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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죽음의 위기로 내몰리시는 예수님 (요한 11:47~57) (CBS)

colorprom 2016. 2. 25. 19:27

[45]죽음의 위기로 내몰리시는 예수님 2016년 2월 23일 화요일

 

요한복음 11:47~11:57

 

47 이에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공회를 모으고 이르되

이 사람이 많은 표적을 행하니 우리가 어떻게 하겠느냐

48 만일 그를 이대로 두면 모든 사람이 그를 믿을 것이요

그리고 로마인들이 와서 우리 땅과 민족을 빼앗아 가리라 하니

49 그 중에 한 사람 그 해 대제사장인 가야바가 그들에게 말하되 너희가 아무 것도 알지 못하는도다

50 한 사람이 백성을 위하여 죽어서 온 민족이 망하지 않게 되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한 줄을

생각하지 아니하는도다 하였으니

51 이 말은 스스로 함이 아니요 그 해에 대제사장이므로 예수께서 그 민족을 위하시고

52 또 그 민족만 위할 뿐 아니라 흩어진 하나님의 자녀를 모아 하나가 되게 하기 위하여 죽으실 것을

미리 말함이러라

 

53 이 날부터는 그들이 예수를 죽이려고 모의하니라

54 그러므로 예수께서 다시 유대인 가운데 드러나게 다니지 아니하시고

여기를 떠나 빈 들 가까운 곳인 에브라임이라는 동네에 가서 제자들과 함께 거기 머무르시니라

 

55 유대인의 유월절이 가까우매

많은 사람이 자기를 성결하게 하기 위하여 유월절 전에 시골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갔더니

56 그들이 예수를 찾으며 성전에 서서 서로 말하되

너희 생각에는 어떠하냐 그가 명절에 오지 아니하겠느냐 하니

57 이는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누구든지 예수 있는 곳을 알거든 신고하여 잡게 하라 명령하였음이러라

 

 

성경 길라잡이

 

그리고 로마인들이 와서 우리 땅과 민족을 빼앗아 가리라(47절):

이것이 유대 지도자들이 가졌던 근원적 두려움이다.

이것은 단순히 이민족의 침입 때문에 백성들이 당할 고난을 걱정하기보다는,

성전 파괴로 말미암아 자신들의 종교적 권위가 사라질 것을 걱정하는 표현이다(『WBC』 요한복음, 418).

 

우리가 어떻게 하겠느냐(47절): 예수님이 나사로를 살린 사건은 당시 유대의 지도자들에게 큰 위협이 되었다. 그들은 더 이상 예수님을 그냥 둘 수 없다고 판단하고 사태를 수습하고 대책을 강구하기 위해

산헤드린 공회를 소집했다.

공회로 모인 사람들은 예수님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를 모의했고,

결국엔 예수님을 죽여야 한다고 결정하게 되었다.

이 말은 스스로 함이 아니요(51절):

이는 역사의 주관자이신 전능하신 하나님이 악한 자의 말을 통해서도 역사하실 수 있다는 것과

그 악한 자의 말까지도 구원사역을 위해 효과적으로 사용될 수 있다는 하나님의 주권적인 통치를 보여준다.


이 날부터는 그들이 예수를 죽이려고 모의하니라(53절):

대제사장 가야바의 말은 유대 지도자들로 하여금 극단적인 결심을 하게 만든다.

역설적이게도 하나님의 계획이 반역자들을 통해 실현되도록 준비되고 있다.

 

묵상과 삶

 

나사로의 부활 소식을 접한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은 공의회를 소집했습니다.

그런데 이들은 이 놀라운 표징을 행하는 예수님이 과연 누구인지, 메시아인지 아닌지를 묻는 것이 아니라,

표징을 행하고 있는 이 사람을 어떻게 하면 좋겠는지를 묻고 있습니다.

믿고 따라야 할 것인지를 고민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따르지 않는 것을 전제하고 사람들이 그를 따를까 두려워하고 있는 것입니다.

 

거룩한 땅과 성전을 지키고, 유대 민족을 로마로부터 지키기 위해서라고 말하고 있지만,

사실은 기존의 질서가 무너지거나

로마로부터 더 큰 압박을 받게 되어 자신들이 권력을 빼앗길까 두려웠던 것입니다.

그래서 자신들이 처한 위기를 넘기기 위한 묘책으로 한 사람의 죽음을 생각해낸 것입니다.

자기 것을 지키기 위한 탐욕이 결국 예수 그리스도를 죽이려는 모의의 시작점이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누군가에게는 새로운 생명을 얻게 하는 자유와 해방의 복음이지만,

누군가에게는 자신의 삶과 생존을 위협하는 위험요소입니다.

세상에서의 성공과 권력, 부와 명예, 건강과 안전이 중요한 사람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은 자신을 불안 속으로 몰아넣는 위협 그 자체입니다.

경쟁에서 이기고 살아남기 위해 어떻게든 안간힘을 써야하는 상황에서,

말씀은 내 것을 더 포기하라고, 이웃을 더 섬기며 사랑하라고 말하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안락함과 안전을 지키기 위해 그럴듯한 핑계로 말씀을 거부하며 타협하는 것은,

결국 오늘 예수 그리스도를 거부하고 반대하며 죽이는 대안을 제시하는 것과 같습니다.

내 것을 먼저 지키기 위한 어설픈 타협이 아니라, 말씀을 온전히 순종하며 지키기 위해 고민해야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비로소 말씀 속에 나타난 부활의 능력을 경험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삶으로

 

하나님의 나라와 사단의 나라는 결코 양립할 수 없습니다.

나사로를 살리신 예수님의 표적 때문에 바리새인들은 위기감을 느꼈습니다.

예수님과 그의 가르침의 흥왕은 곧 자신들의 쇠퇴는 물론 로마의 침략을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 대제사장 가야바는 “한 사람이 백성을 위하여 죽어야 한다.”고 말했고,

모두가 이 뜻을 따르기로 했습니다.

그러나 사실 이것은 성경이 예언한 메시아의 죽음을 뜻하는 것이기도 했습니다.

따라서 결국 모든 역사와 구원은 하나님이 계획하신 계획표대로 이루어져간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인간은 스스로 존재하지 않고 창조주의 지음을 받아 존재하는 자입니다.

그리고 지음을 받은 존재는 창조주의 뜻과 계획에 따를 때 가장 행복할 수 있습니다.

오늘날 세상의 많은 학문들이 인간의 위대함을 자랑하는데 반해, 성경은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찬양합니다.

사실 우리가 세상의 학문을 익히는 것은 하나님의 뜻과 계획을 보다 잘 이해하고자 함입니다.

바울이 고백한 것처럼,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 비하면 다른 것들은 배설물과 같은 것’에 불과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세상의 지식과 학문을 넘어 하나님을 알아가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묵상질문

 

예수님의 등장으로 유대인들은 무엇을 두려워하게 되었습니까?

말씀이 나에게 위협으로 다가왔던 순간은 언제입니까?

대제사장 가야바의 말대로 이루어지는 것은 결국 누구의 뜻에 의한 것일까요?

창조주이자 역사의 주관자이신 하나님을 보다 많이 알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기도

 

예수님에 대한 소식을 통해 삶의 의미를 발견하게 하옵소서.
우리의 소망을 이루기 위한 노력보다 말씀에 대한 순종이 일상의 목표가 되게 하옵소서.

 

온 세상을 지으시고 섭리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알고 구현해가는 것이

우리 지음 받은 자들이 가장 행복할 수 있는 것을 알게 하시고,

하나님의 뜻을 알기 위해 부단히 힘쓰는 자가 되게 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