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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행하신 일을 보고 믿으라 (요한 10:31~42) (CBS)

colorprom 2016. 2. 25. 14:31

[40]행하신 일을 보고 믿으라 2016년 2월 17일 수요일

 

요한복음 10:31~10:42

 

31 유대인들이 다시 돌을 들어 치려 하거늘

32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아버지로 말미암아 여러 가지 선한 일로 너희에게 보였거늘

그 중에 어떤 일로 나를 돌로 치려 하느냐

33 유대인들이 대답하되 선한 일로 말미암아 우리가 너를 돌로 치려는 것이 아니라 신성모독으로 인함이니

네가 사람이 되어 자칭 하나님이라 함이로라

34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 율법에 기록된 바 내가 너희를 신이라 하였노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35 성경은 폐하지 못하나니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사람들을 신이라 하셨거든

36 하물며 아버지께서 거룩하게 하사 세상에 보내신 자가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하는 것으로

너희가 어찌 신성모독이라 하느냐

37 만일 내가 내 아버지의 일을 행하지 아니하거든 나를 믿지 말려니와

38 내가 행하거든 나를 믿지 아니할지라도 그 일은 믿으라

그러면 너희가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고 내가 아버지 안에 있음을 깨달아 알리라 하시니

39 그들이 다시 예수를 잡고자 하였으나 그 손에서 벗어나 나가시니라

 

40 다시 요단 강 저편 요한이 처음으로 세례 베풀던 곳에 가사 거기 거하시니

41 많은 사람이 왔다가 말하되 요한은 아무 표적도 행하지 아니하였으나

요한이 이 사람을 가리켜 말한 것은 다 참이라 하더라

42 그리하여 거기서 많은 사람이 예수를 믿으니라

 

 

성경 길라잡이

 

율법에 기록된 바 내가 너희를 신이라 하였노라 하지 아니하였느냐(34절):

예수님께서는 신성모독에 대한 유대인들의 고소를 논박하기 위해

이스라엘의 사사들을 ‘신들’또는 하나님의 대표자라고 부른 시편 82편 6절을 인용하셨다.

그들은 하나님을 대신해 심판을 행하는 재판장이었다.

그들이 신들이라고 불렸다면, 하나님께서 거룩하게 하사 세상에 보내신 예수님께서

자신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말하는 것이 어찌 신성모독이 되겠는가?(LAB인용)

 

아버지께서 거룩하게 하사(36절):

이는 더러운 것을 깨끗하게 하셨다는 말이 아니라,

본래의 상태로부터 구별(성별)하여 세상에 보내셨다는 의미이다.

 

행하신 일을 보고 믿으라 2016년 2월 17일 수요일

 

예수님의 신성에 대한 논쟁이 지속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스스로를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주장하십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이를 신성모독의 죄라고 비난했습니다.

 

이처럼 예수님께서는 비난하는 사람들을 향해 구약성경의 예를 들어 논증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가르침을 믿지 못하는 사람들을 향해, 행하신 일을 보고 믿으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사역하시는 동안 성부의 뜻을 행하심으로써 성부의 영광을 드러내셨습니다.

그분께서 행하신 놀라운 일들은 모두 아버지의 영광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행하신 일은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보여주는 가장 결정적인 증거들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말과 행동으로 스스로를 증언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그리스도께서는 말씀이 육신이 되신 분으로,

말씀을 이 세상에 그대로 실현하는 하나님의 아들이셨습니다.

세상은 진리 그 자체가 아니라, 진리를 말하는 사람들의 을 보고자 합니다.

예수님을 존경하지만, 예수를 따르는 교회를 보면 믿을 수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들은 진리이신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의 삶이 보고 싶은 것입니다.

 

진리를 말하는 것과 행하는 것은 다른 차원의 문제입니다.

진리는 진리를 말하며 행하는 사람들의 공동체를 통해 증언됩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인정해야 합니다.

진리를 주장하지만 그것을 따라 살지 않는 사람들의 모임은 아무 능력이 없습니다.

진리의 빛을 가릴 뿐이지요.

교회로 존재하는 우리는 진리를 말할 뿐 아니라, 진리를 따라 살아감으로써 진리를 증언해야 합니다.

 

우리 삶을 진지하게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부족하고 불완전하지만 진리를 따라 행하려 자신을 쳐서 말씀에 기꺼이 복종시키는 사람들을 통해서

주의 영광이 나타난다는 것을 기억합시다.

 

삶으로

 

예수님은 자신이 하나님이심을

유대인들과 종교 지도자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여러 가지 방법으로 나타내셨는데,

이제는 구약의 말씀을 들어서까지 이를 정리해주십니다.

 

하지만 그런데도 사람들은 예수님이 태어나신 지역에 대한 편견,

율법에 메인 종교적 우월감, 부정적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의 군중 심리 등으로 인해

다시 돌멩이를 들고 예수님을 쳐 죽이려고 합니다.

어떻게 보면 그들은 이미 어떤 진리를 듣더라도 믿지 않기로 작정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결국 예수님은 이들을 떠나십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의 뇌에 마법이나 초자연적 능력을 사용해서 강제로 자신을 믿도록 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그보다 사람의 지성과 감정, 의지 등 전 인격이 예수님께 반응하여 스스로 믿음에 이르도록

끊임없이 말씀하시고 사랑하시고 능력을 행하시는 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믿지 않기로 작정한 마음’보다 안타까운 것은 없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은 변함이 없지만, 우리의 마음은 상황에 따라 열리기도 하고 닫히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마음이 말씀에 대해 굳어지거나 믿고 싶은 건만 믿는 닫힌 마음이 되지 않도록

늘 힘써야 합니다.


 하나님의 일 2016년 4월 20일 수요일


유대인들, 특히 바리새파 사람들은 시종일관 예수님의 목숨을 노리고 있었습니다.

기회만 생기면 예수님을 죽이려고 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사람이 어떻게 하나님의 일(참된 일)을 하느냐며

신성모독죄를 뒤집어씌워 예수님을 죽이려고 합니다.(요10:33)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에게 단호히 대답하십니다.
예수님은 '나'라는 존재를 믿지 아니할지라도

예수님이 '하나님의 일을 한다'는 것을 보고서 믿으라고 말입니다.


예수님은 이 말씀 속에서 믿음의 깊은 의미를 가르쳐주고 계십니다.

믿음이란, 예수님이 하시는 하나님의 일을 믿는다는 의미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하나님의 일이란,

고통으로부터의 해방(날 때부터 눈먼 사람을 보게 함), 생명을 향한 사랑을 그 핵심에 두고 있겠지요.

(요10:9-10,28)


오늘 본문의 배경은 '성전봉헌절(수전절, 하누카, 빛의 절기)'입니다.

이날은 원래 마카베오 일가(이스라엘의 마지막 독립왕가)가 성전을 봉헌한 사건을 기념하는 날이었는데,

예수님 당시에는 로마로부터의 해방을 희망하는 절기로 기념되었던 듯합니다.


이 성전봉헌절에 예수님을 죽이려는 사람들은 무엇을 믿고 있었던 것일까요?

그리고 우리는 과연 무엇을 믿고 있는 것일까요?

오늘 본문을 따르면,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예수님이 행하신 하나님의 일을 믿는 일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고 있습니까? 그 믿음으로 행합시다. 일합시다.


대결 (2019년 5월 15일 수요일)

살아가다 보면 피할 수 없는 대결상황에 놓일 때가 있습니다.

무언가에 맞서야 할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올바른 선택을 하기 위해 노력합니다.

그런데 '올바름'에 대한 감각이 서로 다르기 때문에 갈등은 쉽게 멈추지 않습니다.


세상에는 자신의 유익을 쟁취하려는 행위를 올바르다고 느끼는 사람이 있는 반면,

보다 정의로운 것을 위해서라면 자신을 내어주는 것이 옳다고 느끼는 사람도 있습니다.


인간은 과연 무엇을 향할 때 자신마저도 내어줄 수 있는 것일까요?


바리새인들은 자신이 올바르다고 생각하는 율법을 판단의 기준으로 삼았습니다.

그 잣대에 맞지 않은 예수님을 공격하고 위협합니다.

대결을 피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그 대결을 통하여 증언하고자 했던 것은 '하나님 안에 존재하는 삶'이었습니다.

그분의 정체성이 ‘하나님과 연합한 존재’였으니, 그가 대결을 통해서 드러내는 것 또한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고 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다는 것" 이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그것을 불경한 생각이라고 여기며, 돌로 쳐죽이려고 했습니다.

바리새인들예수님과의 대결을 통해서 지키고자 했던 것은 정작 '신의 거룩'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적대와 폭력을 통해 나타난 그들의 의도가 이미

하나님의 마음을 담지 못했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 주님, 당신과 연합하기 위해서 살아가는 모든 생명의 분투를 축복하여주소서. 아멘.


묵상질문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돌로 치려한 이유는 무엇인가요?(33절)

예수님이 세례 요한과 다른 점은 무엇인가요?(41절)

유대인들이 분노하며 돌로 예수님을 치려했던 신성모독은 어떤 마음에서 생긴 것일까요?

나의 마음은 말씀을 향해 어느 정도 열려 있나요? 말씀에 대해 어떤 기대를 품어야 할까

 

기도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주님의 뜻을 행하며 살아가는 자들이 되게 해주십시오.
우리가 말과 혀로만 진리를 따르는 것이 아니라 행동과 진실로 진리를 따르게 해주십시오.

 

하나님의 크신 은혜를 힘입어 내 안에 자리한 교만한 마음을 제할 수 있게 하시고,

하나님의 말씀 앞에 늘 겸손하고 열린 마음으로 살아갈 수 있게 해주세요.


예수님을 믿어 하나님의 자녀 된 우리가,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이 무엇인지 잘 분별하여 행할 수 있도록 인도하소서. 아멘.


 참고 / 요한 [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