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구원과 공의 2015년 10월 6일 화요일
이사야 51:1~51:16
1의를 따르며 여호와를 찾아 구하는 너희는 내게 들을지어다
너희를 떠낸 반석과 너희를 파낸 우묵한 구덩이를 생각하여 보라
2너희의 조상 아브라함과 너희를 낳은 사라를 생각하여 보라
아브라함이 혼자 있을 때에 내가 부르고 그에게 복을 주어 창성하게 하였느니라
3나 여호와가 시온을 모든 황폐한 곳들을 위로하여
그 사막을 에덴 같게, 그 광야를 여호와의 동산 같게 하셨나니
그 가운데에 기뻐함과 즐거워함과 감사함과 창화하는 소리가 있으리라
4내 백성이여 내게 주의하라 내 나라여 내게 귀를 기울이라 이는 율법이 내게서부터 나갈 것임이라
내가 내 공의를 만민의 빛으로 세우리라
5내 공의가 가깝고 내 구원이 나갔은즉 내 팔이 만민을 심판하리니 섬들이 나를 앙망하여 내 팔에 의지하리라
6너희는 하늘로 눈을 들며 그 아래의 땅을 살피라 하늘이 연기 같이 사라지고 땅이 옷 같이 해어지며
거기에 사는 자들이 하루살이 같이 죽으려니와 나의 구원은 영원히 있고 나의 공의는 폐하여지지 아니하리라
7의를 아는 자들아, 마음에 내 율법이 있는 백성들아,
너희는 내게 듣고 그들의 비방을 두려워하지 말라
사람의 비방에 놀라지 말라
8옷 같이 좀이 그들을 먹을 것이며 양털 같이 좀벌레가 그들을 먹을 것이나
나의 공의는 영원히 있겠고 나의 구원은 세세에 미치리라
9여호와의 팔이여 깨소서 깨소서 능력을 베푸소서 옛날 옛 시대에 깨신 것 같이 하소서
라합을 저미시고 용을 찌르신 이가 어찌 주가 아니시며
10바다를, 넓고 깊은 물을 말리시고 바다 깊은 곳에 길을 내어 구속 받은 자들을 건너게 하신 이가
어찌 주가 아니시니이까
11여호와께 구속받은 자들이 돌아와 노래하며 시온으로 들어오니
영원한 기쁨이 그들의 머리 위에 있고 슬픔과 탄식이 달아나리이다
12이르시되 너희를 위로하는 자는 나 곧 나이니라
너는 어떠한 자이기에 죽을 사람을 두려워하며 풀 같이 될 사람의 아들을 두려워하느냐
13하늘을 펴고 땅의 기초를 정하고 너를 지은 자 여호와를 어찌하여 잊어버렸느냐
너를 멸하려고 준비하는 저 학대자의 분노를 어찌하여 항상 종일 두려워하느냐 학대자의 분노가 어디 있느냐
14결박된 포로가 속히 놓일 것이니 죽지도 아니할 것이요 구덩이로 내려가지도 아니할 것이며
그의 양식이 부족하지도 아니하리라
15나는 네 하나님 여호와라 바다를 휘저어서 그 물결을 뒤흔들게 하는 자이니 그의 이름은 만군의 여호와니라
16내가 내 말을 네 입에 두고 내 손 그늘로 너를 덮었나니
이는 내가 하늘을 펴며 땅의 기초를 정하며 시온에게 이르기를 너는 내 백성이라 말하기 위함이니라
성경 길라잡이
라합을 저미시고 용을 찌르신 이가 …(9절):
여기서 ‘라합’과 ‘용’은 고대근동 신화에 자주 등장하는 괴물들이다.
이들은 세상의 질서와 균형을 파괴하려는 자들인데, 성경에 이 같은 신화적 이미지들을 사용한 것은
당시 그 지역에 잘 알려진 이야기들을 등장시켜 무엇인가를 설명하려는 의도이다.
성경에서 라합은 이집트를 상징하며, 용은 이집트의 왕 바로를 상징한다.
너는 어떠한 자이기에 … 풀 같이 될 사람의 아들을 두려워하느냐(12절):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들을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능력을 믿기보다
눈에 보이는 인간들의 권세를 두려워했다.
그래서 자신들을 위로하고 구원하실 수 있는 하나님을 보지 못하고 잊어버린 것이다.
결국 죽게 될 사람을 두려워하는 자는 하나님을 바라볼 수 없게 된다.
묵상과 삶
선지자 이사야의 예언 속에 등장하는 하나님의 모습은 이중적인 이미지를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구원하시는 하나님이시면서, 동시에 심판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고난 중에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들에게는 구원하시는 하나님으로,
교만에 취해 자기 힘을 자랑하며 살아가는 자들에게는 심판하시는 하나님으로 나타나십니다.
구원의 날에는 이처럼 이중적인 의미가 있습니다.
구원의 날은 은혜의 날인 동시에 진노의 날이 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구원이란 하나님께서 일하셔서 공의로운 통치를 실현하시는 것입니다.
구원과 공의가 하나님 안에서 완전한 조화를 이루어 세상에서 실현되는 것입니다.
선지자 이사야는 이 환상을 계시하여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믿고 순종해야 하는 하나님께서는 구원하시는 공의로우신 하나님이십니다.
믿음은 하나님을 올바로 아는 지식에 근거합니다.
자신이 상상한 어떤 신을 하나님이라고 생각하고 믿는 것은 우상숭배와 같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이 보여주는 하나님을 알아야 하고, 바로 그 하나님을 믿어야 합니다.
성경은 하나님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이시며, 동시에 공의로 심판하시는 하나님으로 그리고 있습니다.
성경은 이 분명한 사실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이해를 구하거나, 동의를 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하나님이심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믿음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성경 앞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선택은 단순합니다. 믿거나 혹은 믿지 않거나 둘 중 하나입니다.
믿는 자에게는 구원이, 믿지 않는 자에게는 심판이 예정되어있다는 것도 성경이 명백히 선언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믿음 주시기를 기도합시다.
삶으로
하나님은 예루살렘을 이스라엘이 고난에서 회복되는 상징으로 다루시면서
예루살렘에게 위로의 말씀을 선언하십니다.
곧 그들의 조상인 아브라함을 상기시키고
그에게 주신 하나님의 회복의 약속을 반드시 이루실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하는 자들은 결코 지금 당하는 고난에 위축되거나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위로와 회복을 기다리면 기꺼이 인내합니다.
그런 자들에게서 회복의 약속이 성취될 것이요,
그 때에 온 예루살렘에 영원한 기쁨과 찬송이 넘치며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선포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위로하시는 분입니다. 이는 우리가 어떠한 상황에 있든지 상관없이 진리입니다.
때문에 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 1번이 말하듯이,
살아서나 죽어서나 나의 유일한 위로는 예수님이라고 고백할 수 있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죄로 인해 하나님을 떠난 비참한 존재인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요 백성으로 삼아주셨는데
이보다 더 큰 위로가 어디에 있을까요?
이제 우리는 이와 같은 위로 아래에 있는 자들로서 그에 합당한 삶을 살아감은 물론,
다른 사람들 역시 동일한 위로 아래로 나아올 수 있도록 비전을 만들고 실천해가야 합니다.
묵상질문
하나님의 공의와 구원이 이루어질 때 만민에게 일어나는 일은 무엇인가요?(5절)
의를 아는 하나님의 백성들은 사람들의 비난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나요?(7절)
하나님은 예루살렘을 위로하는 자가 누구라고 말씀하시나요?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위로 아래 있는 자로서 어떤 삶을 살아야 할까요?
기도
우리에게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허락하시고 그 믿음으로 인도해주십시오.
우리의 마음에 의심이 밀려올 때마다 우리를 구원하셔서 말씀의 길에서 행하게 해주십시오.
나의 삶의 유일한 위로가 되시는 예수님을 바르게 알고 사랑하며, 또한 그 은혜를 온전히 누림으로써
다른 사람들에게 그 위로를 전하고 증거하는 자가 되게 해주세요.
'+ [이사야]'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예루살렘에 전해지는 좋은 소식 (이사 52:1~12) (CBS) (0) | 2015.10.09 |
---|---|
[85]진노의 잔이 옮겨가리라 (이사 51:17~23) (CBS) (0) | 2015.10.07 |
***[83]혀와 귀에 임하는 은혜 (이사 50:1~11) (CBS) (0) | 2015.10.05 |
하나님께서는 능력 있는 왕이십니다 (이사 49:22~26) (CBS) (0) | 2015.10.03 |
통치자의 영광과 자랑 (사 49:8~21) (CBS) (0) | 2015.10.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