울은 이중잣대로 '남을 판단하는 사람'을 책망합니다.
즉 공정하지 않게 판단하는 것의 문제를 지적하는 것입니다.
남을 정죄하는 잣대를 남에게만 들이대고 자신에게는 들이대지 않는 사람을
사도 바울은 '남을 판단하는 사람'으로 질책합니다.
이중잣대를 적용하는 인간은 공정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심판은 공정합니다.(롬2:2, 새번역)
인간은 누구도 죄가 없다고 할 수 없습니다.
먼저 교회에 다녔다해도, 먼저 세례를 받았다 해도
하나님 앞에서 죄 없다 자신할 수 있는 인간은 한명도 없습니다.
하나님은 유대인이든 헬라인이든 미국인이든 한국인이든 각 사람이 행한 대로 보응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나이가 많든 적든 여성이든 남성이든 공정하게 심판하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 정도면' 하나님의 뜻을 행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생각하거나,
하나님은 다 용서해주시는 인자한 분이시라는 이른바 신앙적 지식에 핑계를 대며
안일하게 있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외모로 사람을 취하지 아니하십니다.(롬2:11)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차별함 없이 대하십니다.(롬2:11, 새번역)
하나님 앞에서 특권은 없습니다.
우리는 '너도나도' 죄인이며
하나님께서 우리를 회개로 인도하신다는 사실을 알아야 하겠습니다.(롬2:4)
+ 주님, 우리가 회개할 수 있도록 우리를 인도하여주소서. 아멘.
율법과 양심을 넘어서 (2018년 9월 7일 금요일)
오늘 본문에서는 하나님의 심판기준이 율법인 것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만일 그렇다면 문제가 하나 생길 수 있습니다.
율법의 경우, 율법을 소유하는 것이 결정적이라고 간단히 생각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간단한 게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것'이 더욱 결정적입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율법을 듣는 자가 의인이 아니요
오직 율법을 행하는 자라야 의롭다 하심을 얻으리니."(롬2:13)
그렇기 때문에 "율법 없는 이방인이 본성으로 율법의 일을 행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 사람은 "율법이 없어도 자기가 자기에게 율법이 되"기도 합니다.(롬2:14)
그런 이들에게는 양심이 증거가 되어, 그 마음에 새긴 율법의 행위를 나타내게 됩니다.(롬2:15)
그런데, 인간은 '유한한 존재'이기에 율법을 제대로 행할 수 없습니다.
율법으로는 하나님 앞에서 의인이 될 수 있는 인간이 아무도 없습니다.
그러면 인간은 어떻게 해야 합니까? 대책 없이 죽어야만 합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사도 바울은 다음과 같이 말씀합니다.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사람들의 은밀한 것을 심판하시는 그날,"(롬2:16)
인간의 삶의 실상이 만천하에 드러나리라는 것입니다.
인간은 율법이나 양심으로 심판받는 게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인간의 모든 은밀한 것들이 다 드러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이 심판의 유일한 기준입니다.
+ 주님, 율법과 양심을 넘어 예수 그리스도만 바라보게 하소서. 아멘.
어떤 그리스도인인가? (2019년 3월 26일 화요일) (12~16)
믿음생활을 오래도록 이어왔지만 자기성찰의 시간을 가지고 있지 않은 이들이 있는데,
이는 참 안타까운 일입니다.
단적인 예가 곧 가룟 유다입니다.
그는 문제의 원인을 자기에게서 찾지 않고 스승만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는 스승의 '참 생각'과 가르침을 자신에게 적용하지 못하였습니다.
마침내 그는 예수님을 팔아먹고 비참하게 생을 마감하였습니다.
유다에게는 스승의 가르침을 내면화할 수 있는 3년이라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자기를 들여다보며 보다 건강한 믿음의 자리에로 나아가는 데 이르지 못하고 말았습니다.
자기만의 생각을 외부와 교섭할 줄 몰랐던 유다는
객관적인 사고와 삶을 요청하시는 하나님이 '없는' 슬픈 삶을 살아내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받아들여 성찰하고 그분 앞에 회개하지 않으면
인간의 내면에는 이상한 사건이 벌어집니다.
하나님을 하나님이 아니라고 우기며 하나님 아닌 것을 하나님이라고 끈질기게 주장하며
스스로 확신하는 증상이 나타납니다.
사고의 주체성 및 객관성이 담보되지 않을 뿐 아니라 지식도 없고 변화도 없고 그냥 열정만 있습니다.
그래서 자신은 의롭고, 다른 사람들은 이상하고 불의하다고 배척합니다.
관념적인 흑백논리의 삶을 삽니다.
자기성찰이 결여된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들에게 주신 율법의 저변에는
'하나님은 사랑이시고 정의이시며 화해이시고 평등적 삶입니다'라는 정신이 들어있습니다.
이 정신을 실천하는 그리스도인은 자기성찰에 게으르지 않을 뿐만 아니라
상대방의 단점을 가려주며 장점을 높여주는 그리스도인일 것입니다.
나는 어떤 그리스도인입니까?
+ 하나님, 사랑과 정의, 화해와 평등적 삶을 살도록 도우소서. 아멘.
묵상질문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그 행한 대로 보응하신다는 말씀의 의미가 무엇인지 살펴봅시다.
율법을 소유한 자가 아니라 그것을 행하는 자라야 의롭다 하심을 얻는다는 말씀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기도
부끄러운 믿음이지만 의롭다고 하심을 입게 하신 은혜를 기억하며
매 순간마다 하나님나라의 가치를 실현하는 실천의 삶을 살게 하소서.
하나님의 뜻을 이성적으로 아는 것에 머무는 사람이 아니라,
그것을 실생활에서 실천하며 사는 ‘행하는 자’가 되게 하소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만 하는 자가 아니라, 나를 통해 말씀이 살아있음을 보이게 하소서. 아멘.
다른 사람의 죄를 판단하거나 정죄하지 않고 오직 사랑하며 살게 하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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