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망 중에 굳세어라! 2015년 9월 1일 화요일
이사야 35:1~35:10
1 광야와 메마른 땅이 기뻐하며 사막이 백합화 같이 피어 즐거워하며
2 무성하게 피어 기쁜 노래로 즐거워하며 레바논의 영광과 갈멜과 사론의 아름다움을 얻을 것이라
그것들이 여호와의 영광 곧 우리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보리로다
3 너희는 약한 손을 강하게 하며 떨리는 무릎을 굳게 하며
4 겁내는 자들에게 이르기를 굳세어라, 두려워하지 말라,
보라 너희 하나님이 오사 보복하시며 갚아 주실 것이라 하나님이 오사 너희를 구하시리라 하라
5 그 때에 맹인의 눈이 밝을 것이며 못듣는 사람의 귀가 열릴 것이며
6 그 때에 저는 자는 사슴 같이 뛸 것이며 말못하는 자의 혀는 노래하리니
이는 광야에서 물이 솟겠고 사막에서 시내가 흐를 것임이라
7 뜨거운 사막이 변하여 못이 될 것이며 메마른 땅이 변하여 원천이 될 것이며
승냥이의 눕던 곳에 풀과 갈대와 부들이 날 것이며
8 거기 대로가 있어 그 길을 거룩한 길이니라 일컫는 바 되리니
깨끗지 못한 자는 지나지 못하겠고 오직 구속함을 입은 자들을 위하여 있게 될 것이라
우매한 행인은 그 길로 다니지 못할 것이며
9 거기는 사자가 없고 사나운 짐승이 그리로 올라가지 아니하므로 그것을 만나지 못하겠고
오직 구속함을 받은 자만 그리로 행할 것이며
10 여호와의 속량함을 받은 자들이 돌아오되 노래하며 시온에 이르러
그들의 머리 위에 영영한 희락을 띠고 기쁨과 즐거움을 얻으리니 슬픔과 탄식이 사라지리로다
성경 길라잡이
광야와 메마른 땅이 … 피어 즐거워하며(1절):
프록쉬(Procksch)가 단테의 『신곡』에서 차용하여 ‘지옥 대 낙원’이라 부른 것처럼,
34장과 35장은 첨예하게 대조된다. 특히 땅의 변화에서 그렇다.
곧 하나님의 백성을 대적하는 에돔은 황무한 땅으로 변하지만,
‘광야와 메마른 땅’(사막)은 백합화가 피는 소망과 기쁨의 낙원으로 변할 것이다.
여기서 ‘사막’은 일차적으로
이스라엘 백성이 바벨론에서 유다 땅으로 귀환할 때 경유하게 되는 시리아 사막을 가리키지만,
메시아 왕국의 도래를 열망하는 본장의 문맥상 이는
성도들이 통과해야 할 죄 많은 이 세상을 암시하는 것이기도 하다.
기뻐하며……즐거워하며(1절): 히브리어 어순으로는 ‘기뻐하며’가 1절의 첫 단어이다.
기쁨의 근거는 34장에 기록된 하나님의 보복과 신원이다.
원수들에게는 심판이지만, 언약백성에게는 구원과 회복의 소식이다.
기쁨과 즐거움은 35장의 마지막에도 등장한다(10절).
레바논의 영광과 갈멜과 사론의 아름다움을(2절):
33장 9절에서는 앗수르의 폭력으로 레바논과 사론, 갈멜이 황폐해졌지만,
35장 2절에서는 하나님의 구원으로 원래의 아름다움을 회복한다.
굳세어라, 두려워하지 말라(4절): 하나님께서 미래에 완성될 하나님 나라를 말씀하시는 까닭은,
오늘을 환난 가운데 살아가는 이들을 격려하시기 위해서이다.
그 때에 맹인의 눈이 밝을 것이며(5절): 피조세계뿐 아니라 사람들도 회복을 경험한다.
예수님께서 성육신하셔서 회복을 시작하셨다면(마 11장 5절),
예수님께서 재림하셔서는 회복을 완성하실 것이다.
이러한 회복은 오직 구속함을 입은 자들(8~9절)만이 받을 수 있다.
여호와의 속량함을 얻은 자들이 돌아오되(10절):
‘속량하다’는 법정 용어로서 친족에 대해 가족구성원이 지닌 의무를 이행하는 일과 연관된다.
특히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해방시키신 하나님의 행위를 묘사하는 말로 전용되었다(신 7:8; 9:26 등).
묵상과 삶
욕망이 가득한 세상에 진정한 소망이 나타났습니다.
경쟁과 전쟁으로 말미암은 슬픔과 탄식은 사라지고, 기쁨과 즐거움이 가득하게 될 것입니다.
욕망으로 황폐해진 모든 피조물이 본연의 아름다움을 회복할 것입니다.
질병과 장애로 괴로워하던 몸과 마음이 모두 건강해질 것입니다.
끝내 죽음의 기운은 꺾이고 생명이 가득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통치, 즉 하나님 나라가 이 모든 소망이 실현된 실체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나라의 복음은 ‘나의 구원’보다 크고 위대합니다.
세상이야 어떻게 되었든 나의 생명, 나의 생존만을 생각한다면, 그는 ‘구속함을 입은 자’가 아닙니다.
나의 생명만큼이나 다른 지체의 생명도 소중한 줄 알며,
다른 피조물의 생명도 소중한 줄 아는 이가 진정으로 ‘구속함을 입은 자’입니다.
이것이 신자에게 주신 하나님의 소망입니다.
이 세상은 ‘나의 행복’이 가장 중요하다고 가르칩니다.
경쟁을 하든, 속임수를 쓰든 나만 행복해지면 된다고 주장합니다.
다른 사람들의 불행에 마음을 쏟는 것은 사치일 뿐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불행한데 나만 행복하다면, 나의 행복은 분명 누군가를 희생시킨 대가입니다.
이웃의 탄식과 눈물 위에 쌓은 행복을 하나님께서 정당하다고 인정하실 리가 없습니다.
그렇기에 하나님 나라를 소망하는 ‘구속함을 입은 자’는
모두가 행복해질 때까지 자신의 행복을 유예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우리의 구주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러하셨으며, 복음의 선배들이 그러했습니다.
물론 세상은 ‘구속함을 입은 자’를 향해 어리석다 비난할 것입니다.
그러한 세상의 평가와 비난 앞에 주눅 들지 마십시오.
높고 영광스러운 하나님 나라를 소망하며 굳세게 서십시오.
삶으로
누군가가 말하기를, “인생에서 고통의 절반은 기다림”이라고 했습니다.
그만큼 사람은 여러 가지 기다림 속에서 살아가지만, 그 기다림은 대개 고통스러울 때가 많습니다.
이루어질 수 없는 일을 기다리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곧 이루어지겠지’ 하는 기대감으로 기다리는 것 역시 고통스럽기는 매한가지입니다.
요즈음 유행하는 단어인 ‘희망고문’처럼 말입니다.
그런데 다행히도 이 희망들을 고통이 아닌 기쁨이 되게 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주께서 오신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이에 대해 야고보서 5장 8절에서 인내하며 용감하게 기다릴 것을 말하면서
그 근거로 주께서 곧 오실 것이라고 말합니다.
즉 예수님이 오시면 우리가 희망하는 것들이 온전히 성취될 것이라는 말입니다.
기다리는 것은 우리를 위한 하나님의 뜻입니다.
우리는 이를 통해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는 인내를 배웁니다.
그래서 대개 믿음의 영웅들은 잘 기다린 사람들입니다.
가령 다윗은 사울을 피해 아둘람굴에서,
모세는 바로의 핍박을 피해 광야에서,
욥은 그의 모든 것을 잃은 가운데서 하나님을 기다렸습니다.
우리 또한 우리를 온전케 하실 하나님을 기다리고,
그럼으로써 그 가운데서 더욱 성숙하고
나아가 나를 통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해야 합니다.
묵상질문
지금 무엇인가를 이루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고 있다면 그 까닭이 무엇입니까?
나는 ‘소망’이라는 단어를 무슨 내용으로 채우고 있습니까?
하나님의 소망 앞에서 나의 소망은 어떠합니까?
5-6절에 나오는 ‘그 때에’란 어떤 때를 가리키나요?
예수님이 오실 것을 믿고 기다리는 것은 내 삶에 어떤 변화를 일으킬까요?
기도
하나님의 소망을 나의 소망으로 삼게 해주십시오.
하나님 나라를 소망하며 오늘을 굳세게 살게 해주십시오.
예수님이 오실 것을 믿고 기다림으로써
나의 모든 일상에서 일어나는 기다림이 고통이 아닌 기쁨이 될 수 있도록 해주세요.
'+ [이사야]' 카테고리의 다른 글
그래도 하나님을 신뢰하겠습니다 (이사 36:11~22) (CBS) (0) | 2015.09.03 |
---|---|
[55]말씀 위에 삶을 세우겠습니다 (이사 36:1~10) (CBS) (0) | 2015.09.03 |
과거를 기억하고, 미래를 소망하며, 현재를 삽니다 (이사 34:1~17)(CBS) (0) | 2015.08.31 |
***기도는 말씀을 복창하는 것입니다 (이사 33:1~24) (CBS) (0) | 2015.08.30 |
시선을 한 왕께 고정하십시오 (이사 32:1~20) (CBS) (0) | 2015.08.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