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사야]

[93]윤리적인 삶과 참된 예배 ( 이사 58:1~14) (CBS)

colorprom 2015. 10. 16. 16:48

윤리적인 삶과 참된 예배 2015년 10월 16일 금요일


이사야 58:1~58:14

 

1크게 외치라 목소리를 아끼지 말라 네 목소리를 나팔 같이 높여

내 백성에게 허물을, 야곱의 집에 그들의 죄를 알리라

 

2그들이 날마다 나를 찾아 나의 길 알기를 즐거워함이

마치 공의를 행하여 그의 하나님의 규례를 버리지 아니하는 나라 같아서

의로운 판단을 내게 구하며 하나님과 가까이 하기를 즐거워하는도다

 

3우리가 금식하되 어찌하여 주께서 보지 아니하시오며

우리가 마음을 괴롭게 하되 어찌하여 주께서 알아 주지 아니하시나이까 하느니라

보라 너희가 금식하는 날에 오락을 구하며 온갖 일을 시키는도다

4보라 너희가 금식하면서 논쟁하며 다투며 악한 주먹으로 치는도다


너희의 오늘 금식하는 것은 너희의 목소리를 상달하게 하려는 것이 아니니라

5이것이 어찌 내가 기뻐하는 금식이 되겠으며 이것이 어찌 사람이 자기의 마음을 괴롭게 하는 날이 되겠느냐 그의 머리를 갈대 같이 숙이고 굵은 베와 재를 펴는 것을 어찌 금식이라 하겠으며

여호와께 열납될 날이라 하겠느냐

 

6내가 기뻐하는 금식은 흉악의 결박을 풀어 주며 멍에의 줄을 끌러 주며

압제 당하는 자를 자유하게 하며 모든 멍에를 꺾는 것이 아니겠느냐

7또 주린 자에게 네 양식을 나누어 주며 유리하는 빈민을 집에 들이며 헐벗은 자를 보면 입히며

또 네 골육을 피하여 스스로 숨지 아니하는 것이 아니겠느냐

 

8그리하면 네 빛이 새벽 같이 비췰 것이며 네 치유가 급속할 것이며

네 공의가 네 앞에 행하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뒤에 호위하리니

9네가 부를 때에는 나 여호와가 응답하겠고 네가 부르짖을 때에는 내가 여기 있다 하리라

 

만일 네가 너희 중에서 멍에와 손가락질과 허망한 말을 제하여 버리고

10주린 자에게 네 심정을 동하며 괴로와하는 자의 심정을 만족하게 하면

 

네 빛이 흑암 중에서 떠올라 네 어둠이 낮과 같이 될 것이며

11여호와가 너를 항상 인도하여 메마른 곳에서도 네 영혼을 만족하게 하며 네 뼈를 견고하게 하리니

너는 물 댄 동산 같겠고 물이 끊어지지 아니하는 샘 같을 것이라

12네게서 날 자들이 오래 황폐된 곳들을 다시 세울 것이며 너는 역대의 파괴된 기초를 쌓으리니

너를 일컬어 무너진 데를 수보하는 자라 할 것이며 길을 수축하여 거할 곳이 되게 하는 자라 하리라

 

13만일 안식일에 네 발을 금하여 내 성일에 오락을 행하지 아니하고

안식일을 일컬어 즐거운 날이라, 여호와의 성일을 존귀한 날이라 하여 이를 존귀히 여기고

네 길로 행하지 아니하며 네 오락을 구하지 아니하며 사사로운 말을 하지 아니하면

14네가 여호와의 안에서 즐거움을 얻을 것이라

내가 너를 땅의 높은 곳에 올리고 네 조상 야곱의 업으로 기르리라


여호와의 입의 말씀이니라

 

성경 길라잡이    

 

금식하되 어찌하여 … 온갖 일을 시키는도다(3절):

이방 우상숭배자들은 금식으로 자신의 신을 기쁘게 해주면 그 신이 자신의 요구를 채워준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 이스라엘 역시 이런 태도로 금식을 행했고,

따라서 그에 따른 결과가 없자 하나님께 불평했던 것이다.

즉 그들의 금식은 하나님과 상관없는 이방종교의 금식이었던 것이다.


어찌 내가 기뻐하는 금식이 되겠으며 … 아니겠느냐(5-6절):

형식을 통하여 하나님께 도달하려는 자들은 항상 그 형식에만 만족하고,

정작 하나님의 의도에는 별 관심이 없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금식은 음식을 금하는 형식이 아니라 이웃에게 선을 베푸는 것과 연결되어 있었다.

자선의 가치는 떡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진정한 마음에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네가 부를 때에는 나 여호와가 응답하겠고(8절):

윤리적이고 정의로운 삶을 사는 자의 기도를 하나님께서 응답해주신다.


물댄 동산(11절): 에덴을 생각나게 하는 이미지를 차용하였다.

하나님의 넘치는 은혜와 회복된 이스라엘을 상징하고 있는데,

이사야 1장에 등장하는 물 없는 동산과 대조된다.

 

윤리적인 삶과 참된 예배 2015년 10월 16일 금요일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형식적인 예배를 꾸짖으십니다.

겉으로 보기에 그들은 하나님의 뜻을 구하며 하나님께서 지시하시는 길을 가려고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예배를 거부하십니다.

형식적이고 종교적인 행위를 정성을 다해 열심히 해도,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예배를 받지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참된 예배는 형식적인 예배가 아니라, 선행과 공의가 있는 삶입니다.

고아와 과부를 불쌍히 여기고 돌보는 자들이 드리는 예배가 참된 예배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드리는 예배는 우리의 삶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주일날 하나님께 예배드리지만,

6일 동안의 윤리적인 삶이야말로 우리가 드리는 예배의 본질을 결정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가 참된 예배를 드릴 때 비로소 물댄 동산처럼 풍성한 은혜를 누릴 수 있습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어려운 이웃들의 이야기를 많이 듣고 접합니다.

실제로 소외되고 가난하며 억울한 이웃들이 우리 주위에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그들과 함께 울어주지 못한다면,

우리가 드리는 예배는 한낱 종교행위가 되고 맙니다.

아무리 나 혼자 악행을 일삼지 않고 경건하게 지낸다고 한들 하나님께서 기뻐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나만의 하나님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시고 사랑하시는 다른 사람들이 고통과 슬픔에 빠져 있다면,

우리의 심정이 동하여 함께 고통스러워하며 그들을 고통에서 구해내려 노력해야 합니다.

이러한 삶이 우리가 드리는 예배의 본질을 결정하게 될 것입니다.

 

삶으로

 

혹시 고난주간이나 교회의 다른 행사 때문에 금식에 참여해 본적 있나요?

금식이란 일정 기간 음식을 먹지 않고 전적으로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일종의 신앙고백과 같은 행위입니다.

구약시대에는 하나님이 의무적으로 대속죄일에 금식을 행하도록 하셨는데,

그 이유는 그들이 참된 회개로 하나님 앞에 매년 나아오길 바랐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점차 이와 같은 금식의 근본정신은 사라지고, 단순히 금식을 했는지 안했는지

그 행위의 유무만 중요하게 생각하는 형식적인 것으로 변질되었습니다.


그래서 어떤 목사님은 이 같이 근본정신은 없고 형식만 남은 금식을

우스갯소리로 ‘굶식’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하나님과 상관없이 단순히 한 끼 식사를 거른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참된 ‘금식’을 원하시지 형식적인 ‘굶식’을 원하시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이번 기회에 금식하면서 살이나 좀 빼야지’,

‘이왕이면 저녁에 금식해서 다이어트에 도움이 되게 해야지’하는 마음으로 금식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육적인 욕심들을 내려놓고 하나님을 찾으며 나아가

이웃들, 특히 굶주리고 소외당한 자들을 기억하는 금식을 행하기 바랍니다.

그러한 금식이야말로 비록 육체는 주려도 영혼은 풍성한 배부름을 얻도록 할 것입니다.


온전한 금식 2017년 3월 1일 수요일


인간의 근원적인 본능 중에 가장 일차적인 것으로 식욕(食慾)을 꼽는 데 어느 누구도 주저하지 않을 것입니다. 나머지 두 가지는 성욕, 수면욕이라고 하지요.


근본적인 욕구인 식욕을 통제하는 것은 그 자체가 엄청난 정신적, 육체적 고통을 초래합니다.

금식에 해당되는 히브리어 '촘'은,(느9:1) 음식에 대한 철저한 절제와 관계되어있습니다.

이 말의 동의어인 '아나 네피쉬'는,(레16:29) '자신의 영혼을 괴롭힌다'란 뜻을 갖고 있으니,

금식의 고통이 어느 정도인지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러한 금식은 당면한 큰 문제가 하나님의 도우심 없이는 극복될 수 없을 때 시행됩니다.

금식은 하나님의 도우심에 전적으로 의존하겠다는 표현인 것입니다.

그래서 금식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이지요.


그러나 수술용 칼이 괴한에게 들려질 때 흉기가 되듯,

금식 역시 잘못 행해지면 종교적 위선과 이기적 수단이 되어버리고 맙니다.

계명은 순전한 것이지만, 바리새인들이 이것을 구원의 걸림돌로 전락시킨 것도 바로 이런 사정 때문입니다.(마22:29, 막12:24-27)


사순절이 시작되는 성회수요일 아침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산상수훈의 말씀이 우리의 마음을 새롭게 합니다. "너는 금식할 때에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얼굴을 씻으라.

이는 금식하는 자로 사람에게 보이지 않고 오직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보이게 하려 함이라."

(마6:17-18)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금식 2017년 3월 4일 토요일


예수님의 수난을 묵상하는 사순절기 동안 성도들의 신앙생활에서 강조되는 것은 절제 회개입니다.

온통 자신을 향하던 삶의 방향을 하나님과 이웃을 바라보도록 하는 데에 그 목적이 있습니다.


절제와 회개를 표현하는 대표적인 방법 중 하나가 금식입니다.

금식은 인간의 가장 강한 욕구인 음식을 제한하는 것으로 엄청난 육체적·정신적 고통을 통해

자신의 무력감을 깨닫고 하나님께 온전히 집중하며 그분의 힘에 의지하게 만듭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서 금식하는 사람을 하나님께서 심하게 질책하신 까닭은

금식을 자신의 종교적 의로움을 자랑하는 데 쓰려 하고, 남에게 보이려 하는 잘못된 태도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질문하십니다.

"너희가 금식하고 애통하였거니와 그 금식이 나를 위하여, 나를 위하여 한 것이냐?"(슥7:5)

아울러 하나님의 정의와 진리를 추구하기보다는

자기이익만을 구하거나 가난한 이웃을 돌보지 않는 것위선적인 금식에 다름 아닙니다.


신앙은 내가 좋아하는 것을 바라고 행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명하신 것을 따르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금식은 형식뿐인 신앙이 아니라

구체적으로 가난한 사람과 소외된 사람들을 향한 우리들의 작은 실천입니다.(사58:6)

우리는 그 실천의 모본을, 제자들의 발을 씻겨주시는 예수님의 섬김의 모습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요13:14)


이 사순절기, 우리도 예수님을 본받아 이웃을 위해 작은 도움을 실천하는 것으로

주님께 향기로운 예배를 드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금식은 통로다 (2020년 2월 29일 토요일)


"사람이 먹고 마시며 수고하는 가운데서 심령으로 낙을 누리게 하는 것보다 나은 것이 없나니"라고 기록된 것처럼,(전2:24, 개역한글) 인간에게 있어 가장 강력한 욕구는 식욕일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금식'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과학적으로, 금식을 하면 위가 비워지고, 공복의 상태에서 몸 안의 노폐물이 연소되어

백혈구도 더 활발하게 움직이기 때문에 자연히 면역력이 월등히 높아진다고 합니다.


하지만 무조건 밥만 안 먹으면 금식일까요? 아닙니다. 금식하는 자세가 중요합니다.

오늘 본문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금식을 하고도 이사야에게 훈계를 받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들이 외식적인 금식을 했기 때문입니다.


금식하나님 앞에 나를 낮추고 겸허한 자세로 해야 합니다.

세상에서의 유익함을 추구하는 것을 삼가며, 오락들을 절제하는 것도 포함됩니다.

사순절 금식기간을 통해 미디어금식을 이야기 하는 분들의 마음은 바로 이 거룩함에 대한 마음일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하나님이 기뻐하는 금식'은

"흉악의 결박을 풀어 주며 멍에의 줄을 끌러 주며 압제 당하는 자를 자유하게 하며

모든 멍에를 꺾는 것이 아니겠느냐

또 주린 자에게 네 양식을 나누어 주며 유리하는 빈민을 집에 들이며 헐벗은 자를 보면 입히며

또 네 골육을 피하여 스스로 숨지 아니하는 것이 아니겠느냐"입니다.(사58:6-7)


이 말씀처럼 주님의 고난을 묵상하는 사순절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금식에 우리의 마음을 모아 동참합시다.


+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금식을 통하여

교회와 이웃과 나라와 민족을 살리는 축복의 통로로서의 역할을 능히 감당케 하소서. 아멘.


묵상질문

 

6일 동안의 윤리적인 행위와 주일의 영적인 행위는 어떤 관계가 있을까요?

형식에만 치우친 금식과 예배에 대해 하나님은 어떤 태도를 보이시나요?

하나님과 이웃을 향한 섬김이 형식적이지 않고 참되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기도

 

우리가 드리는 예배가 위선으로 가득 찬 예배가 아니라, 이웃들의 고통을 함께 나눔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으시는 참된 예배가 되게 해주십시오.

 

하나님과 아무런 상관없이 형식적이고 위선적인 신앙과 종교 행위에 빠진 우상숭배자가 아니라

진정으로 하나님과 이웃을 향한 섬기는 하나님의 사람이 되게 해주세요.

 

순전한 마음과 통회하는 심령으로 드리는 금식기도를 통하여 하나님께 집중하게하소서. 아멘.


하나님, 형식적인 신앙이 아닌, 온전히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을 행할 수 있도록 우리를 이끌어주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