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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잠든 나사로를 깨우러 가시는 예수님 (요한 11:1~16) (CBS)

colorprom 2016. 2. 25. 14:56

잠든 나사로를 깨우러 가시는 예수님 2016년 2월 18일 목요일

 

요한복음 11:1~11:16

 

1 어떤 병자가 있으니 이는 마리아와 그 자매 마르다의 마을 베다니에 사는 나사로

2 이 마리아는 향유를 주께 붓고 머리털로 주의 발을 닦던 자요 병든 나사로는 그의 오라버니더라

3 이에 그 누이들이 예수께 사람을 보내어 이르되 주여 보시옵소서 사랑하시는 자가 병들었나이다 하니

4 예수께서 들으시고 이르시되 이 병은 죽을 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요

하나님의 아들이 이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게 하려 함이라 하시더라

 

5 예수께서 본래 마르다와 그 동생과 나사로를 사랑하시더니

6 나사로가 병들었다 함을 들으시고 그 계시던 곳에 이틀을 더 유하시고

7 그 후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유대로 다시 가자 하시니

8 제자들이 말하되 랍비여 방금도 유대인들이 돌로 치려 하였는데 또 그리로 가시려 하나이까

9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낮이 12 시간이 아니냐 사람이 낮에 다니면 이 세상의 빛을 보므로 실족하지 아니하고

10 밤에 다니면 빛이 그 사람 안에 없는 고로 실족하느니라

 

11 이 말씀을 하신 후에 또 이르시되 우리 친구 나사로가 잠들었도다 그러나 내가 깨우러 가노라

12 제자들이 이르되 주여 잠들었으면 낫겠나이다 하더라

13 예수는 그의 죽음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나 그들은 잠들어 쉬는 것을 가리켜 말씀하심인줄 생각하는지라

 

14 이에 예수께서 밝히 이르시되 나사로가 죽었느니라

15 내가 거기 있지 아니한 것을 너희를 위하여 기뻐하노니 이는 너희로 믿게 하려 함이라

그러나 그에게로 가자 하시니

16 디두모라고도 하는 도마가 다른 제자들에게 말하되 우리도 주와 함께 죽으러 가자 하니라

 

 

성경 길라잡이

 

이 마리아는 향유를 주께 붓고(2절):

요한이 마리아에 대해서 이렇게 자세하게 언급하는 것은

다른 마리아인 ‘막달라 마리아’와 동일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리기 위함이다.


사랑하시는 자가 병들었나이다(3절):

나사로의 누이들은 ‘주님과 나사로의 관계가 서로 허물없는 친구처럼 가까웠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필레오’(사랑하다, 좋아하다, 입맞추다)라는 단어를 사용하였다.

이병은 죽을 병이 아니라(4절): 직역하면 ‘이 병은 죽음을 향하여 있지 않다’라는 뜻이다.

사실 이 병은 나사로를 죽게 할 만큼 큰 병이었다.

따라서 이 말씀에는 큰 병이 아니라는 의미보다

나사로의 죽음 이후에 일어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사건’이 암시되어 있다고 보아야 한다.

 

이 병은 죽을 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요 하나님의 아들이 이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게 하려 함이라(4절): 나사로의 병이 위독하지 않다는 것이 아니라, 죽음이 끝이 아님을 의미한다.

‘하나님의 영광’은 ‘하나님의 자기 계시’, 특히 아들을 통해 자신을 나타내시는 것을 뜻하는데,

나사로의 질병과 죽음은 아들을 통해 이루실 하나님의 일을 보여줄 것이다(Carson, 『필러신약주석』, 406).


나사로가 병들었다 함을 들으시고 그 계시던 곳에 이틀을 더 유하시고(6절):

예수님은 마르다의 가족들을 사랑하셨다.

또한 나사로의 죽음을 사람들이 모두 인정할 때까지 자신의 여정을 지연하신다.

이를 통해 제자들을 비롯하여 마르다 가족의 믿음을 일으키신다.

우리 친구 나사로가 잠들었도다 그러나 내가 깨우러 가노라(11절):

잠은 죽음을 의미한다(왕상 2장 10절).

마지막 날에 하나님께서 보내신 메시아께서 잠든 성도들을 깨우실 것이라고 예언되었다(단 12장 2절).

예수님께서는 죽은 나사로를 살리는 하나님의 구원을 베풀러 가신다.

제자들은 이를 통해 예수님께서 하나님께서 보내신 구원자이심을 믿게 될 것이다.

 

묵상과 삶

 

나사로가 병들었다는 소식을 접한 주님께서는

나사로의 병이 죽음으로 끝나지 않고, 하나님의 영광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자신을 돌로 쳐 죽이려 했던 유대 지역으로 돌아가려 하십니다.

제자들은 유대로 돌아가는 것을 죽음의 길로 여겼고,

예수님께서 붙잡히시면 모든 것이 끝날 것이라 생각하여 예수님을 만류합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시간표에 따라 행동하십니다.

죽은 나사로를 살리기 위해 죽음의 위협에 맞서십니다.

또한 제자들에게 ‘하나님의 영광’을 보여주시고, 믿음을 불어넣으십니다.

나사로만 아니라, 그의 누이들과 제자들을 깨우러 베다니로 향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또한 우리들을 찾아오셔서, 함께 가자고 초청하십니다.

그분과 함께 가는 길이 일상에 어떻게 펼쳐질 것인지 묵상해보시기 바랍니다.

사람들은 죽음을 세상과 삶의 끝이라고 여기며 살아갑니다.

때문에 많은 사람들은 죽기 전에 하나라도 더 경험해보려고 하고, 죽을힘을 다해 성취하려고 합니다.

죽음이라는 제한된 벽 앞에서 무기력하게 제한된 꿈을 꾸며,

혹은 그 죽음의 시간을 미루려 발버둥치기도 합니다.

 

그런데 우리 예수님은

이 세상과 오는 세상을 가로막고 있던 죽음이라는 벽을 허물기 위해 이 땅에 오셨습니다.

죽음이 가려 볼 수 없었던 세상을 나타내려 오셨습니다.

그곳은 믿음으로 보고 소망하는 세상입니다.

그 믿음 안에서 죽음은 끝이 아니라, 잠들어 쉬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죽음을 두려워하거나 피하기보다는,

잠에서 우리를 깨우실 주님을 의지하며 하루하루를 살 수 있습니다.

우리 앞에 놓인 죽음이라는 벽을 문으로 알고, 믿음으로 주님과 함께 인생의 벽에 들이박아야 하겠습니다.

 

삶으로

 

예수님이 의도적으로 이틀을 지체하는 바람에 결국 나사로가 죽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정작 예수님은 나사로의 죽음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일’이라고 하십니다.

왜냐하면 나사로를 다시 살리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육체의 죽음이 끝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는 유한한 존재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영원한 생명의 하나님 나라를 선물로 주시는 무한하신 분입니다. 나사로의 죽음과 부활은 장차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의 전주곡으로서 이를 증거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로써 우리는 육체의 죽음에 매이지 않고 하나님 나라의 영생을 누릴 자가 됩니다.

많은 청소년들이 죽음과 부활에 대해 왜곡된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가령 현실의 고통을 탈피하고 싶은 마음에 ‘죽음’을 선택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 이면을 보면 ‘부활과 영생’에 대한 잘못된 생각이 자리하곤 합니다.

하지만 참된 부활의 기쁨은 현실의 고난을 믿음과 소망으로 견디며 승리하는 자에게 주어지는

찬란한 면류관입니다.

스스로 죽음을 선택한 자와는 아무 상관이 없는 것입니다.

따라서 혹시라도 주위에 그런 생각을 가진 친구가 있다면,

속히 바른 복음을 전함으로 하나님 나라의 영원한 생명을 얻는 믿음의 길로 인도하길 바랍니다.

 

묵상질문

 

나사로의 소식을 들은 예수님께서 이틀을 더 지체하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죽은 나사로가 잠들었다는 예수님의 말씀을 제자들은 어떻게 이해했습니까?

예수님은 나사로가 병들었다는 소식을 듣고서도 왜 이틀을 머물다가 출발하셨을까요?

나는 죽음과 부활, 영생에 대해 바른 이해를 가지고 있나요?

 

기도

 

죽음 이후의 삶을 소망함으로써 믿음으로 오늘을 살아가게 해주십시오.
주와 함께 죽고, 주와 함께 사는 매일의 삶이 되게 해주십시오.

 

사단의 권세에 매여 죽음의 공포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많은 사람들 가운데서 예수님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부활의 소망을 영원한 하나님나라를 바라보며 오늘 하루도 승리할 수 있게 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