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길, 죄의 길 2015년 10월 15일 목요일
이사야 57:14~57:21
14그가 말하기를 돋우고 돋우어 길을 수축하여 내 백성의 길에서 거치는 것을 제하여 버리라 하리라
15지극히 존귀하며 영원히 거하시며 거룩하다 이름하는 이가 이같이 말씀하시되
내가 높고 거룩한 곳에 있으며 또한 통회하고 마음이 겸손한 자와 함께 있나니
이는 겸손한 자의 영을 소생시키켜 통회하는 자의 마음을 소생시키려 함이라
16내가 영원히 다투지 아니하며 내가 끊임없이 노하지 아니할 것은
내가 지은 그의 영과 혼이 내 앞에서 피곤할까 함이라
17그의 탐심의 죄악으로 말미암아 내가 노하여 그를 쳤으며 또 내 얼굴을 가리고 노하였으나
그가 아직도 패역하여 자기 마음의 길로 걸어가도다
18내가 그의 길을 보았은즉 그를 고쳐 줄 것이라
그를 인도하며 그와 그를 슬퍼하는 자들에게 위로를 다시 얻게 하리라
19입술의 열매를 창조하는 자 여호와가 말하노라
먼 데 있는 자에게든지 가까운 데 있는 자에게든지 평강이 있을지어다 평강이 있을지어다
내가 그를 고치리라 하셨느니라
20그러나 악인은 평온함을 얻지 못하고
그 물이 진흙과 더러운 것을 늘 솟구쳐 내는 요동하는 바다와 같으니라
21내 하나님의 말씀에 악인에게는 평강이 없다 하셨느니라
성경 길라잡이
통회하는 자의 마음을 소생시키려 함이라 내가 영원히 다투지 아니하며(15-16절):
여기서 ‘통회’는 ‘부서진 마음’, ‘상한 마음’을 뜻하는데, 통상적으로는 회개하는 마음을 가리킨다.
이는 우리가 하나님 앞에 한 번 회개한 것에 대하여 모두 용서하시고,
또 용서하신 후에는 다시 끄집어내는 일이 없도록 하겠다는 말이다.
자기 마음의 길로 걸어가도다(17절):
새변역 성경은 이를 “제 마음에 내키는 길로 가버렸다.”라고 번역하며,
NIV는 “he kept on in his willful way”라고 번역하고 있다.
이스라엘의 길이 자기 마음의 생각, 자기 욕망과 뜻에 이끌리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악인은 … 평강이 없다 하셨느니라(20-21절):
하나님 편에서는 악한 죄를 저지른 사람이 악인이 아니라, 회개하지 않은 사람이 악인이다.
그래서 똑같은 죄를 저질렀다 하더라도 회개한 사람에게는 평강이 주어지지만,
회개치 않은 사람에게는 평강이 주어지지 않도록 하시겠다는 것이다.
마음의 길, 죄의 길 2015년 10월 15일 목요일
선지자 이사야는 이스라엘이 걷고 있는 길을 자기 마음이 내키는 대로 가는 길이라고 말했습니다.
성경은 이것을 죄악의 길이라고 경고합니다.
세상의 그 무엇보다 부패한 것이 사람의 마음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마음에는 탐심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탐심은 죄악이 낳은 욕망입니다.
이 욕망은 인간이 태어나 자라는 동안 독버섯처럼 자랍니다.
서서히 자라 결국에는 인간을 지배하게 됩니다.
어떤 인간도 탐심을 완전히 제거하지 못합니다.
싸우기도 하고 가끔 승리하기도 하지만, 결국에는 악한 욕망에 끌려다니고 맙니다.
자기 욕망을 끝내 다스리지 못하는 것으로부터 인간의 절망이 시작됩니다.
탐욕에 지배당하는 마음을 고치는 힘은 하나님께로부터 와야 합니다.
“내가 너를 고치리라!”라고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있어야만 새롭게 될 수 있습니다.
우리 마음이 본질적으로 선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우리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는 우리 본성의 소리를 들어야
참 삶을 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노력이 사실 늘 실패해왔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인기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마음의 소리를 따라 살아가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나를 위해, 내 기쁨을 위해 살아가기를 좋아합니다.
그래서 마음이 원하는 대로 행하는 것을 마다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마음의 소리를 따라가면 결국 우리는 탐욕스러운 본모습과 마주치게 됩니다.
거짓과 위선으로 가득한 추한 몰골에 모두 소스라쳐 놀라고 맙니다.
우리 마음속에서는 온전한 평화의 길을 찾을 수 없습니다.
우리 마음에는 추하고 악한 면도 분명히 있기 때문입니다.
선하신 하나님께로 나아가 그의 음성에 귀 기울이는 삶을 배워야만 합니다.
삶으로
하나님은 우리가 행하는 죄악에 대해 단순히 회개만 요구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하나님은 우리가 회개할 때 그에 따른 구원을 약속하시는 한편,
이전에 행하던 우리의 죄악을 다시는 기억하지 않으시며
우리 가운데 평안한 마음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때문에 누구든지, 또 어떤 죄악이든지 하나님께 회개하고 돌아오면,
하나님은 그를 용서하시고 받아주시며, 다른 무엇과 비교할 수 없는 평안을 주실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회개’에 대해 한 가지 생각해볼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단순히 하나님 앞에 나아와서 자신의 잘못을 아뢰고 용서받는 것만을 회개라고 이야기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보다 참된 회개는 죄악 중에서라도 하나님을 바라보게 함으로써
하나님이 자신에게 원하시는 삶이 무엇인지를 알게 해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비단 하나님께만 죄에 대한 용서를 구하지 않고
나의 죄로 인해 피해를 보거나 상처를 입은 사람들에게까지 용서를 구하도록 이끄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함으로써 마음속에 진정한 평안이 일어나도록 하는 것입니다.
이 같이 진정으로 회개하는 자를 회복하시겠다고 약속하신 하나님을 믿고 회개함으로써
깨어진 모든 관계와 마음들이 회복되는 은혜를 누리기 바랍니다.
겸손한 사람 2016년 11월 18일 금요일
'겸손' 은 굽신거림, 비굴함, 나서지 않음 같은 행동을 가리키는 말이 아닙니다.
겸손은 '타인과 함께 판단하기'를 실천하는 '공정한' 삶의 태도를 가리킵니다.
사람들은 다양한 삶의 경험 속에서 자기만의 판단능력을 키워가게 됩니다.
그러다보면, 어느 순간 자신의 판단내용을 틀지우고 고정시키게 마련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굳어지면 그것에 거꾸로 지배받게 될 수가 있습니다.
고정관념이 구체적인 경험을 압도하는 것이지요.
그런 의미에서 사람의 경험은 이중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
경험은 사람을 지혜롭게도 하지만, 경험내용에만 갇혀있는 판단은 사람을 고집스럽게도 만드니까요.
그러므로 내 판단만 제일이라고 내세워서는 안 됩니다. 내 판단은 내 경험의 종합물일 뿐입니다.
내 판단을 다른 사람들의 판단과 비교·대조해보면서 균형잡을 필요가 있습니다.
바로 그것, 각 사람의 판단이 다를 수 있으며 저마다 유의미함을 아는 것이 겸손의 출발지점입니다.
즉 나 자신의 한계를 알 때 겸손한 삶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아울러, 타인의 한계 또한 이해하는 것이 겸손한 삶에서 중요합니다.
겸손은 하나님의 눈길 앞에서 나 자신을 비롯하여 그 어떤 사람도 '절대화'하지 않는 것을 의미합니다.
미가 선지자는 말합니다.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은
오직 정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 (미6:8)
묵상질문
하나님께서 동행해주시는 사람은 어떤 사람들인가요?(15절)
하나님께서 우리를 용서하신 증거는 어떤 것으로 나타날 것이라고 약속하셨나요?
회개치 못함으로 여전히 회복되지 않고 있는 마음이나 관계들은 무엇인가요?
기도
우리의 길을 인도하셔서 하나님의 뜻을 따라 행하게 해주십시오.
우리 마음에 가득한 악한 욕망을 이기게 하시고, 선하고 의로운 말씀으로 채워주십시오.
이 땅에 참된 회개가 일어나게 하시고
그럼으로써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깨어진 마음들과 관계들이 회복되는 역사가 있게 해주세요.
하나님, 우리가 주님 앞에서 스스로 지혜로운 척하며 살지 않게 하시고
하나님의 헤아릴 수 없는 깊은 지혜의 말씀에 귀기울이며 살아가게 하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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