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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경쟁의 정신을 극복하여 참된 안식으로 (요한 5:1~18) (CBS)

colorprom 2016. 1. 23. 14:52

[14]경쟁의 정신을 극복하여 참된 안식으로 2016년 1월 16일 토요일

 

요한복음 5:1~5:18

 

1 그 후에 유대인의 명절이 되어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올라가시니라

2 예루살렘에 있는 양문 곁에 히브리 말로 베데스다라 하는 못이 있는데 거기 행각 다섯이 있고

3 그 안에 많은 병자, 맹인, 다리 저는 사람, 혈기 마른 사람들이 누워 (물의 움직임을 기다리니

4 이는 천사가 가끔 못에 내려와 물을 움직이게 하는데

움직인 후에 먼저 들어가는 자는 어떤 병에 걸렸든지 낫게 됨이러라)

5 거기 38 해 된 병자가 있더라

 

6 예수께서 그 누운 것을 보시고 병이 벌써 오래된 줄 아시고 이르시되 네가 낫고자 하느냐

7 병자가 대답하되 주여 물이 움직일 때에 나를 못에 넣어 주는 사람이 없어

내가 가는 동안에 다른 사람이 먼저 내려가나이다

8 예수께서 이르시되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하시니

9 그 사람이 곧 나아서 자리를 들고 걸어가니라 이 날은 안식일이니

10 유대인들이 병 나은 사람에게 이르되 안식일인데 네가 자리를 들고 가는 것이 옳지 아니하니라

11 대답하되 나를 낫게 한 그가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하더라 하니

12 그들이 묻되 너더러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한 사람이 누구냐 하되

13 고침을 받은 사람은 그가 누구인지 알지 못하니 이는 거기 사람이 많으므로 예수께서 이미 피하셨음이라

 

14 그 후에 예수께서 성전에서 그 사람을 만나 이르시되

보라 네가 나았으니 더 심한 것이 생기지 않게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하시니

15 그 사람이 유대인들에게 가서 자기를 고친 이는 예수라 하니라

 

16 그러므로 안식일에 이러한 일을 행하신다 하여 유대인들이 예수를 박해하게 된지라

17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 하시매

18 유대인들이 이로 말미암아 더욱 예수를 죽이고자 하니

이는 안식일을 범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자기의 친아버지라 하여 자기를 하나님과 동등으로 삼으심이러라

 

 

성경 길라잡이

 

그 후에 유대인의 명절이 되어(1절):

많은 학자들이 이 명절을 ‘유월절’이라고 생각하며, 이에 기초해 예수님의 공생애를 3년이라고 추정한다.


예루살렘에 있는 양문 곁에 히브리 말로 베데스다라 하는 못이 있는데(2절):

제물로 쓰이던 양들이 오갔던 문이 ‘양문’이기에 베데스다는 성전 가까이에 있었다.

‘베데스다’라는 지명은 ‘자비의 집’이라는 의미지만, 그곳에서는 실상 치열한 경쟁이 벌어졌다.

3, 4절의 ( )부분은 베데스다를 지배하고 있었던 당대의 정신이었다.

그 핵심은 가장 병들고 가난한 자들이 서로를 긍휼히 여기지 않고 경쟁하는 적자생존의 가치관이다.

물의 움직임을 기다리니 … 어떤 병에 걸렸든지 낫게 됨이러라(3b-4절):

이 구절은 괄호로 표시되어 있는데, 이는 이 구절이 원래부터 성경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

어떤 이유에선지 후대에 첨가된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때문에 이것은 단지 병자가 그렇게 믿고 있었다는 것이지, 이 내용 자체를 성경의 진리로 보아서는 안 된다.

 

이 날은 안식일이니(9절):

유대인들이 생각하는 안식일은 사람이 지켜야 할 일련의 규칙이지만,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안식일은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생명과 은혜이다.

유대인들은 자신들의 잘못을 깨닫지 못하고 도리어 예수님을 죽이려 한다(18절).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14절): 이것은 모든 병이 다 죄로부터 기인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본문의 병자의 경우에는 그가 병이 든 이유가 개인적인 죄 때문일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경쟁의 정신을 극복하여 참된 안식으로 2016년 1월 16일 토요일

 

성전 가까이에 있었던 ‘자비의 집’에서 한 줌의 자비도 찾을 수 없습니다.

온갖 병든 사람들만이 그곳에 머물렀습니다.

그들을 사랑으로 돌보아야 할 가족들은 어디에 있습니까?

 

‘먼저’(4절)라는 경쟁의 가치는 병든 사람들을 치열한 경쟁 속으로 내몰았고,

그들은 서로를 불쌍히 여기기보다는 경쟁의 대상으로만 보았습니다.

예루살렘 성전은 이런 참상을 해결할 의지도, 힘도 없었습니다.

대신 경쟁을 더더욱 부추겼습니다.

 

세상의 정신이 지배하던 자리에 예수님께서 찾아오셨습니다.

모든 책임을 약자에게 전가하는 경쟁의 정신은 예수님 앞에서 무력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그 정신 속에서 허덕이는 자에게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라고 명하셨습니다.

그 자리를 벗어난 이들만이 참된 안식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경쟁’의 질서는 언제나 사람을 승자와 패자, 강자와 약자로 구별합니다.

그래서 승자와 강자는 모든 것을 독식합니다.

또한 그 질서 아래 패자와 약자는 자신들의 ‘무력함’만을 탓해야 할 뿐,

사회의 구조를 탓하는 것은 허용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경쟁의 질서에서는 모두가 패자입니다.

승자들은 오만한 우월감 속에서, 패자는 왜곡된 열등감 속에서 사람을 더 이상 사람답게 대하지 못합니다.

또한 우리가 겪는 고통의 진정한 원인도 발견하지 못합니다.


이런 경쟁의 질서가 ‘선의의 경쟁’이라는 이름으로 교회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교회와 교회가 교세를 두고 경쟁하며, 부서와 부서가 경쟁합니다.

 

하지만 진정한 안식은 경쟁에서 승리하는 것에 있지 않습니다.

도리어 경쟁의 질서를 벗어나는 데 있습니다.

‘비교’와 ‘경쟁’의 자리에서 벗어나 참된 안식으로 오십시오.

 

삶으로

 

요한복음 4장에서 예수님은 구약적인 예배를 새로운 예배로 대체하는 모습을 보여주셨습니다.

곧 성전 중심의 예배에서 예수님 중심의 새로운 예배가 시작된 것입니다.

 

이제 5장에서부터는 안식일, 유월절, 초막절과 같은 구약의 절기를

예수님 자신으로 대체하는 모습을 보여주십니다.

 

원래 하나님께서 안식일에 금하신 일은 생계를 위한 직업적인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유대인들은 거기에 39가지의 추가 규정을 더하여

병고침과 같은 정말 꼭 필요한 일조차 할 수 없게 만듦으로써,

오히려 안식일에 사람들을 고통스럽게 만들어 버렸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38년 된 병자가 고통 중에 누워있었던 날이 안식일임을 강조함으로써,

당시 유대인들의 안식일이 생명과 기쁨을 주는 날이 아니라 고통을 주는 날이었음을 잘 드러내줍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바로 이 안식일에 병자를 고치심으로써, 안식일의 참된 의미를 나타내십니다.

참된 안식인간을 위한 것이며, 그것은 예수님께로부터 온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예수님을 믿고 따를 때, 비로소 거기서 인간을 위한 참된 안식이 가능한 것입니다.

혹시 나는 예수님과 상관없이 스스로의 힘으로 안식을 누릴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지는 않나요?

 

 생명이신 말씀 (2018년 6월 6일 수요일)


오늘 베데스다 연못 이야기는 경쟁사회의 한 단면을 보는 듯합니다.

물에 먼저 들어가기 위해 병든 사람들이 필사적으로 밀고 당기다가 혹시 넘어지기도 했을 것입니다.

그런 데다 연못의 전설처럼 한 사람이 치유된다고 해도,

상대적으로 사소한 질병을 가진 사람이 먼저 물에 들어갈 가능성이 높았습니다.

그러니 정작 치유가 시급한 38년 된 중환자는 자기 차례를 기약할 수조차 없었을 것입니다.


사람들은 38년 동안이나 앓고 있는 것에 대하여 그의 죄 때문이라고 쉽게 단정했습니다.

당시 사람들의 기준으로 보면 그는 구원순위에서 저 멀리 떨어져있는 사람입니다.


예수님은 그에게 아무 것도 요구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그를 측은히 여기시고 병을 고쳐주셨습니다.


때로 우리는 자신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어려움에 처하게 되면

가만히 앉아서 마술 같은 일이 발생하기를 기다립니다.

하지만 천사가 내려와 연못 물을 움직이는 것 같은 마술은 결코 일어나지 않습니다.

우리가 그런 마술을 기다린다면 우리는 무기력한 하루를 보내게 될 뿐입니다.


구약의 마지막 선지자 이후 예수님 오실 때까지 400년간 긴 침묵이 있었습니다.

그 긴 침묵을 깨고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셨습니다.

우리에게 손을 내밀어 우리를 고쳐주셨습니다.

38년간 앓고 있는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베데스다 연못도, 물을 휘저어줄 천사도 아니었습니다.

그에게 필요한 것은 "일어나 걸어가라"는 예수님의 말씀 한 마디였습니다.

우리도 그렇습니다.


+ 주님, 나를 불쌍히 여겨주소서! 아멘.


묵상질문

 

베데스다에서 벌어지고 있는 참상이 무엇입니까?

베데스다를 지배하고 있는 정신은 무엇입니까?(3, 4절)

예수님께서는 그 신화에 어떻게 대응하십니까? 그 결과는 무엇입니까?(8, 9절)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병자를 고친 것은 무엇을 나타내기 위함인가요?

참된 안식을 누리기 위해 내 삶에서 변화되어야 할 것들은 무엇인가요?

 

기도

 

신앙의 이름으로 포장된 세상의 정신을 거부하게 해주십시오.
경쟁이 아닌 사귐으로 참된 안식을 누리게 해주십시오. 

 

게임이나 SNS, 친구들, 또는 그 외 다른 것들을 통해 안식을 누릴 수 있다는 세상의 거짓에 속지 않게 하시고, 예수님을 통해 참된 안식을 누릴 수 있음을 믿고 따르는 삶을 살게 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