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우리는 예배자입니다 2016년 5월 14일 토요일
사무엘하 6:12~6:23
12 어떤 사람이 다윗 왕에게 아뢰어 이르되
여호와께서 하나님의 궤로 말미암아 오벧에돔의 집과 그의 모든 소유에 복을 주셨다 한지라
다윗이 가서 하나님의 궤를 기쁨으로 메고 오벧에돔의 집에서 다윗 성으로 올라갈새
13 여호와의 궤를 멘 사람들이 여섯 걸음을 가매 다윗이 소와 살진 송아지로 제사를 드리고
14 다윗이 여호와 앞에서 힘을 다하여 춤을 추는데 그 때에 다윗이 베 에봇을 입었더라
15 다윗과 온 이스라엘 족속이 즐거이 환호하며 나팔을 불고 여호와의 궤를 메어오니라
16 여호와의 궤가 다윗 성으로 들어올 때에 사울의 딸 미갈이 창으로 내다보다가
다윗 왕이 여호와 앞에서 뛰놀며 춤추는 것을 보고 심중에 그를 업신여기니라
17 여호와의 궤를 메고 들어가서 다윗이 그것을 위하여 친 장막 가운데 그 준비한 자리에 그것을 두매
다윗이 번제와 화목제를 여호와 앞에 드리니라
18 다윗이 번제와 화목제 드리기를 마치고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으로 백성에게 축복하고
19 모든 백성 곧 온 이스라엘 무리에게 남녀를 막론하고 떡 한 개와 고기 한 조각과
건포도 떡 한 덩이씩 나누어 주매 모든 백성이 각기 집으로 돌아가니라
20 다윗이 자기의 가족에게 축복하러 돌아오매 사울의 딸 미갈이 나와서 다윗을 맞으며 이르되
이스라엘 왕이 오늘 어떻게 영화로우신지
방탕한 자가 염치 없이 자기의 몸을 드러내는 것처럼 오늘 그의 신복의 계집종의 눈앞에서 몸을 드러내셨도다 하니
21 다윗이 미갈에게 이르되 이는 여호와 앞에서 한 것이니라
그가 네 아버지와 그의 온 집을 버리시고 나를 택하사 나를 여호와의 백성 이스라엘의 주권자로 삼으셨으니
내가 여호와 앞에서 뛰놀리라
22 내가 이보다 더 낮아져서 스스로 천하게 보일지라도 네가 말한 바 계집종에게는 내가 높임을 받으리라
한지라
23 그러므로 사울의 딸 미갈이 죽는 날까지 그에게 자식이 없으니라
성경 길라잡이
여호와의 궤를 맨 사람들이(13절):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방식대로 언약궤를 옮기고 있다.
하나님을 대하는 방식, 곧 예배의 방식도 하나님께서 직접 결정하신다.
그 때에 다윗이 배 에봇을 입었더라(14절):
다윗은 왕복을 대신해 제사장들이 입었던 베 에봇을 입었다(삼상 22장 18절).
다윗은 왕복을 벗음으로써 이스라엘의 진정한 왕이 자신이 아니라 하나님이심을 고백한다.
또한 자신은 이 순간 왕이 아니라 예배자임을 강조한다.
다윗은 자신의 왕권이 하나님께 위임받은 것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고백한다(21절).
사울의 딸 미갈이 창으로 내다보다가(16절): 미갈이 다윗의 아내가 아닌 사울의 딸로 소개된다.
미갈은 그저 다윗만을 업신여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업신여긴 것이다.
그 결과로 미갈은 자식을 얻을 수 없었다.
만일 미갈에게 아들이 있었다면 그는 사울의 외손자이자 다윗의 아들로서
누구보다 강력하게 왕위를 주장할 수 있었을 것이다.
묵상과 삶
사울의 가문이 몰락하고 다윗의 가문이 높아지는 극명한 차이가 생겨난 것은 한 가지 이유 때문입니다.
다윗이 사울보다 더 탁월한 군사력, 혹은 정치적 판단능력, 더욱 든든한 후원자들이 있었기 때문이 아닙니다. 사울은 자기 스스로 왕이 되려 했지만, 다윗은 하나님 앞에서 먼저 예배자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바로 그 한 가지 까닭으로 하나님께서는 다윗을 선택하여 주권자로 삼으셨습니다.
다윗의 후손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 역시 언제나 예배자이셨습니다.
그분께서는 모든 영광을 받을 자격이 있으셨으나, 오직 하나님께 모든 영광을 돌리셨습니다.
십자가의 자리에서조차 하나님의 뜻을 받들어 섬기는 예배자로 사셨습니다.
언제나 어디서나 온 힘을 다해 하나님을 가장 높이 받드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입니다.
또한 교회는 언제나 예배공동체이어야만 합니다.
호랑이는 죽어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 이름을 남긴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래서 호랑이는 가죽 때문에 죽고, 사람은 이름 때문에 죽습니다.
하나님을 떠난 사람의 가장 원초적인 욕망 가운데 하나는 명예를 드높이고자 하는 욕망, 즉 권력욕입니다.
현대의 대중문화는 이러한 명예에 대한 욕망을 강화하고 그것이 정당하다 말합니다.
스스로 자신을 높이는 문화가 만연합니다.
안타깝게도 권력욕은 원래 높낮이가 없는 교회의 직분까지 왜곡하여,
서로 섬기는 직분을 위에 군림하는 계급으로 변질시키고 있습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는 길은 오직 하나, 전심을 다해 하나님만을 예배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명예와 이름을 십자가 아래 던지는 것이 예배의 본질입니다.
그제야 비로소 명예욕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교회의 회복도, 그리스도인의 회복도 진정한 예배에 달려있습니다.
묵상질문
다윗의 예배는 무엇을 공적으로 고백하는 것입니까?(12~14절)
우리가 예수님을 주님으로 고백하는 것은 어떤 의미입니까?
기도
하나님만을 예배하는 예배자로 살게 해주십시오.
교회가 예배공동체로서의 정체성을 회복하게 해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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