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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욕망으로 공멸하는 세상 (슥 11:12~17) (CBS)

colorprom 2016. 4. 25. 16:03

[19]욕망으로 공멸하는 세상 2016년 4월 25일 월요일

 

스가랴 11:12~11:17

 

12 내가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좋게 여기거든 내 품삯을 내게 주고 그렇지 아니하거든 그만두라

그들이 곧 은 30 개를 달아서 내 품삯을 삼은지라

 

13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그들이 나를 헤아린 바 그 삯을 토기장이에게 던지라 하시기로

내가 곧 그 은 삼십 개를 여호와의 전에서 토기장이에게 던지고

 

14 내가 또 연합이라 하는 둘째 막대기를 꺾었으니 이는 유다와 이스라엘 형제의 의리를 끊으려 함이었느니라

 

15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또 어리석은 목자의 기구들을 뺴앗을지니라

16 보라 내가 한 목자를 이 땅에 일으키리니

그가 없어진 자를 마음에 두지 아니하며 흩어진 자를 찾지 아니하며 상한 자를 고치지 아니하며

강건한 자를 먹이지 아니하고 오히려 살진 자의 고기를 먹으며 또 그 굽을 찢으리라

 

17 화 있을진저 양 떼를 버린 못된 목자여 칼이 그의 팔과 오른쪽 눈에 내리리니

그의 팔이 아주 마르고 그의 오른쪽 눈이 아주 멀어 버릴 것이라 하시니라

 

 

성경 길라잡이

 

그들이 곧 은 삼십 개를 달아서 내 품삯을 삼은지라(12하반절):

목자의 품삯으로 백성이 하나님과 하나님께서 세우신 목자를 어떻게 생각하는지가 드러났다.

은 30 은 고작 노예의 몸값(출 21장 32절,마 26장 15절)으로 모욕적인 가격이다.

이에 하나님께서는 그 돈을 성전에서 일하는 토기장이의 집에 버리심으로써

성전에서 벌어지는 활동들을 거부하신다.

참 목자가 자신의 품삯을 요구한다. 이는 그들과의 관계의 단절을 의미하는 표현이다.

그런데 그들은 참 목자에게 모욕적인 금액을 제시함으로 한 번 더 패역한 일을 저질렀던 것이다.

은 30 은 고대 근동 세계에서 노예를 사고 팔 때 치르거나 받는 몸값이었다.

이는 그들이 목자의 수고를 매우 하찮은 것으로 여겼다는 것을 나타낸 것이다.

이는 훗날 가룟 유다가 예수님을 판값이다.

 

내가 또 연합이라 하는 둘째 막대기를 꺾었으니(14절):

은총의 상실은 관계의 단절로 이어진다.

은총을 상실한 사람은 결핍에 허덕이고, 자신의 결핍을 채우기 위해 이웃을 약탈한다.

이는 언약 왕국의 소멸, 곧, 이스라엘 남북 왕국의 연합적 소멸을 나타낸다.

유다와 이스라엘 사이에 존재하던 형제 관계를 완전히 끊어버림으로써

그들은 서로를 원망하고 대항하는 원수적인 관계로 변하게 되었다.

너는 ... 빼앗을지니라(15절):

이 표현은 하나님이 참 목자에게 목양의 직무를 다시 한 번 감당할 것을 명령하시는 것이다.

이는 궁극적으로 유대인들에게 배척을 당하시고 십자가에 죽으신 그리스도께서

복음을 통해서 그의 백성들을 구원의 길로 인도하시는 사역과 연관된다.

보라 내가 한 목자를 이 땅에 일으키리니(16절):

둘째 목자는 첫 목자(4절)와 달리 양 떼를 돌보지 않는다.

하나님께서 세우신 목자를 모욕했던 양 떼는 자신의 수준에 어울리는 목자를 받았다.

어리석은 목자를 통해 양 떼는 자신의 오만에 대한 벌을 받을 것이다.

또한 어리석은 목자 역시 자신의 탐욕에 대한 벌을 받는다(17절).

 

하나님은 악하고 무익한 목자를 일으켜 패역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멸절하고 파멸하실 것을 선포하신다.

뿐만 아니라 백성들을 응징하는 도구로 사용된 못된 목자 역시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

 

묵상과 삶

 

하나님께서 세우신 질서는 대가 없이 내주는 은총과 그 은총에 기초한 연합(사귐)이었습니다.

그러나 세상은 하나님의 은총을 짓밟고 자기 욕망을 새로운 질서로 받아들였습니다.

욕망의 법 아래에서 모든 관계는 상품으로 전락했고, 그 결과 서로를 지켜주는 의리도 사라졌습니다.

이제 남은 것은 사람의 탈을 쓴 짐승들의 살벌한 생존경쟁입니다.

 

가장 먼저 약한 짐승들이 강한 짐승의 먹이가 되어 사라집니다.

하지만 약한 짐승들이 모두 사라지자 강한 짐승들도 더 이상 먹을 것이 없어 몰락합니다.

이것이 욕망으로 공멸하는 세상의 참상입니다.

 

공멸할 세상을 살리는 것은 더욱 강한 세속적인 힘이 아닙니다.

그것은 세상이 스스로 거부했던, 대가 없이 내어주는 은총과 서로를 지체로 여기는 연합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사람은 사람들 속에서만 사람으로 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욕망으로 작동하는 세상은 사람을 사람 이하의 것으로 전락시키기 위해 사람과 사람들을 격리시켰습니다. 또한 차별을 야기하는 온갖 종류의 장벽을 만들었습니다.

그 결과 늘어가는 분쟁, 학대, 고독사는 사귐이 무너진 시대의 얼굴입니다.

이웃의 억울함과 고통에 눈을 감을 때, 그 억울함과 고통은 언젠가 우리의 몫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공멸하는 시대에 공생의 가치를 증언하는 사람들입니다.

가정의 문을 열어 이웃을 초대하십시오. 밥은 언제나 같이 먹어야 맛이 있습니다.

이웃의 작은 신음소리에 귀를 기울이십시오.

사람을 사람 이하의 것으로 만드는 모든 차별에 저항하십시오.

그것이 구원받은 사람이 살아가는 법입니다.

 

삶으로

 

전래동화를 보면, 동물들이 은혜를 갚은 이야기가 많이 있습니다.

이는 하찮은 동물들조차 은혜를 잊지 않고 살아가는 것을 강조하면서,

사람들에게 그 중요성을 가르친 것입니다.

 

그런데 만일 남에게 큰 도움이나 은혜를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잊고 도리어 배반하게 되면,

‘배은망덕 한 놈’이라고 부르며 매우 혼을 냈습니다.

 

이처럼 사람이라면 받은 은혜를 분명 기억해야 하는데, 본문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러하지 못합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세우신 참 목자를 따르지 않을 뿐 아니라, 모욕하며 무시합니다.

결국 그들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됩니다.

참 목자 예수님이 이 땅에 왔을 때, 사람들은 그를 외면하였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을 구원할 메시아요, 그들을 다스릴 왕이심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그를 배척하여 끝내 십자가에 못을 박았습니다.

그리하여 그들은 하나님의 심판의 대상이 된 것입니다.

 

반면,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모시는 모든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습니다.

우리는 이 구원의 은혜를 기억하며, 날마다 감사의 제사를 올려드려야 합니다.

그것이 구원받은 백성의 도리입니다.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시 136:1)

 

묵상질문

 

하나님께서 세우신 목자에게 백성들 어떻게 반응합니까?(12절)

백성들의 반응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은 무엇입니까?(13~14, 15~17절)

온갖 탐욕과 범죄로 몰락할 세상을 구원하는 길은 무엇일까요?

참 목자에 대해 이스라엘 백성들은 어떻게 반응하였나요? 그 결과 그들은 어떤 심판을 받게 되었나요?

나는 참 목자이신 예수님을 배척하며 살고 있지 않나요? 이를 위해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기도

 

공멸하는 욕망을 거부하는 공생하는 은총으로 살게 해주십시오.
지체들과의 사귐이 단단히 계속되게 하소서.

하나님께서 베푸신 구원의 은혜를 잊고 사는 배은망덕한 죄를 짓지 않도록 도와주세요. 그 은혜를 기억하며 날마다 감사와 찬양의 제사를 하나님께 올려드리며 살아가게 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