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힘을 내려놓는 것이 영생입니다 2016년 1월 18일 월요일
요한복음 5:19~5:29
19 그러므로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들이 아버지께서 하시는 일을 보지 않고는 아무 것도 스스로 할 수 없나니
아버지께서 행하시는 그것을 아들도 그와 같이 행하느니라
20 아버지께서 아들을 사랑하사 자기가 행하시는 것을 다 아들에게 보이시고
또 그보다 더 큰 일을 보이사 너희로 놀랍게 여기게 하시리라
21 아버지께서 죽은 자들을 일으켜 살리심 같이 아들도 자기가 원하는 자들을 살리느니라
22 아버지께서 아무도 심판하지 아니하시고 심판을 다 아들에게 맡기셨으니
23 이는 모든 사람으로 아버지를 공경하는 것 같이 아들을 공경하게 하려 하심이라
아들을 공경하지 아니하는 자는 그를 보내신 아버지도 공경하지 아니하느니라
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25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
26 아버지께서 자기 속에 생명이 있음 같이 아들에게도 생명을 주어 그 속에 있게 하셨고
27 또 인자 됨으로 말미암아 심판하는 권한을 주셨느니라
28 이를 놀랍게 여기지 말라 무덤 속에 있는 자가 다 그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29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
성경 길라잡이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19절):
19절부터 23절까지는 예수님께서 자신을 하나님과 동일시하고 있다는 유대인들의 주장(18절)에
예수님께서 답변하신 내용이다.
예수님께서는 4 가지 이유를 말씀하신다.
첫째, 아들은 아버지처럼 행하고 있다(19절).
둘째, 아버지는 아들에게 자신의 계획을 보여주신다(20절).
셋째, 아들은 아버지처럼 생명을 줄 권세를 가지고 있다(21절).
마지막으로, 아들은 아버지께로부터 심판할 권위를 부여받았다(23절).
이런 논증의 목적은 아버지를 공경하듯이 아들을 공경하여 영생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
아들도 자기가 원하는 자들을 살리느니라(21절):
구약성경은 죽은 자를 살리는 것이 하나님만의 고유한 특권이라고 말한다(신 32:39).
따라서 이것은 예수님 자신이 하나님이심을 밝히는 표현이라 할 수 있다.
아버지께서 … 심판을 다 아들에게 맡기셨으니(22절):
심판 역시 하나님만의 독점적인 사역이기 때문에,
이것 역시 예수님이 성부 하나님과 동등하다는 것을 드러내는 자기 계시적 표현이다.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24하반절):
24절부터 29절까지는 아버지처럼 아들을 공경하는 자에게 주시는 생명을 소개한다.
첫째, 이 생명은 현재 ‘얻은’ 생명이자 장차 ‘누릴’ 생명이다.
둘째, 이 생명은 성부 하나님과 성자 예수님의 신적 생명이다.
셋째, 이 생명은 심판에 이르지 않는 생명이다.
이 생명은 오직 믿는 자들에게만(24절) 주어진다.
묵상과 삶
유대인들은 누구보다 예수님을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 오만함 때문에 유대인들은 예수님의 껍데기만을 알았지, 진정한 정체는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 결과, 예수님으로부터 나오는 ‘영생’에 참여하지도 못했습니다.
오직 교만을 버리고 오만한 목을 숙이며 겸손히 예수님께 나아가는 자들만이
예수님의 진정한 모습을 알 수 있습니다.
그분께서는 하나님과 동등한 전능하신 분이시며, 전지하신 분이십니다.
또한 그분께서는 생명의 창조자이며 역사의 심판주이십니다.
이것을 믿는 믿음을 통로로 삼아 질적으로 다른 생명, 즉 영생이 믿는 자에게 흘러옵니다.
그러므로 신앙의 다른 이름은 예수님을 아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앎에 어울리는 태도는 엎드리는 겸손입니다.
겸손의 깊이만큼 생명이 풍성해집니다.
불로장생의 약을 어디에서 찾을 수 있겠습니까?
중국대륙을 통일한 진시황부터 현대의 권력자들까지, 힘을 가진 자들은 온 힘을 다해 그 약을 찾으려 했습니다. 어떤 이는 이웃의 것을 약탈해 자신의 생명을 연장하려 했으며, 또 어떤 이는 과학기술의 발전에서, 또는 인간의 진보에서 그 가능성을 찾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시도는 더욱 많은 사람들의 죽음을 야기하고 끝내 죽음으로 향했을 뿐입니다.
세상은 힘을 가져야만 영원한 생명의 길을 찾을 수 있다 주장하지만,
성경은 우리의 힘을 내려놓는 것이 영원한 생명의 길이라 소개합니다.
움켜쥔 두 손을 하나님 앞에서 펴는 자들만이, 오만한 목을 숙이는 자들만이, 교만한 무릎을 꿇는 자들만이
생명을 찾습니다.
영원한 생명은 노력의 소산이 아닌 은혜의 선물입니다.
삶으로
유대인들은 예수님이 안식일을 범했다고 비방하면서 심지어 예수님을 죽이려고까지 합니다(5:18).
그러자 예수님은 자신이 하나님과 동등하기에 아무런 문제가 될 것이 없다고 말씀합니다.
왜냐하면 당시 유대의 랍비들은
하나님께서 안식일에도 우주의 질서를 유지하는 일을 하고 계심을 인정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하나님만큼은 안식일에도 일을 할 수 있다고 믿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이것을 근거로 자신과 하나님이 동등하기 때문에,
자신 역시 안식일에도 일을 할 수 있다고 주장하시는 것입니다.
이렇듯 예수님은 자신의 행동의 정당성을 하나님께만 둡니다.
곧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보여주시는 대로만, 또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대로만 행하셨다는 것입니다.
물론 예수님은 이것이 유대인들의 반감을 사고,
심지어 그들로부터 살해의 위협을 받게 될 줄을 잘 아셨음에도 그렇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어떠한가요?
우리는 하나님을 주로 믿고 또 아버지라 부르면서
정작 하나님의 뜻과는 상관없이 내 뜻만을 따라 살고 있지는 않나요?
말씀대로 사는 것이 내게 조금의 피해만 줘도
언제든 말씀을 버리고 세상의 이익과 성공을 쫓으려 하지는 않나요?
생명을 전하는 자 (2019년 11월 20일 수요일)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은
하나님께서 그 외아들 예수 그리스도에게 생명을 주어 그 속에 있게 하셨음을 증언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생명이 하나님의 사랑으로 우리에게까지 들어와있음을 고백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우리를 구원하신 십자가와 부활을 믿는 신앙을 통해
그리스도 안에서 생명을 얻었습니다.
그 생명을 증언하는 일의 일환으로 형제와 이웃 사이에서 사랑하며 살아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신앙을 통해서만 자기자신을 넘어 하나님께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통해 우리들 가운데 있는 이웃들에게로 나아갑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하나님과 하나님의 사랑 안에 언제나 머물러있을 수 있습니다.
종교개혁자 마르틴 루터는 그의 설교의 중심을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랑에 두었습니다.
사랑의 능력은 내 앞에 있는 형제의 '사랑스러운 특징'에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고,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솟아나는 까닭에,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사랑의 근원임을 강조했습니다.
인간적인 사랑은 사랑의 대상이 지닌 ‘사랑스러움’에서 생겨난다고들 하고 실제로 그런 면이 없지도 않지만, 하나님의 사랑은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대상 자체를 변화시킵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죽음에서 생명으로 변화시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사랑과 생명'을 간직한 우리는 그 사랑과 생명을 증언하며 살아야 하겠습니다.
+ 주님, 오늘 하루도 나의 삶을 통해 나의 사랑을 통해 그리스도가 증거되게 하소서. 아멘.
묵상질문
당신에게 예수님께서는 어떤 분이십니까? 한편 19부터 23절까지가 보여주는 예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예수님을 믿는 자들에게 주어진 ‘복’이 무엇입니까?(24~29절)
예수님이 자신과 하나님의 동등함을 강조하신 이유는 무엇인가요?
말씀대로 사는 것이 내게 피해를 주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 피해가 정말 피해일까요?
기도
겸손하게 나아가 예수님을 바르게 알게 해주십시오.
힘을 추구하는 세상 속에서 힘을 내려놓는 용기를 주십시오.
오늘날 세상에서 말씀대로 사는 것이 내게 피해가 될 것이라는 지레짐작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보다 담대하게 말씀대로 살아감으로써
오히려 말씀대로 사는 것이 참된 이익이요 소망임을 증거할 수 있게 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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