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시대를 살리는 깊은 애통 2016년 4월 27일 수요일
스가랴 12:10~12:14
10 내가 다윗의 집과 예루살렘 주민에게 은총과 간구하는 심령을 부어 주리니
그들이 그 찌른 바 그를 바라보고 그를 위하여 애통하기를 독자를 위하여 애통하듯 하며
그를 위하여 통곡하기를 장자를 위하여 통곡하듯 하리로다
11 그 날에 예루살렘에 큰 애통이 있으리니 므깃도 골짜기 하다드림몬에 있던 애통과 같을 것이라
12 온 땅 각 족속이 따로 애통하되 다윗의 족속이 따로 하고 그들의 아내들이 따로 하며
나단의 족속이 따로 하고 그들의 아내들이 따로 하며
13 레위의 족속이 따로 하고 그들의 아내들이 따로 하며
시므이의 족속이 따로 하고 그들의 아내들이 따로 하며
14 모든 남은 족속도 각기 따로 하고 그들의 아내들이 따로 하리라
성경 길라잡이
은총과 간구하는 심령을 부어주리니(10상반절):
언약 백성의 범죄로 상실한 은총(11장 10절)이 회복되었다.
그러나 언약 백성은 단순히 기다리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은총의 회복을 간구해야 한다.
은총 안에서 하나님의 주권과 언약 백성의 의지가 공존한다.
그를 바라보고 그를 위하여 애통하기를(10하반절):
애통은 언약 백성의 어설픈 자기연민이 아니라 그들이 행한 범죄를 고백하는 것이다.
이 예언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으로 온전히 성취되었다.
이 애통은 다른 사람이 대신할 수 없는 애통이다(12절).
므깃도 골짜기 하다드림몬에 있는 애통(11절):
‘하다드림몬’을 바알의 다른 이름으로 보는 경우도 있다.
이 경우 애통은 바알 숭배에 동반되는 애통인데, 우상숭배를 애통의 예로 드는 것이 적절하지 않기에
대부분 ‘하다드림몬’을 므깃도 인근의 지명으로 본다.
므깃도에서 요시야 왕이 전사했고, 이후 깊은 애통이 있었다(대하 35장 24절).
문자적으로 ‘하다드’는 아카드어로 ‘태풍의 신’이며, ‘림몬’은 그 신의 이름이다.
큰 애통(11절):
여기서 애통은 사랑하는 가족이 죽었을 때에 통곡하여 울부짖는 것처럼
매우 처절하게 슬퍼함을 나타내는 표현이다.
이는 그들의 회개가 진실한 것임을 보여준다.
레위의 족속, 시므이의 족속(13절):
‘레위의 족속’은 여호와를 섬기는 제사장직이 레위 지파에서 세습되었음을 염두에 둔 표현이다.
‘시므이의 족속’은 이스라엘의 열 두 지파 가운데가 아니라, 레위의 손자가 이룬 가문을 지칭한다.
이 예언은 일차적으로 오순절 후에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왕성하여 지고
허다한 제사장 무리가 복음에 복종함으로써 성취되었다(행 6:7).
모든 남은 족속도 각기 따로 하고(14절):
이는 만인 구원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하나님의 택함을 받은 사람에겐 이 구원이 혈통이나 어떤 인간적 조건에 관계없이
모두에게 공평하게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강조하는 표현이다.
묵상과 삶
하나님의 구원 역사는 외부의 대적과 내부의 반역을 해소하시며 하나님 나라를 세우시는 역사입니다.
예루살렘에서 발생한 큰 전쟁의 결과로 외부의 대적이 무너졌습니다(11장 9절).
하지만 아직 내부의 반역자들이 남아있습니다.
이에 하나님께서는 은총과 간구하는 심령, 그로 말미암은 깊은 애통을 통해
반역자들이 회개하여 돌아오게 하셨습니다.
이 애통은 다른 사람들이 대신할 수 없는 자신만의 애통이며, 온 땅에 임할 큰 애통입니다.
오직 이러한 애통을 통해서만이 반역자들이 하나님 나라로 들어올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어느 시대, 어느 장소에서나 하나님 나라가 임했다는 중요한 증거는,
세상이 꾸며낼 수 없는 깊고 진한 애통입니다.
애통의 깊이만큼 하나님 나라가 높이 드러날 것입니다.
죽음에 이르는 거짓 애통과 생명에 도달하는 진실한 애통이 있습니다.
거짓 애통은 자기 사랑에서 말미암습니다. 그러나 진실한 애통은 하나님 사랑에서 시작됩니다.
또한 거짓 애통은 어설픈 자기연민, 즉 자신을 피해자로 여기는 애통입니다.
그러나 진실한 애통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앞에서 자신을 가해자로 여기는 애통입니다.
십자가 앞에서 자신의 범죄가 어떻게 그리스도를 죽였는지,
자신의 욕망이 어떻게 이웃을 학대했는지 자각하며 경험하는 애통입니다.
그렇기에 거짓 애통은 더욱 큰 분노와 적개심을 일으켜 세상을 피로 얼룩지게 합니다.
또한 이웃을 억압하는 명분을 제공합니다.
하지만 진실한 애통은 자신을 낮추고 적개심과 분노를 내려놓고, 겸손히 다른 사람들을 섬기게 합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 앞에서 진실로 애통합시다.
삶으로
용서는 ‘상대방이 자신에게 지은 죄나 잘못에서 대해 꾸짖거나 벌을 주지 않고 너그럽게 보아주는 것’입니다. 죄나 잘못의 크기가 크면 클수록, 그 용서의 가치는 더 크게 작용합니다.
하지만 용서는 결코 쉬운 것이 아닙니다.
아무리 상대방이 용서받으려고 노력한다 할지라도 용서를 하는 사람이 손을 내밀지 못하면
아무 소용이 없기 때문입니다.
본문을 보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용서를 만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패역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용서하시고,
그들에게 은총과 간구하는 심령을 부어주시기로 약속한 것입니다.
우리는 죄로 인해 하나님을 떠난 자들입니다.
그런데 그런 우리에게 하나님이 돌아오셨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하나님에게로 돌아갈 수 있는 길을 여셨습니다.
우리를 용서하시기 위해 회개의 자리로 우리를 초청하신 것입니다.
그곳에서 우리는 하나님과 단절되었던 관계가 회복되고, 우리의 죄를 용서받는 은혜를 누리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회개는 하나님의 선물이며, 사랑입니다.
만일 우리에게 죄가 있다면 즉시 회개의 자리로 나아가길 바랍니다.
그곳에서 우리는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며 회복시키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묵상질문
하나님의 주권과 언약 백성의 의지가 어떻게 공존합니까?(10절)
시대를 새롭게 하는 애통의 특징은 무엇입니까?(10, 12~14절)
최근에 경험하신 애통의 원인은 무엇이며, 결과는 또한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은총과 간구하는 심령을 부어주신다’는 의미가 무엇일까요?
나는 내가 지은 죄에 대해 진실한 마음으로 애통하며 회개하나요?
기도
죽음을 야기하는 거짓 애통을 버리고 진실하게 애통하게 해주십시오.
정직하게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직면하게 해주십시오.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떠났던 저에게 회개의 은혜를 부어주심을 감사드립니다.
이 은혜를 기억하며,
아무리 작은 죄라도 민감하게 반응하여 즉시 회개의 자리로 나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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