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사야]

[48]헛되고 무익한 수고 (이사 30:1~17) (CBS)

colorprom 2015. 8. 25. 20:31

헛되고 무익한 수고 2015년 8월 25일 화요일


이사야 30:1~30:17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패역한 자식들은 화 있을진저

그들이 계교를 베푸나 나로 말미암지 아니하며

맹약을 맺으나 나의 영으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죄에 죄를 더하도다

 

그들이 바로의 세력 안에서 스스로 강하려 하며 애굽의 그늘에 피하려 하여 애굽으로 내려갔으되

나의 입에 묻지 아니하였도다

그러므로 바로의 세력이 너희의 수치가 되며 애굽의 그늘에 피함이 너희의 수욕이 될 것이라

그 고관들이 소안에 있고 그 사신들이 하네스에 이르렀으나

그들이 다 자기를 유익하게 하지 못하는 민족으로 말미암아 수치를 당하리니

그 민족이 돕지도 못하며 유익하게도 못하고 수치가 되게 하며 수욕이 되게 할 뿐임이니라

 

네겝 짐승들에 관한 경고라

사신들이 그들의 재물을 어린 나귀 등에 싣고 그들의 보물을 낙타 안장에 얹고 암사자와 수사자와 독사와 및 날아다니는 불뱀이 나오는 위험하고 곤고한 땅을 지나 자기에게 무익한 민족에게로 갔으나

애굽의 도움이 헛되고 무익하니라 그러므로 내가 애굽을 가만히 앉은 라합이라 일컬었느니라

 

8이제 가서 백성 앞에서 서판에 기록하며 책에 써서 후세에 영원히 있게 하라

대저 이는 패역한 백성이요 거짓말 하는 자식들이요 여호와의 법을 듣기 싫어하는 자식들이라

 

그들이 선견자들에게 이르기를 선견하지 말라

선견자들에게 이르기를 우리에게 바른 것을 보이지 말라 우리에게 부드러운 말을 하라 거짓된 것을 보이라

너희는 바른 길을 버리며 첩경에서 돌이키라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로 우리 앞에서 떠나시게 하라 하는도다

 

이러므로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가 이같이 말씀하시되

너희가 이 말을 업신여기고 압박과 허망을 믿어 그것을 의지하니

이 죄악이 너희에게 마치 무너지려고 터진 담이 불쑥 나와 순식간에 무너짐 같게 되리라 하셨은즉

그가 이 나라를 무너뜨리시되 토기장이가 그릇을 깨뜨림 같이 아낌이 없이 부수시리니

그 조각 중에서, 아궁이에서 불을 붙이거나 물 웅덩이에서 물을 뜰 것도 얻지 못하리라 

 

주 여호와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가 이같이 말씀하시되

너희가 돌이켜 조용히 있어야 구원을 얻을 것이요

잠잠하고 신뢰하여야 힘을 얻을 것이어늘

너희가 원하지 아니하고 이르기를 아니라 우리가 말 타고 도망하리라 하였으므로 너희가 도망할 것이요

또 이르기를 우리가 빠른 짐승을 하였으므로 너희를 쫓는 자들이 빠르리니

17한 사람이 꾸짖은즉 천 사람이 도망하겠고 다섯이 꾸짖은즉 너희가 다 도망하고

너희 남은 자는 겨우 산 꼭대기의 깃대 같겠고 산 마루 위의 기치 같으리라 하셨느라

 


성경 길라잡이 

 

패역한 자식들은 화 있을진저(1절): 28장 1절과 마찬가지로 원문으로는 ‘화 있을진저’가 문장의 서두이다.

화의 원인은 패역인데, 이 번역어의 원어인 히브리어 ‘사랄’은 반역, 혹은 반항을 의미한다.


그들이 바로의 세력 안에서(2절): 반역의 구체적인 내용은 이집트와의 동맹이다.

28, 29장이 아하스 재위 시절에 앗수르와 동맹했던 내용을 다루고 있다면,

30장은 히스기야 재위 시절에 이집트와 동맹했던 일을 다루고 있다.

양자가 하나님을 먼저 의지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일치한다.


애굽의 그늘에 피하려 하여(2절):

히스기야 시대에는 애굽의 제25왕조와 바로 샤바카는 수로-팔레스틴 민족들의 반 앗수르 반란을 선동했다.

이에 주전 701년에 애굽을 공격하기 위해 원정을 감행했던 산헤립은

애굽 국경에서 160km 거리에 있는 엘테케(Eltekeh)까지 진군하였다.

요시야 시대에는 바로 프삼메티쿠스 1세가

아슈르바니팔의 통치 말년(주전 627년)에 앗수르가 쇠약해진 틈을 노려 애굽의 세력 확장을 꾀했다.

하지만 새롭게 부상하던 바벨론에 의해 좌절되었다.

이렇듯 당시 애굽은 유다를 보호해줄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그런데도 히스기야는 애굽과의 동맹에 의지하려했다.

 

네겝 짐승들(6절): 건조한 남방의 험난한 지형을 여행하는 데는 위험이 따른다.

그곳은 야생동물들(사자, 표범, 살모사, 코브라 등)이 종종 여행자를 급습하기도 했다.

 

애굽의 도움은 헛되고 무익하니라(7절):

‘라합’은 교만하고 신비로운 용을 부르는 말로, 애굽을 상징하는 단어이다(시 87장 4절).

유다의 사신들은 험난한 여정을 거쳐 애굽에게 도움을 요청했으나(6절), 그들의 수고는 무익할 뿐이다.


너희 남은 자는(17절):

앗수르의 산헤립이 침략하여 전 국토를 황폐화시키고 예루살렘만 남은 장면을 17절이 묘사한다.

 


헛되고 무익한 수고 2015년 8월 25일 화요일

 

주전 8세기 후반, 북방의 앗수르와 남방의 애굽이라는 강대국 사이에서

약소국 유다는 생존을 위해 아슬아슬한 외교적 줄타기를 감행했습니다.

그러나 아하스는 북이스라엘의 침략이라는 위기 앞에서 앗수르를 의지하다가 책망을 받았고(28, 29장),

아하스의 아들이었던 히스기야는 앗수르의 침략 앞에서 애굽을 의지하여 책망을 받았습니다(30장).

의지의 대상이 앗수르에서 애굽으로 변했을 뿐,

유다가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았다는 점에서는 다를 바가 없습니다.

그 결과 유다는 나라 전체가 앗수르에게 유린당하는 위기를 맞았습니다.

위기를 타개할 방법을 고민했지만, 상황을 개선하기보다는 오히려 악화시키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을 떠난 사람의 실상이 이와 같습니다.

살려고 몸부림을 치지만, 그 몸부림이 오히려 상황을 악화시킵니다.

공동체와 개인의 위기를 두고 세상은 나름대로의 해법을 제시합니다.

경제전문가들은 경제가 가장 중요한 것이라고 말합니다.

외교전문가들은 국제정세를 바르게 진단해 편승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이라 말합니다.

그 밖의 전문가들도 자신들에게 있는 방안이 가장 적절한 것이라 주장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떠난 사람의 상태는 흡사 거미줄에 걸린 곤충과 같습니다.

살려고 몸부림을 치면 칠수록 거미줄에 더욱 단단히 엮이게 됩니다.

물론 그대로 시간이 흘러도 죽는 건 마찬가지입니다.

 

진정한 구원은 스스로 강해지는 것(2절)이 아닙니다.

거미줄에 걸린 곤충을 살리는 것은 그 자신이 아니라 외부의 손길이듯이,

위기에 처한 우리를 살리는 것은 ‘주 여호와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15절)의 손길입니다.

먼저 주님 앞에 엎드립시다.

 

 삶으로

 

이사야는 하나님을 무시하는 유다 백성들의 행동에 분개했습니다.

유다의 사신들은 애굽과 동맹을 체결하기 위해 예물을 가득 실은 채 바둥거리며

남쪽의 사막지역을 지나갔지만, 사실 이것은 그럴만한 가치가 전혀 없는 행동이었습니다.

당시의 애굽은 유다에게 도움이 되기는커녕 오히려 재앙만 불러올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사야는 애굽을 경멸하는 표시로 애굽에게 라합이라는 이름을 붙여서

‘가만히 앉은 라합’, 곧 무익한 라합이라고 지칭하며 비웃었습니다.

그런데도 유다는 그러한 애굽에 의지함으로써 멸망의 길을 재촉하고 있습니다.


사실 이 땅을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은 두 가지의 삶 중 하나를 선택해 살아가야 합니다.

그것은 곧 하나님을 신뢰하는 삶, 아니면 하나님을 거역하는 삶입니다.

그런데 이 두 가지 삶의 결과는 불을 보듯 뻔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후자의 삶을 선택한 자는 한시라도 빨리 거기서 ‘돌이켜야’ 합니다. 즉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서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렇지 않고 하나님이 아닌 다른 것들을 의지하고 신뢰하는 자들은 결국 큰 낭패와 절망에 이르게 될 것입니다. 그것들은 결코 우리의 위로나 구원이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시급히 우리가 가는 길을 멈추고 하나님께 나아가 바른 길을 묻고

그 길에 첫 발을 내디뎌야 합니다.

 


잠잠하고 신뢰하라 (2019년 2월 23일 토요일)


주전 8세기 앗시리아의 기세에 짓눌리던 이스라엘

이집트의 힘을 의지하여 그 위기에서 벗어나보려고 계획했습니다.


이 같은 계획을 예리하게 통찰한 이사야 선지자는 지도자들의 잘못된 선택,

그리고 어느 쪽이든 무력을 바탕으로 하는 제국의 힘은 믿을 만한 게 못 된다는 점을 지적하였습니다.(3,7)

그는, 담벼락이 일순간에 무너지듯이, 항아리가 산산조각으로 깨지듯이

하나님의 법도를 버린 이스라엘에게 파멸은 불가피하다는 것과,(13-14)

모두 뿔뿔이 흩어져 산꼭대기에서 깃발만 외롭게 펄럭일 때가 올 것이라고 경고합니다.(17)


그러면 도대체 어떻게 하면 될까요?

힘은 없고, 파멸의 시간은 다가오는데 앉아서 당하라는 말인가요?

불안에 떠는 지도자들과 백성들을 향해 이사야는 말합니다.

"너희가 돌이켜 조용히 있어야 구원을 얻을 것이요

잠잠하고 신뢰하여야 힘을 얻을 것이거늘."(15)


구원의 길은 먼 데 있지 않습니다.

먼저 하나님을 등지고 걸어온 삶을 청산하고 하나님을 향하여 바로 서야 합니다.

주변 정세에 대해 두려워하는 마음을 가라 앉히고 온전히 하나님을 신뢰하여야 합니다.


"잠잠하고 신뢰하여야 힘을 얻을 것이거늘."(15)


이 말씀과 만나는 순간 전율이 느껴집니다.

진정한 힘은 고요함, 그리고 하나님에 대한 신뢰 속에서 옵니다.

오늘 우리가 마음을 고요히 하고 성령의 가르침을 신뢰할 때,

그 순간 우리 내면에 엄청난 영적인 에너지가 공급될 것입니다.


+ 주님, 오늘 하루도 마음을 고요히 하고 성령의 가르침을 신뢰하게 하소서. 아멘.


구원의 의미, 여호와께 돌아오는 것 (2019년 6월 29일 토요일) (8~17)


하나님은 이사야 선지자에게 후세에 증거할 것을 서판과 책에 기록하도록 명령하십니다.(사30:8)

그 내용인즉 하나님의 자녀 된 이스라엘이 얼마나 패역하며 거짓되고,

하나님의 법을 싫어하는 자들인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 그렇게 형편없는 이스라엘이 진정 구원받을 수 있는 길은 무엇일까요?


히스기야 왕 시대 이스라엘 백성들은

영적으로 패역한 백성, 거짓말하는 자식들, 여호와의 법을 듣기 싫어하는 자들이었습니다.(사30:9)

이들은 선견자들에게 앞일을 내다보지 말라고 말했으며,

바른 삶이 무엇인지 말하지 말라고 선지자들의 입을 막았습니다.

오직 자신들이 듣기 좋은 말만 하고 거짓된 것이라도 자신들을 위로하면 좋아했습니다.

심지어 그들은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께서 자기들 앞에서 떠나시기를' 소원하기까지 하였습니다.(사30:10-11) 말하자면 하나님의 말씀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철저하게 무시당한 것이지요.(사30:12)


그랬기에, 터진담이 순식간에 무너지듯, 토기장이가 그릇을 아낌없이 부수듯,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말씀을 업신여긴 결과는

벌거벗은 산꼭대기에 깃대 하나 덩그러니 꽂힌 모양이 될 겁니다.(사30:13,17)


그러나 하나님은 심판이 아닌 회개를 원하십니다.

이스라엘이 진정으로 살 수 있는 길은 단 하나입니다.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에게 돌아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돌이켜 조용히 있으라고" 명합니다.(사30:15)

이것은 하나님 외에 그 어떤 것도 이스라엘의 구원이 될 수 없음을 깨닫고

어떤 수단과 방법도 아닌 하나님만을 철저하게 의지하라는 것입니다.


+ 주님, 오늘 이기적으로 살고자 하는 내 마음을 불편하게 하는,

듣기 싫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케 하소서. 아멘.

묵상질문

 

위기를 해결하려 실행한 방안이 오히려 상황을 악화시킨 적이 있습니까? 그 경험에서 배운 바가 무엇입니까?성경이 말하는 위기의 해법은 무엇입니까?(15절)

하나님께서 진노하시는 이유는 무엇인가요?(1-2절)

세상을 의지하는 것과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기도

 

내 소견을 따라 이리저리 헤매지 않게 해주십시오.
헛된 수고를 멈추고 구원하시는 하나님을 잠잠히 신뢰하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이 아닌 세상의 헛된 것들을 의지하거나 신뢰하지 않게 하시고, 속히 나는 물론 우리들 모두의 걸음을 멈추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다른 길을 찾아 걸을 수 있게 해주세요.