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사람의 영광을 더 사랑하지는 않습니까? 2016년 2월 29일 월요일
요한복음 12:37~12:43
37 이렇게 많은 표적을 저희 앞에서 행하셨으나 그를 믿지 아니하니
38 이는 선지자 이사야의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라
이르되 주여 우리에게서 들은 바를 누가 믿었으며 주의 팔이 누구에게 나타났나이까 하였더라
39 그들이 능히 믿지 못한 것은 이 때문이니 곧 이사야가 다시 일렀으되
40 그들의 눈을 멀게 하시고 그들의 마음을 완고하게 하셨으니
이는 그들로 하여금 눈으로 보고 마음으로 깨닫고 돌이켜 내게 고침을 받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하였음이더라
41 이사야가 이렇게 말한 것은 주의 영광을 보고 주를 가리켜 말한 것이라
42 그러나 관리 중에도 그를 믿는 자가 많되 바리새인들 때문에 드러나게 말하지 못하니
이는 출교를 당할까 두려워함이라
43 그들은 사람의 영광을 하나님의 영광보다 더 사랑하였더라
성경 길라잡이
이렇게 많은 표적을 그들 앞에서 행하셨으나(37절):
요한은 여기서 예수님이 메시아이심을 입증하는 수많은 표적을 행하셨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그분을 불신하고 심지어 십자가에 달아 죽이는 비극적인 일이 왜 일어난 것인지 그 이유를 밝힌다. 또한 표적을 본다고 모두가 믿는 것이 아니라
구원을 위해 예정된 사람들만이 복음에 관심을 기울이고 하나님을 향하게 된다는 것도 함께 강조한다.
선지자 이사야의 말씀(38절): 이사야의 예언들은 마치 이 모든 일이 하나님의 의지로 된 것 같은 인상을 준다. 하지만 그렇다고 모든 책임이 하나님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옳지 않다.
왜냐하면 구약의 예언들은
하나님이 인간의 불신앙과 패역조차 그분의 구원을 성취하는데 사용하신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야 하기 때문이다.
이사야가 이렇게 말한 것은 주의 영광을 보고 주를 가리켜 말한 것이라(41절):
요한은 이사야 선지자의 말씀을 인용하면서 2 가지 왕의 모습을 소개한다.
하나는 영광스러운 왕, 또 다른 하나는 고난 받는 종의 모습이다.
요한은 예수님에게서 모순적인 두 가지 모습을 발견하고, 그것을 가리켜 ‘영광’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들은 사람의 영광을 하나님의 영광보다 더 사랑하였더라(43절):
눈앞에서 강력하게 억압하는 사람의 힘이, 미래를 약속하는 하나님의 힘보다 더 강해 보인다.
바리새인들의 기세에 눌려 믿음을 실현하지 못하는 관리들의 모습은,
세상 가운데 아무런 영향력도 끼치지 못하고 살아가고 있는 현대의 그리스도인들을 닮았다.
사람의 영광을 더 사랑하지는 않습니까? 2016년 2월 29일 월요일
코앞에서 예수님께서 일으키신 생생한 기적을 믿지 않는 이들이 있었습니다. 참 이상한 일입니다.
이사야는 믿지 못하는 것은 그들이 완악하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완악함은 눈을 멀게 합니다. 보지 못하니 믿지도 못합니다. 믿지 않으니 변하거나 고쳐지지 않습니다.
심판이 다른 데 있지 않습니다.
현재에 내리는 심판은, 새로운 삶을 살 수 있는 기회를 버리고 완고하게 옛 악한 모습 그대로 사는 것입니다.
관리들 중에서도 완악함에서 벗어나 예수님의 행적을 볼 수 있었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결국 예수님에 대한 믿음을 당당하게 고백하며 살아가지 못했습니다.
완악한 권력자들이 다스리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들이 지켜가는 완악한 사회가 믿음의 눈을 뜬 관리들을 주눅 들게 했습니다.
사회에서 추방할 수 있는 권한이 종교권력자들에게 있었고, 이것이 두려움에 떨게 만들었습니다.
많은 이들이 멸망으로 인도하는 넓은 길을 쉽게 선택합니다.
반면에 역사 가운데 생명의 길은 끊어질 듯 끊어질 듯 위태롭게, 그리고 치열하게 흘러왔습니다.
수많은 기독교인들이 완악한 자본과 권력의 질서 아래, 믿음으로 사는 삶이 어떻게 가능하겠냐고 생각합니다.
이런 생각이 완고해지면 지금 이대로의 삶이 좋다고 여기는 자세가 되어,
지금 여기서 살아계신 하나님의 부르심에 체념과 냉소로 반응하게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영광보다 사람의 영광을 더 사랑하는 악한 선택들이 쌓여 마음이 점점 더 완고해져갑니다.
세상 권세가 두려워서 잘못 선택하기를 멈추고, 하나님께로 돌이켜야 합니다.
하나님의 역사를 보지 못하고 보면서도 반응하지 못하는 답답한 우리 현실을 새롭게 해달라고 기도합시다.
굳은 마음밭을 갈아엎어, 좋은 밭에 뿌려진 씨에서 난 풍성한 열매가 우리에게서도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삶으로
예수님이 행하신 표적을 보고도 깨닫지 못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않는 것은
하나님의 심판이 임했다는 증거입니다.
하나님이 사람들에게 표적을 주시는 목적은
믿는 사람들의 구원과 함께 믿지 않는 사람들의 심판을 위함입니다.
표적을 보고도 믿지 않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영광보다 사람의 영광을 더 사랑하고 전통이나 관습에 얽매인 자들인데,
이로 인해 그들은 복음이 주는 참된 기쁨과 소망을 누리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그들에게 주어지는 하나님의 심판입니다.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른다.”(롬 10:10)는 바울의 말처럼,
우리에게는 무엇보다 ‘부드러운 마음’, 곧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깨달을 수 있는 마음이 필요합니다.
‘완고한 마음’을 가진 자는 아무리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지금 나의 마음은 어떠한가요?
내 생각과 고집, 가치관으로 딱딱하게 굳어 있는 마음인가요,
아니면 성경과 복음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며 깊이 생각하는 부드러운 마음인가요?
부드러운 마음으로 성경과 복음을 통해 주어지는 하나님의 뜻을 깨닫는 자가 되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사모하자 (2018년 2월 28일 수요일)
'의심 많은 도마,' 어려서부터 교회에 다녔던 사람이라면, 한 번쯤은 들어봤음직한 도마의 별명입니다.
"너는 나를 본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라는 예수님의 책망에 대하여,(요20:29)
많은 사람들이 도마의 의심을 불신앙으로 간주해 마지않았습니다.
정말 그럴까요? 과연 도마는 불신앙의 대명사일까요?
예수님은 공생애 3년 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셀 수 없이 많은 표적을 보여주셨습니다.(요12:37)
그 결과 많은 무리들이 예수님을 따랐고, 심지어 예수님께서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들어가실 때
많은 사람들이 거리로 뛰쳐나와 자신들의 겉옷을 길바닥에 깔며 예수님을 찬송하였습니다.(마21:6-9)
그러나 오늘 본문은 이 모든 표적을 본 이스라엘 백성들이 예수님을 믿지 않았다고 말씀합니다.
그들은 흥분하여 예수님을 따랐지만, 나쁜 쪽으로 변화했습니다.
또, 예수님을 믿지만 출교당할까 봐 두려워 자기 믿음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이들은 사람의 영광을 하나님의 영광보다 더 크게 생각했던 사람들입니다.(요12:42,43)
불신앙의 대명사는 그저 수많은 평범한 사람들입니다.
사도들의 전승에 따르면 도마는 훗날 인도 선교를 위해 목숨을 바쳤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부활에 대한 그의 조심스러운 반응, 그리고 그의 변화가 오히려 뜻깊게 느껴집니다.
+ 주님, 사람의 영광보다 하나님의 영광을 더 사모하는 우리가 되게 하소서. 아멘.
묵상질문
지금 여기에서 살아계신 하나님의 일하심을 보고 듣고 있습니까?
완고함이 문제라고 하는데, 우리의 상태는 어떠합니까?
사람들이 표적을 보고도 주님을 믿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부드러운 마음을 갖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기도
체념과 냉소로 굳어진 완고한 마음을 갈아엎어 주십시오.?
하나님의 영광을 따라 매일을 선택해가는 확고한 마음과 분별을 주십시오.
나의 생각과 고집, 가치관으로 딱딱하게 굳어서
성경과 복음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 어리석은 자가 되지 않게 하시고,
부지런히 부드러운 마음을 훈련해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실천하는 자가 되게 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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